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고아와 압제 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시편 10:17~18)

지금 시인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무신론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들은 아주 교만한 얼굴로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며 하나님이 없으니 감찰하는 자도 없다며 악을 행합니다. 무신론자들 가운데도 도덕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겉으로 볼 때는 양심의 가책도 느끼고 휴머니즘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더 적극적인 무신론자들이 이들은 하나님이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매우 악하고 공의롭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존재나 심판을 믿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자신들의 뜻대로 될 것이며 자신들이 세운 것은 결코 허물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고 그들 자신만 존재합니다. 누구도 자신들의 행동에 제동을 걸 수도 없고 자신들의 계획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을 합니다.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행동으로 옮깁니다. 힘없는 자를 땅의 티끌과 같이 여기며 자신들만의 세상을 꿈꾸며 희희낙락합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위치에 오르고 누릴 것을 다 누립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머리로 하나님은 인정하고 교회에 드나들고 종교행위에 참여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이런 무신론자가 존재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훌륭한 목회자로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교회 안과 세상을 분리하여 두 세계 속에서 능숙하게 살아갑니다. 종교적인 성공도 거두고 세상에서도 인정을 받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고난 당하는 자를 더욱더 괴롭히기 위하여 악한 지혜를 짜내고 있습니다.(8.9절) 악인은 그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자신을 높입니다. 자기의 하는 일은 마치 견고한 성과 같아서 요동하지도 함락당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5절)
그런데 다윗은 이런 자들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하나님께 고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손을 들어 그들을 부러뜨려 달라고 하소연합니다. 그들의 악행을 하나하나 갚아 달라고 합니다. 다윗처럼 토해내지 않는다면 숨이 막힐 것 같은 그런 때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과 어려움에 대하여 방관하시듯 할 때 1절과 같이 절박한 호소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악을 규탄하기 전에 당면한 자신의 현실을 하나님께 고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의로우시기에 그 악을 아십니다. 그리고 갚으실 것을 믿습니다.
“주께서는 보셨나이다”라고 말합니다.(14절) 이것은 반전입니다. 주께서는 보시고 의로운 자의 원한을 감찰하시고 갚으신다고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하나님의 손을 드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12절) 악인의 팔을 꺾으시고 악한 자들이 지상에서 사라지도록 추격하여 심판하셔야 할 것이 아니냐고 하나님께 호소합니다.(15절)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십니다.(17절) 누가 겸손 자입니까?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 호소하는 자,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고 세상을 의지하지 아니하는 자, 자신의 재능이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맡기는 자가 겸손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답답한 일 있습니까? 문제가 있습니까? 모든 걸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겸손한 마음으로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글|박근상 목사(신석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