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S뉴스 박세현 기자

경상북도 안동시. 영남 유학의 상징인 안동의 곳곳에는 서원과 고택들이 촘촘하게 자리 잡고 있다. 퇴계이황을 기리는 안동 도산 서원은 지역의 유서깊은 유학의 전통을 보여줍니다. 도산 서원이 위치한 안동 도산면 원촌마을에 위치한 한 전통 기와집.

이원영 목사 생가
이원영 목사 생가

200년이 넘은 집 앞에 자리 잡은 비석에는 한 목회자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봉경 이원영 목사이다.

퇴계 이황 14대 손으로 1886년 태어나 어려서부터 유학을 배우며 자란 이원영 목사.신식사립학교와 민족학교를 다니며 신지식인 혁신유생으로 거듭난다. 하지만 이 목사는 1919년 안동 예안 3.1운동이 시작되자 기득권을 내려놓고 민족독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결국 운동의 주동자로 지목돼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게 된 이 목사. 이 목사는 당시 임시정부 초대국무령 이상룡 선생의 동생 이상동 조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이정우 목사 / 봉경 이원영 정신문화계승사업회기념사업회 위원장

수감생활이 끝나신 후에 바로 고향으로 내려오셔서 이곳에 원촌교회를 개척하게 돼서 문중하고 큰 마찰을 겪게 됩니다 그 후에 평양신학교에서 공부하셨고 목사님이 되시죠 유교에서 기독교로 전향하신 분이다

집안의 극심한 반대에도 목사의 길을 선택한 이 목사. 올곧은 선비정신에 더해진 기독교 정신은 나라사랑과 하나님사랑 실천에 날개가 됐다.

4차례 수감되면서도 일제의 신사참배, 창씨개명 요구를 거부하며 나라를 지키고 해방 후에는 신사참배문제로 분열된 교회를 대표해 일치와 화합을 외쳤다

사후 6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 목사의 정신은 후배 목회자들의 사역에 본보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 목사가 시무한 교회의 후임이자 그의 삶을 연구하는 이정우 목사는 그 중 하나이다.

생가에 대해 설명하는 이정우 목사(좌)
생가에 대해 설명하는 이정우 목사(좌)

이정우 목사 / 봉경 이원영 정신문화계승사업회기념사업회 위원장

신앙과 믿음으로 무장해서 많은 사람들을 믿음으로 신앙으로 일깨우려고 했던 어찌보면 신앙 안에서의 애국운동을 했던 목사님이었습니다 나라를 사랑했고 민족을 사랑했던 목사님의 모습이 오늘 이 시대에 우리가 닮아가야 될 신앙의 모습이라고 봅니다

안동 3.1운동이 일어났던 예안마을에 위치한 한국국학진흥원. 진흥원은 최근 이원영 목사의 연구에 착수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유학자들을 주로 연구한 진흥원이 기독교인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하기는 처음이다. 이 목사의 삶이 종교를 넘은 가치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종석 수석 연구위원/ 한국국학진흥원

단순히 서양종교를 받아들인 기독교인으로서만이 아니고 유교적인 교육이 몸에 밴 선비목사로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종교를 초월하는 근대 한국 기독교계가 혼란에 휩싸였을 때 뛰어난 리더십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널리 귀감이 되고 있다고 봅니다

이황의 후손보다 그리스도의 후손이 되길 선택한 이원영 목사. 하나님의 선비로 나라를 살리고 영혼을 살리는데 매진한 그 삶은 오늘날까지 큰 울림이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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