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합정(合井) - 동산 중앙의 두 나무에 관한 心象’

박은석

  춘분이 지나 땅거미가 드리우면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모여든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수유역.  비가 내리면 물이 넘친다는 뜻으로 ‘무너미 마을’이라 불리우던 수유리(水踰里).  어린 시절부터 이 지역에 살면서, 장마철이면 개천이 넘쳐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한밤의 굵은 빗줄기 속에 넘실대는, 당장이라도 제방을 넘어 덮칠 듯한 검은 물결은, 어른이 된 후에 보아도 떨림으로 다가온다.  여름이 되어 비가 내리면, 북한산으로부터 가파른 우이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던 물줄기가 이곳 우이천에 모이므로, 물이 불어나는 것은 삽시간이다.  수 년 전에는 홍수로 인해 쌍문동과 수유동을 잇던 작은 다리가 무너졌었고, 얼마 전 물난리 때는 덕성여대 앞의 큰 다리도 무너져버렸다.  흐르는 물의 힘은 동네 하천에서도 이와 같이 나타난다.  기술이 발달한 현대라 하지만 자연의 힘 앞에선 지금도 무력하기만 하다.  그것을 암시하는 듯 대학 앞의 무너진 다리는 기괴한 몰골로 오랫동안 방치되어, 학생들은 한동안 옆에 놓인 임시가교로 우회해서 등교하였다.  그런데, 요즈음 넘쳐나는 것은 물만이 아니다.  수유동에 지하철이 생기고부터는 사람들도 넘쳐나고 있다.  갑자기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들어서고, 하나의 주택이 헐리면 그곳에 4층 이상의 빌라가 세워졌다.  그리고 지역은 점점 더 번화해지더니 하나의 도봉구가 강북구로 나뉘어졌다.  그 후로 더 많은 사람들이 넘쳐나면서 제방이라도 쌓듯이 빌딩이 높이 솟아오르고, 길이 넓어져 서울의 주변부와 중심부를 잇는 교량역할을 하게 되었다.  차량들이 늘어나고 예전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번화해가고 있는 것이다.  ‘후... 소란스럽다.’  땅 위의 시끄러운 세상을 피하듯 지하도로 내려가 전동차를 타고 어둠 속을 달린다.  상대적으로 소음이 적은 이곳이 차를 타고 땅 위를 달리는 것보다는 낫다.  조용히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앞에 앉은 사람들을 마주대하듯 느긋하게 관찰하기도 하고, 어두운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라도 스스로를 대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이렇게 창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 동네 우물을 열고 들여다보던 때를 생각하게 된다.  한낮에도 어스름 속에 잔잔히 흔들리는, 마치 내가 숨 쉴 때마다 숨결로 흐느끼는 듯한 작은 우물, 그처럼 아련히 흔들리는 전동차 창문을 바라보는 동안, 어린 시절이 떠오르게 된다.  아직 논밭엔 아파트가 생기기 전의, 산 위에는 학교가 세워지기 전의 그 시절.  친구와 함께 온 동네를 헤집으며 산으로 들로 내달리던 때를 가만히 더듬어 본다.  밭에는 무와 배추를 비롯해 호박이 넝쿨덩쿨 자라고 있고, 산에는 버찌며 개암이며 밤과 도토리가 그득하게 열려있던 그 곳.  동무들과 어울려 자연을 쏘다니던 때를 기억하고는 지하철 의자에 기대어 흐뭇하게 웃어본다.  그리고 보니, 녀석들 중엔 내 짝궁도 있었다.  몸도 가녀린 것이 남자애들이나 쏘다니던 산길을 통해 건넌마을로 함께 달리던 아이.  아마도 건넌마을에까지 동무가 있던 계집애는 그 아이뿐이었을 게다.  길을 걷다가 이름 모를 꽃이라든지, 새로운 곤충이라도 보면, 눈이 댕그래져서 호기심에 반짝반짝.  