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린도후서 4:16)

19세기를 빛낸 미국의 시인 ‘롱펠로우’(Henry Wadsworth Longfellow, 1807-1882)의 “인생 예찬”(A psalm of life)이라는 시는 언제 읽어도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다시 마음의 열정을 회복하게 한다.
슬픈 사연으로 내게 말하지 말아라.
인생은 한갓 헛된 꿈에 불과하다고 !
잠자는 영혼은 죽은 것이어니
만물의 외양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다.
인생은 진실이다 ! 인생은 진지하다.
무덤이 그 종말이 될 수는 없다…..
아무리 즐거워도 “미래”를 믿지 말라!
죽은 “과거”는 죽은 채 매장하라!
활동하라, 살아 있는 “현재”에 활동하라!
안에는 마음이, 위에는 하나님이 있다……
우리 모두 일어나 일하지 않으려나,
어떤 운명인들 이겨낼 용기를 지니고,
끊임없이 성취하고 계속 추구하면서
일하며 기다림을 배우지 않으려나.
이토록 아름다운 시를 지은 롱펠로우는 아픈 과거를 지닌 사람이었다. 젊어서는 그의 아내가 오랫동안 앓다가 사별했고, 재혼한 아내 역시 부엌에서 사고가 화상을 입어 앓다가 그의 곁을 먼저 떠났다. 그가 75세가 되었을 무렵 기자가 찾아와 물었다.
“선생님은 두 부인의 비극적인 사별을 겪으셨고, 그 밖에 많은 고통을 겪으시며 살아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그토록 아름다운 시들을 쓸 수 있었습니까?”
롱펠로우는 마당에 보이는 늙은 사과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소나무가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저 사과나무는 몹시 늙었지요. 그러나 지금도 꽃이 피고 맛있는 열매가 열립니다. 나는 나 자신을 늙은 가지라고 생각한 일이 한 번도 없고, 언제나 새 가지라고 생각하며 꽃피우고 열매 맺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습니다.”
분명히 알자. 성경은 결코 당신의 나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Therefore we do not lose heart. Though outwardly we are wasting away, yet inwardly we are being renewed day by day / 고린도후서 4: 16).
우리 인생은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존재들이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In Him we live and move and exist / 사도행전 17: 28)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알파와 오메가 사이에 잠정적으로 존재하는 ‘사이(間)적 존재’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첫째, 삶의 현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어제는 역사(Yesterday is history)이고 내일은 미스테리(Tomorrow is mystery)인 반면, 오늘은 선물(Today is present)이다. 어제나 내일이나 다 우리의 손(권한) 밖이다. 단지 하나님께서 ‘지금 여기에’ 허락하시는 현재만이 언제나 미래의 출발선이자 가능성의 기회 현장이다.
둘째, 우리 모두의 현재에서 ‘언필신 행필과(言必信 行必果)’하자. 신의가 없는 말은 죽은 말이고, 행함이 없는 삶은 죽은 행동이기 때문이다.
셋째, 시종일관(始終一貫)하되 유종지미(有終之美)를 거두도록 하자.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라는 연회장의 칭찬처럼(요한복음 2: 10), 늘 처음처럼, 첫 사랑 첫 믿음의 신선함과 영적 성령 충만을 유지하자.
넷째, ‘나’라고 하는 조그마한 자기의 노예가 되지 말자. 도리어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가 되자(베드로전서 4: 10). 온갖 혼탁한 강물을 받아들여 정화시키는 바다처럼, 우리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긍정적(肯定的) 열정으로 활기차게 하자. 알파와 오메가 사이에 존재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된 삼백육십오일이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나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글ㅣ이규철(안동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