나의 앞길을 인도하신 하나님
성령 운동, 기도 운동 일으키고파
어떤 상황이든, 어디서든 ‘성령님과 함께’

지난 5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제70차 정기총회가 번영로순복음교회에서 열렸다. “성령님과 함께 성령 운동과 기도 운동에 힘쓰겠다.”라고 밝힌 총회장 강희욱 목사. 약 35년 간 ‘성령님과 함께’하며, 부르심에 순종하는 강희욱 목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광주순복음만백성교회를 섬기고 있는 강희욱 목사. 강희욱 목사는 올해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제70차 총회장, 광주기독교교단협의회 대표회장에 선출됐다.
광주순복음만백성교회를 섬기고 있는 강희욱 목사. 강희욱 목사는 올해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제70차 총회장, 광주기독교교단협의회 대표회장에 선출됐다.

ㅣ삶의 시선

영적 갈급함으로 만나게 된 하나님
기도하므로 꿈꾸게 된 목회자의 길

Q.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57년 정도가 된다.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왔다. 그때는 성탄절을 기점으로 해서 교회를 나가게 됐다. 주일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재미로 교회를 다녔다.

그러다 입시를 계기로 해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됐다. 사실 나는 삼수를 했다. 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점수도 잘 나와서 여유롭게 대학에 합격했는데 뭔가 인간의 한계를 느꼈다. ‘아, 이게 점수로만 다 되는 것이 아니구나. 노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하나님이 나를 위로해 주시고 감싸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의 앞길을 책임져주겠다는 어떤 확신을 갖게 됐다. 그 이후로 하나님은 늘 내 삶 속에 깊이 관여하고 계신다. 때로는 부르짖기도 하고, 또 속삭이면서 친구나 부모와 대화하듯이, 상의하면 이렇게 오늘까지 지내고 있다.

Q.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된 계기

내가 삼수를 해서 간 대학은 치과를 전공하는 데였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를 많이 하고 싶었다. 학교 갔다 와서 교회를 들러 무작정 산을 올라갔다. 산에 텐트라든지, 어떤 천막이라든지 포장 하나 치지 않고 무방비한 상태에서 그저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는 조그마한 자리만 구축해 놓고 밤새도록 찬양하고 기도했다. 그리고서 새벽에 내려왔다. 2월 26일에 시작해 8월 25일까지 했으니, 그 기간이 6개월 정도 된다. 2월, 3월은 굉장히 추웠다. 그때 당시 아버지가 입었던 두꺼운 코트 하나만 걸치고 눈이 오면 눈 맞고, 비가 오면 비를 맞았다.

그러다 8월 26일 내가 군대를 가게 됐다. 군대 가기 전에 신학기에 편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작정 신학과에 편입을 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혹시나 내가 군대를 갔다 오면 지금 품고 있는 이 목회자가 되겠다는 뜨거운 사명감이 결여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군대에 가니 “너 뭐하다 왔냐? 직업이 뭐냐?”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신학교 다니다 왔다고 했다. 사실 단 한 시간도 수업을 받지 않았지만 신학교에 편입했으니까 신분은 신학생이었다. 군 생활을 하면서 이것이 나에게 굉장한 힘이 되고, 또 목회자의 길을 가게 하는 견인차의 과정이었다. 군대 안에서 군기가 셌지만 나한테 예배드릴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또 군종병으로 임명해서 제대하는 그날까지 각 초소에 다니면서 예배를 드려주고, 또 겨울에는 따뜻한 차를 나누면서 격려해주며 기도해주는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다.

Q. 가장 기뻤던 순간과 슬펐던 순간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어려운 신학과정을 마치고 전도사로 임명을 받았을 때이다. 그때 당시에는 총회로부터 신분증이 있었다. 그 신분증을 받은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야, 나도 드디어 총회로부터 목회자로 인정을 받았구나!’하는 순간이었다.

가장 슬펐던 순간은 교육 전도사로 있을 때 하나님 앞에서 ‘내가 시골 오지로 가서 목회를 하겠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사역하면서 ‘시내에서 내가 목회를 해야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셨던 은혜를 거두어가셨다. ‘내가 부름을 받은 게 맞는가? 앞으로 계속 사역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던 시기가 있다. 그 시점이 나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ㅣ사역의 시선

부족한 자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
작은 소리도 귀 기울이는 총회장되고파
힘들 때 찾는 하나님, 한없이 부어주시는 평강의 은혜

Q. 지금 맡고 있는 사역

먼저, 광주광역시에 약 1,600여 교회와 한 40만 명의 성도들이 있다. 부족한 사람이 광주기독교교단협의회 회장이라는 막중한 사역을 맡게 됐다. 처음에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노심초사했는데 나와 비교할 수 없는 아주 특출한 능력과 순발력, 탁월한 지도력을 가진 임원 분들을 만나 정말 수월하게 사역하고 있다.