이것저것 물어보며 귀찮게 굴던 아이.  여느 여자애라면 기겁을 하는 송충이도 신기한 듯 나뭇가지로 요리조리 뒤집어보던, 그 아이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우리 패들은 산과 들로 그리고 건넌마을로, 걷고 달리며 마음껏 나뒹굴었다.  그렇게 이쪽 마을에서 저쪽마을로 와르르 몰려갔다 우르르 돌아오던 우리는, 항상 목이 말라 있었다.  어린 시절엔 왜 그리도 달리는 게 좋았던지, 항상 갈증을 달고 다니던 우리들이었다.  그리고 이 마을과 저 마을 사이에는 우리네 갈증을 풀어주던 조그만 우물 하나가 있었다.  그 숲에는, 처음부터 우물이 있었다.  마을을 벗어나 길을 따라 산 하나를 넘어가면, 도토리나무와 밤나무 옆에 텃밭을 낀 초가가 있었다.  마을에서는 수돗물을 쓰던지, 양수기로 지하수를 끌어 썼지만, 그곳은 마을과 떨어진 곳이어서 일까?  조그만 우물이 있었고, 어른들은 그것을 조개우물이라고 불렀다.  “조개우물?”  “응!”  여느 때처럼 산길을 걷다가 들은 이야기를 전하자, 영득이 녀석은 나무대기로 바닥을 긁으며 잠깐 생각해보더니,  “그러고 보니... 거기서 조개 본 적이 있다.”  “그래?  역시 조개가 사는 거였구나!  나도 조개를 본 것 같아.”  나는 이렇게 말하고서 우물 속에 드글거리는 조개들을 상상해본다.  조개들이 올라온다, 우물벽을 타고.  달팽이처럼 기어오르고 있는, 하얀 달밤 속에...  “그치만, 정말 조개가 살까 ?”  그 때, 내 상상을 깬 것은 그 계집애였다.  “살아!”  영득이 놈이 버럭대며 말을 가로막았다.  “내가 봤대두!”  “조개는 바다에 살아.”  계집애도 지지 않고 말했다.  “누가 바다에 사는지 몰라?  저 우물이 바다랑 연결돼있는 거란 말이야!”  앗... 그런 거구나!  나는 영득이가 진짜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우물이 바다랑 연결돼있다는 걸 녀석은 어떻게 알았지?  “그러면 왜, 우물물이 안 짜!”  여자애의 반격에 녀석이 할 말을 잃었다.  “...............”  그래, 맞다.  물이, 안 짜지...  음, 물이 짜면 마실 수가 없으니까.  순간 영득이 놈 표정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조개가 사는데 왜 물이 안 짠지 도무지 감 잡을 수가 없었는지.  “너 계집애가 말이 많아!  내가 우물에서 조개 봤다면 본 거야!”  “웃기시네, 나도 찾아봤는데 조개는 없었어.  그리고 그렇게나 컴컴한데 무슨 조개가 보이냐!”  “너 내가 조개 찾으면 어떡할래?”  영득이는 무시당한 거 같아서 붉그락거리며 화를 냈다.  계집애도 귀까지 붉어져서 소리쳤다.  “못 찾으면 어떡할래!”  영득이 놈이 그 말에 흥분해서 주먹을 부르르 떤다.  “이것이... 내 조개 잡으면 너 죽을 줄 알아!”  “네가 못 잡으면 어떡할 건대!”  지지 않으려고 계집애도 목소리를 높였다.  “좋아, 그럼 내 딱지 다 가져!  대신, 조개 찾으면 너는...”  녀석은 으르렁대며 산 너머 우물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 다음은 내가 다음은 계집애가 달리기 시작했다.  청명한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는 게 보인다.  ‘오늘 누군가는 큰일 나겠구나...’  열차를 갈아타기 위해 동대문운동장에서 내렸다.  언제나 사람들이 운집해있는 이곳에선 요즘 유행을 한 눈에 볼 수가 있다.  옷차림은 몇 일 전에 비해 상당히 가벼워져 있고, 여성들은 올 봄의 컬러로 한껏 멋을 내며 걷고 있다.  2호선 승강장으로 이동하며 가방 속의 핸드폰을 꺼내 받는다.  “명지니?”  “지애 누나?”  “너 선생님께 받은 주제들 기억하고 있니?”  “응.”  지난주 다듬었던 원고들을 머릿속에 더듬어 본다.  “인쇄한 거 나왔으니까, 강평해서 연결해보자고.”  “알았어.  연구실에 벌써 도착한 사람 있어?”  “아직.”  “그래.”  전화기를 가방에 넣으며 들고 온 작품들을 확인한다.  올 초부터 공부하는 양이 많아지면서, 방에도 가방에도 원고가 쌓이고 있다.  졸업 후 창작에 전념하는 사람들이 모여, 매주 두 번씩 강평과 지도를 받고 있다.  하루는 정신분석과 문예창작을 위해, 또 하루는 신학과 신화학, 철학 교수님의 지도를 받기 위해 연구실로 모인다.  모두들 앎에 대한 열정과 표현에 대한 욕구로 가득 차, 정열적으로 창작과 토론에 임하며 지식을 습득한다.  아직 학생인 후배도 있고, 다른 예술에 몸담은 분들도 있으며, 나처럼 작가수업 중인 사람도 있다.  모두가 글을 쓰려는 사람들이다.  문득 생각해보면, 세상에 글 못 쓰는 사람도 있을까?  누구나 다 글은 쓸 수 있다.  여느 예술 장르와는 달리 문학은 거창한 기교를 그리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람이 담고 있는 내용 - 종교, 철학, 역사, 문화, 그리고 집필자의 삶 그 자체.  작가의 모든 것이 곰삭아 육화된 글로 나타나게 된다.  과연 내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그리 변변치 못한데...  내가 쓴 글을 읽다보면 낯설고 부끄럽기만 한데...  스스로 써놓은 글을 볼 때마다 창피하고 부끄럽기에, 그렇게들 모여 앎에 대해, 삶에 대해 더 가까이 접근하고픈 것이다.  그 자락을 붙잡고 가까이서 바라보고 싶은 것이다.  글은 살아온 만큼 쓴다는데, 나는 어디쯤 살고 있는 것일까?  2호선 승강장에서, 아직 오지 않는 열차를 기다리며 서성이던 중, 승강장 끝으로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터널이 심연을 벌리고 있는 것을 바라본다.  나를 바라보는 심연은 내가 보는 심연이다.  눈을 돌려, 원고를 읽어내려가며 퇴고를 한다.  나 할 수 있는 건 다 해볼 참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기다리던 열차도 도착하겠지.  원고를 넘기던 중,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물소리?’  그 소리에 이끌려 찾아보니, 두 개 철로 사이의 조형물에서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건조한 지하공간에 유일하게 생동하는 느낌, 시원한 물소리.  승강장 환승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저 소리를 듣고 있을까?  물소리에 귀 기울이는 동안 열차가 진입한다는 빨간 등이 켜지고, 잠시 후 전동차가 미끄러져 들어와 내 앞에서 문을 열었다.  ‘자동으로 열렸다.’  객실의 긴 의자에 앉으며 생각해본다.  기다리고 바란다고 해서, 때가 오는 것은 아니다.  잡으려고 쫓아간다고 해서 잡히는 것도 아니다.  시절은 스스로 찾아오는 것일 게다.  준비하고 기다리면 언젠간, 그 때가 스스로의 의지로서 찾아오겠지.  사람은 인내하며 기다릴 뿐이다.  전동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밖의 승강장 불빛을 흘리며, 사람들을 지나 곧바로 어둠 속으로 달려간다.  역사의 빛이 사라지자, 흔들리는 창은 실내등에 의지한 내 모습을 비추고 있다.  나는 등을 기대며 숨을 내쉰다.  그리고 그 숨결에 흔들리는 듯한 창 속의 우물로 시선을 돌린다.  어스름한 빛.  잔물결이 이는 우물 속으로 세 얼굴이 어른거린다.  “보여?”  “기다려봐.”  “물 속엔 안보이니까, 우물 벽 어딘가 붙어있을 거야.”  영득이의 말에 나는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벽면도 유심히 살펴본다.  그러다 문득 허연 게 눈에 들어왔다.  “어, 저 하얀 건 뭐지 ?”  “어디 ?”  녀석은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처박고 보더니,  “너는 눈이 네 개면서도 안 보이냐 ?  