또, 민족복음화운동본부 산하에 광주부흥사연수원이 있는데 그곳 원장으로 사역하고 있다. 그 안에 5개 처장님들이 계시는데 엄청난 헌신과 희생이 필요한 자리이다. 사실 원장이라는 자리는 감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인데 처장님들과 함께 은혜 가운데 감당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정통총회)가 1953년 4월 8일 창립됐는데 내가 제70차 정기총회에서 총회장으로 선출됐다. 사실 이 일이 나에게는 과중한 사역인데 성령님과 함께 많은 분들의 격려와 기도 가운데 출범했다. 하나님이 이뤄 가실 일을 믿고 기대한다.

강희욱 목사는 지난 5월 광주기독교교단협의회 대표회장으로 선출됐다. 취임사를 하고 있는 강희욱 목사.
강희욱 목사는 지난 5월 광주기독교교단협의회 대표회장으로 선출됐다. 취임사를 하고 있는 강희욱 목사.

Q. 목회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지금까지 약 35년을 목회를 해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내가 완도에서 사역할 때이다. 사택에 전화가 왔다. 황 집사님 전화였다. “목사님, 목사님! 우리 소가 쓰러졌습니다.”라는 전화였다. 그때 주일학교 시절 옆에 앉았던 친구 어머니가 기도하셨던 것이 생각났다. 그 친구 어머니는 원래 교회를 안 다녔었다. 옆에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 소가 소죽을 잘 먹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셨다. 그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래서 아내와 성경책을 들고 황 집사님 집을 찾아갔다. 사실 시골은 소가 재산이나 다름없다. 그런 소가 쓰러지니까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위축되고 마음이 약해졌다. ‘이거 만약에 오늘 소가 안 일어나면 이거 하나님 망신이다. 나도 부끄럽고, 여기서 얼굴을 들 수도 없고...’라는 생각과 함께 두려움이 찾아왔다. 시골 가면 그때 당시에 마루가 있었다. 그래서 마루에 앉아서 할 수 있는 것이 기도 밖에 없었다. 그래서 기도를 하는데 살짝 보니, 다 나만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어떻게 헤쳐 나가야 되는가?’ 우려하면서 일어났다. 소는 주저앉아 있고 황 집사님과 남편은 소고삐를 잡고 있었다. 건강한 소는 콧잔등에 땀이 있는데 그 소는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 콧잔등이 마치 거북등처럼 전혀 어떤 습기가 없었다. 그 소머리에 대고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우양의 새끼도 주님께서 축복해 주시고 길러주신다고 했는데 하나님이 치료해주시고 일어나게 하여주옵소서. 그리고 황 집사 부부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의 피로, 성령의 능력으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러고 나서 한 30초가 지났는데 그 소가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더니 소죽을 줘도 먹지 않았는데 4~5m 떨어져 있던 지푸라기를 먹었다. 그 소가 암소였는데 그 이듬해 쌍둥이 송아지를 낳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걸 보던 7분이 교회에 나왔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또 가정을 축복해서 큰 역사를 이뤄 가시는 것을 보게 됐다.

강희욱 목사 부부 사진. 강희욱 목사의 약 35년 간의 목회 생활 중 가장 큰 힘이 된 사람은 아내였다. 강희욱 목사가 완도에서 섬교회를 섬기고 있을 때도, 성도들의 집에 심방갈 때도 아내는 항상 옆에서 사역을 도왔다.
강희욱 목사 부부 사진. 강희욱 목사의 약 35년 간의 목회 생활 중 가장 큰 힘이 된 사람은 아내였다. 강희욱 목사가 완도에서 섬교회를 섬기고 있을 때도, 성도들의 집에 심방갈 때도 아내는 항상 옆에서 사역을 도왔다.

Q.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정통총회) 총회장이 되셨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1907년 평양에 있는 장대현교회에서 일어났던 원색적인 성령 운동, 기도 운동이 반드시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말씀 안에서 그 일을 펼쳐나가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총회원들의 아주 작은 소리라도 귀담아듣고 그 의견을 수렴해서 정책에 반영시키려고 한다.

우리 총회에는 임원을 중심해서 증경총회장들로 이루어진 정책위원회, 지방회장으로 구성된 실행위원회, 그리고 각 위원회 위원장이 있고 각 국장이 있다. 그래서 정책간담회라든지, 지방별로 간담회를 통해 적극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는지 집약해서 총회를 섬기려고 한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제69차 총회장 유영희 목사(왼쪽)가 제70차 총회장 강희욱 목사(오른쪽)에게 회기를 전달하고 있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제69차 총회장 유영희 목사(왼쪽)가 제70차 총회장 강희욱 목사(오른쪽)에게 회기를 전달하고 있다.