저거 흰 돌이잖아.”  영득이가 답답한지 확 짜증을 낸다.  “얘, 눈 나쁘니까 안경을 쓰는 거지.”  여자애가 영득이를 나무란다.  “시끄러.  여기 분명히 조개가 있으니까, 넌 각오하고 기다려.”  영득이는 부글거리는 목소리로 쏘아보며 말했다.  한 삼십 분쯤 들여다봤을까?  영득이는 얼굴뿐만 아니라 눈도 시뻘게져서 괴기스럽기조차 하였다.  결국에는 고개가 아프더니, 눈도 아프고, 키 작은 아이가 발끝으로 서서 우물 안을 보느라, 발가락과 발목도 시려 왔다.  “지쳤다.  지쳤어...”  나는 우물을 기대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여자애는 좀 전부터 꽃을 따러 다닌다.  영득이만이 끝까지 고개를 처박고 우물 속을 노려보더니, 이제는 땅에 고개를 떨구고 우물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내가 봤어.  봤다고.”  영득이는 중얼중얼 거리며 주위를 돌아보고는 막대기를 들어 땅을 헤집기 시작했다.  ‘저 녀석 뭐 하는 거지?’  의문이 들었지만, 난 이제 알고 싶지도 않고, 그저 우물에 기대어 쉬고 싶었다.  남자애가 땅을 헤집고, 여자애가 꽃을 따는 것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푸른 하늘, 하얀 구름...  꿀벌이 윙윙거리며 머리 위로 날아가고 있었다.  노란색 민들레는 우물가에 피어 있고, 나무에 연두색 잎사귀가 바람에 살랑거렸다.  언덕을 넘어 가없은 허공에 졸린 눈길이 향하고 있었다.  나른한 봄날.  눈꺼풀이 감겨왔다.  그리고 그 애가 말을 걸어왔다.  “명지야.”  “... 어?”  “이 꽃 이름 뭔지 아니?”  “아니, 몰라.”  “나는 이 꽃이 참 좋다.”  “나도, 그 꽃이 좋은데.”  이름도 모르지만, 난 보라빛이 도는 그 꽃을 참 좋아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좋아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름도 모르며 좋아할 수 있다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때였다.  영득이 놈이 괴성을 질러댄 것은.  녀석은 막대기와 흰 무언가를 쳐들고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었다.  “찾았다!!”  여자애가 벌떡 일어섰다.  순간 그 애의 불안한 눈빛을 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옷을 털고 일어나 영득에게로 갔다.  나는 저놈이 줄곧 땅만 파는 것을 봤기 때문에, 뭔지 몰라도 은영이가 놀랄만한 건 아닐 거라 생각했다.  전동차는 이대를 거쳐, 신촌, 홍대를 달리는 동안 학생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나도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에서 공부했던가.  넓게 알기 위해 깊게 파기 위해, 또 깨닫기 위해 얼마나 공들여왔던가.  그런데도 여전히 목마르다.  지식을 더할수록 더 많은 의문이 떠올라, 지금은 내가 지식인인지 무식한인지조차 분간이 되질 않는다.  이젠 이 앎이란 녀석을 동아줄로 꽁꽁 묶어 창고에 처박아버렸으면 좋겠다.  이제까지 이놈에게 매달리듯 살아 왔다면, 이제는 광에 가두고 쫄쫄 굶겨서 놈의 살 빠지는 꼴을 비아냥대며 보고만 싶다.  “이제는 지긋지긋 해.”  “뭐가?”  “지식이라는 거.  다 날려버리고 싶어.”  지난 밤, 술잔을 기울이던 나는 푸념하고 있었다.  “하?  네가 지금 알면 얼마나 안다고.  지식이라는 거, 확실히 맛을 보고는 날려버리든지 해야지...  힘들다고 약해지면, 아무것도 안 되는 거야.”  지애 누나가 가득 따라주며 독려한다.  “너도 이대로 칠 년만 더 하면, 지식이 뭔지 알 거야.  그때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나는 술잔에 고개를 떨군다.  ‘앎이라는 신기루 속에서.’  알면 알수록 내 생명이 사그러지는 것 같은데, 세상에는 아는 것 말고도 많은 것이 있을 텐데...  고통스럽고 행복하지도 않은 이 길을 왜 끝까지 가려는 것일까?  칠 년?1  칠 년이라...  잔 속에 흔들리는 내 모습을 입안에 털어 버린다.  문득 학생들 웃음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난다.  재미있는 이야기와 서글서글한 웃음이 봄빛 의상과 잘 어울리는 학생들.  이들은 전동차 출입문에 기대어 한껏 즐거워하고 있다.  뛰놀던 동산 우물가에 모여 물 한 모금 머금고 마냥 즐거워하는 아이처럼 천진하고, 밝고, 아름답다.  아니, 저들은 우물가에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은 나처럼 우물을 먹는 게 아니라 샘물을 마시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나처럼 책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그때그때의 필요한 것을 얻고 또 영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근심 없이 삶을 영위하는 듯한.  저들의 행복을 나눠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창밖의 어둠은 빠르게 지나간다.  하지만 어둠이 지나가도 창문에 비친 내 초라한 모습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따라오고 있다.  나는 원고를 가방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손잡이에 의지해 출입문 쪽으로 나와 선다.  웃고 있던 학생들이 내 표정을 보고는 옆으로 비켜선다.  나는 내 모습이 비친 창문 너머, 어둠을 응시한다.  ‘심연에서 무얼 찾는 것일까?’  광막한 지식은 밤은 싸늘하고 쓸쓸하다.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며,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자조 섞인 웃음이 떠오른다.  캄캄한 굴속을 통과하던 차량이 불현듯 승강장의 빛 가운데로 나왔다.  어둠을 응시하던 나는 갑작스런 빛에 눈을 감는다.  홍대(弘大) 다음 정류장은 합정(合井)이다.  “도대체 이게 뭐야?”  “봐라!”  영득이가 의기양양하게 손을 펴 보였다.  나는 녀석의 손에 든 것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은영이는 뒤에서 긴장하고 있다.  “굴 껍데기잖아?”  “그래, 이런 게 우물 속에 살고 있던 거야.”  영득이는 감춰진 사건을 밝혀낸 듯, 홈즈소설의 경관처럼 히죽거리고 있었다.  “굴이 어떻게 우물에 살아.”  은영이가 불안한 목소리로 반박했지만,  “이게 증거다.”  영득이는 굴 껍데기를 은영에게 던지며 소리쳤다.  “저 계집애, 이젠 혼내줄 거야!”  “잠깐만, 이건 조개가 아니야.  그리고 살아 있지도 않잖아.”  나는 다급히 영득이를 잡고 설득하려 했다.  “무슨 소리야?”  약 오르고 화가 난 영득이가 어떤 행동을 할지는 뻔하다.  어떡하든 놈을 진정시켜야 할텐데...  이놈은 은영이에게 행패부릴 참이다.  나는 불안해졌다.  “저건 땅속에서 나온 굴 껍데기일 뿐이야.  그리고 살아 있는 게 아니라고.”  영득이는 손사래치며 나를 밀쳤다.  “껍데기가 땅속에 있는 걸 보면, 우물 안엔 살아있는 게 가득할 거라고.”  나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은영이가 소리쳤다.  “살아 있는 조개가 아니면, 네 말이 맞다고 할 수 없어!”  “저것이!”  