Q. 지쳤을 때 재충전하는 방법은?

역시 주님이고, 기도뿐이다. 우리 교회는 지하에 성전이 있다. 지쳤을 땐 무조건 지하 성전에 내려간다. 그러고서 그냥 어린아이처럼, 다른 형용사 구사하지 않고 한없이 주님만 찾는다. “하나님 나 이렇게 부족한데 하나님이 나 붙들어 주시고 내 사역 책임져 주셔야 합니다.”라고 한없이 단순하게 주님만 찾는다. 지금도 그렇다. 그렇게 하면 주님이 평강의 은혜를 주신다. ‘세상에서 나같이 이렇게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이런 고백을 하게 된다.

ㅣ생각의 시선

‘성령님과 함께’
하나님께 붙들려 쓰임 받는 성도돼야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 회복되길

Q.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코로나가 우리 지역뿐만 아니라 온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닫히고, 격리되고, 멈추고 이런 현상이 하나님이 원하시고 성령님께서 인도하는 것과 정반대가 된다. 그러면서 나는 ‘성도들이 행여나 코로나 때문에 낙오자가 생기면 어떡할까?’라는 생각과 더 염려되는 것은 단 한 분이라도 확진자가 나오면 안 된다는 우려 속에 살얼음판을 걷는 그런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이런 생각 속에 잠기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이 조성된 것 같다.

인터뷰 중인 강희욱 목사.
인터뷰 중인 강희욱 목사.

Q.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면?

내가 하나님 앞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고백하는 것이 있다. “하나님 나는 부족합니다. 하나님 정말 부족합니다.”라는 말이다.

성도들과 이웃을 향해서는 “성령님과 함께해야 된다.”라는 말이다. 이 말은 내가 사석에서도 자주하는 말이다. 그래서 총회에서 내가 취임사 때 아주 힘줘서 고백한 것이 있다. 바로, “성령님과 함께 든든히 세워가는 총회가 돼야 된다.”라는 말이다. 또, 광주기독교교단협의회 회장이 되면서 나름대로 목표를 설정했는데 ‘성령님과 함께 회복하는 광주광역시’이다. ‘회복’이 요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단어가 아닌가 생각한다. 단순히 회복이 아닌, ‘성령님과 함께’해야 된다.

‘성령님과 함께’라는 이 고백이 앞으로도 주님 나라에 갈 때까지 내 입에서 계속될 것이다.

Q. 내 삶의 가장 중심이 되는 성구

에베소서 3장 20절에 보면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하나님을 기록하고 있다. 이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다. 특히, 청년들에게 “너희도 이 말씀을 가슴에 품고 앞으로 큰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사는 동안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고 영광을 비춰야 한다.”라고 권면한다.

이 말씀을 삶의 중심으로 삼게 된 계기는 하나님은 정말 광대하시고 방대하신 분이다. 때때로 우리는 나 하나 컨트롤하기도 힘들고 내 교회, 내 가정에 얽매어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전 세계 우주 만물을 다 관장하고 계신다. ‘저 크신 하나님께 우리가 붙들린바 되면 하나님의 광활한 그 영적 세계와 손길에 나도 쓰임 받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걸 계기로 이 말씀을 항상 생각한다.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시다.

Q. 코로나 시대 교회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면?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는 다양한 예배 방법과 네트워크를 잘 구축하게 됐다. 하지만 가장 시급한 문제는 ‘현장 예배’라고 생각한다. 하루 속히 현장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 우리가 현실을 직시해야 되고 무시할 수 없다. 그러한 면에서 온라인 예배라든지 방송을 통한 예배 등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굉장한 유익을 주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과 예배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이다.

또, 자꾸 부정적인 요소만 보고 원망하지 말고, 이 시기가 더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깊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

ㅣ세상의 시선

주님의 모습을 닮은 목회자
세상과 구별된 빛의 자녀 되길

Q.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목사님은 다가가기 어려운 분입니다.”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내 인상이 험악한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는 성직자의 품위는 잃어버리면 안 된다 하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우리 강희욱 목사님은 모든 것을 다 포용하고 수용하시는 그런 목사님이다.”라는 그런 소리를 듣고 싶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Q. 세상 속에서 성도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내가 설교 시간에도, 사석에서도 항상 강조하는 것이 있다. 바로, “긍지를 가지고 살아라.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라.”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실 때는 나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절대로 기죽지 말고, 남과 비교해서 열등감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주권적인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말을 지금도 강조하고 있다.

덧붙여서 밝은 미소, 긍정적인 모습을 늘 간직하면서, 또 이웃을 향해 어필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Q. 독자들에게 한 마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권세가 있다. 그런 자부심을 갖고, 빛의 자녀로 살아가길 바란다. 빛의 자녀로 ‘빛의 삶’을 산다는 것은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뛰어나고 실력이 있고, 자신의 능력과 기량을 발휘한다 할지라도 그 안에 빈 공간이 많이 있는데 그 부분을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생각을 하면서 자부심을 갖고 떳떳하면 좋겠다.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나타내는 그런 능력 있고 복된 삶을 누리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기를 염원하면서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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