그렇지 않아도 꼭지까지 화가 나있던 녀석은 은영에게 달려가 발길질을 해댔다.  여자애가 우물가에 쓰러졌다.  “이 계집애야 내가 말했지?  조개 찾으면 가만 안 두겠다고!”  놈은 쓰러진 은영에게 계속 발길질을 해댔다.  “그만둬!”  나는 녀석의 허리를 잡아 은영에게서 떼어놓았다.  “명지, 이 새끼 너 누구 편이야!  저리 안 가?”  그때였다.  영득이 얼굴에 주먹이 날아간 것은.  “그만두랬지!”  나는 영득이를 쏘아보며 소리쳤다.  저만큼 나동그라져 한동안 멍하니 쳐다보던 녀석.  놈은 몸을 가누더니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이 간나새끼, 너도 가만 안 두갔어!”  우리는 멱살을 부둥켜 잡고 땅위를 굴렀다.  서로의 주먹이 얼굴에 쏟아졌고, 입가에 피멍이, 입안엔 피가 고였다.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은영이가 말리려고 끼어들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둘 다 근성 있는 우리였기에 싸움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둘 중 하나가 포기하던지, 쌍코피를 흘리기 전에는 말이다.  “그만둬, 그만두라구 !”  은영이가 소리쳐 울며 영득의 웃옷을 잡아끌었다.  놈은 몸을 돌려 은영이의 팔을 뿌리치고는 떠밀었다.  은영이는 풀밭에 쓰러졌고, 그 사이 난 녀석의 옆구리에 강한 발길질을 해댔다.  영득은 “억-”하며 밀려나다, 돌부리에 걸려 거꾸러졌다.  합정역 계단을 오르면서 마을의 지명을 생각한다.  조그만 우물이 있던 작은 마을.  합정동은 원래 합정(合井)이 아닌 합정(蛤井)이라는 조개우물이란 뜻이었다.  우물 바닥에 조개껍질이 많았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조개우물이란 ‘작은 우물’의 뜻을 가진다.  어린 시절 그 조개 우물도 ‘작은 우물’이라는 뜻이었다.  그걸 몰랐기에 서로 앙숙이 되도록 치고받고 싸우기까지 했었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알고 모르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아마 서로가 진정으로 원했던, 그 마음들이 더욱 중요한 것일 게다.  ‘그 때, 영득이는, 은영이는, 그리고 나는.  우리가 정말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  합정역을 나서자 해가 진 도시엔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그 옛날 이 일대의 조그만 합정(蛤井)은 거대한 합정동(合井洞)으로 변모해왔다.  어린 시절 조개우물로 목을 축이며 이 마을 저 마을로 뛰어다니던 나도, 아동에서 청소년, 청년기를 거쳐 사회인으로, 작가로 변모하고 있다.  작은 우물에서 놀던 아이는, 점점 더 큰 우물로 옮아가며 어른이 된다.  그 사이, 스스로에게 또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삶은 진행된다.  영득이는 그 날 발목을 다쳤다.  돌에 걸려 넘어지면서 가뜩이나 시려있던 발목을 접질렸던 것이다.  금세 퉁퉁 부어올랐고, 혼자서는 걸을 수가 없었다.  녀석은 나와 은영이에게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욕설을 해댔다.  은영이가 차가운 우물물을 떠다가 발목을 식혀보려 했지만, 부기는 줄어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싫다는 놈을 억지로 내 등에 업고 산길을 걸었다.  등에 업혀서도 궁시렁대던 녀석은 해가 서산에 떨어지고 나서야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힘에 부쳐 여러 번 나무에 기대 쉬어가다, 결국 은영이와 양쪽에서 부축해 겨우겨우 산을 내려왔다.  마을 어귀에 이르자, 나뭇가지 사이로 별이 뜨는 것을 보았다.  그 별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빛은 깊이 각인되어, 오늘도 마음속에 떠오르고 있다.  이후로, 한동안은 영득이와 쭈빗거리며 서로 눈치 보느라 피했었지만, 다시 예전처럼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영득이와 은영이도 예전보다는 너그러운 사이가 되었다.  오히려 서먹서먹하게 된 건, 은영과 나였다.  영득이 놈이, 우리 둘에게 당했다는 말을 퍼뜨리고 다녀, 반에서는 좋아한다는 말까지 나돌 지경이었다.  더구나 한 책상을 쓰는 짝이 아니던가...  이후로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야 했고, 친한 척을 하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학교가 끝나고 아이들이 없는 산길이나 골목 어귀에서, 그 애는 여전히 질문을 하였고, 나는 아는 한 대답해주었다.  그러나 민물에도 조개가 살고 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우물사건 이후, 책에서 민물조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어느덧 계절이 지나고 가을로 접어들었다.  우물가엔 밤과 도토리 같은 나무열매가 가득히 열려, 동네 아이들은 나무열매를 따기 위해 작대기를 들고 모여들었다.  그리고 우리들이 도착했을 무렵엔, 아이들은 우물 속을 들여다보며 웅성대고 있었다.  쥐 한 마리가 빠져 죽은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 죽은 쥐를 던진 건지도 모른다.  아무도 물을 마실 수가 없었고, 모두 목마른 채 돌아가야만 했다.  깊어가는 가을 내내 우물에 갈 수가 없었다.  우물이 닫히자 활동이 줄어들었고, 우리가 건넌마을을 찾아가는 일도 드물어졌다.  그렇게 가을이 지나고 눈보라 치는 겨울이 시작되었다.  유년의 마지막 계절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인쇄소에서 초판본을 받아들고 연구동으로 향한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워진 합정동.  오늘도 우리는 삶과 앎의 궁금증을 달래기 위해 우물을 향해 달린다.  서로의 작은 우물들을 공유하기 위해 숲으로 모여드는 것이다.  우리 영혼은 얼마나 갈증에 허덕이며 살아가는가?  ‘목이 마르다...’  물을 퍼마셔도 지식을 퍼담아도 이 갈증은 해소되지 않는다.  가로등을 따라 연구동에 이르러 주변을 서성인다.  창가에는 먼저 온 그림자들이 어른거리고, 나는 멍하니 서서 불어오는 바람을 공허하게 맞고 있다.  밤거리에 던진 원고들이 바람 부는 대로 나뒹굴고 있다.  나뭇가지가 부벼대는 소리에 문득 고개를 드니, 홀로 선 플라타너스 사이로 별이 떠오르고 있다.  나는 시나브로 어두워진 하늘에 눈을 뜬 별들과 마주친다.  밤하늘 별과 별이 가까워 보이지만 얼마나 멀리 떨어져 운행되는가?  사람과 사람이 가까이 있지만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일까.  메울 수 없는 간격, 영혼의 깊은 떨림으로, 세상이 젖어 든다.  눈에 고이는 물은 온 세상을 잠기게 한다.  하늘도 물속에 잠기고 별들도 그 물결 속을 흐른다.  모두들 시름하고 있구나.  모두 다 눈물로 흘러내리고 있어.  그리고 어디선가, 일렁이는 물소리가 들린다.  하늘의 별과 더불어 온 세상이 넘실대며 제방을 넘어 밀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2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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