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코로나로 힘든 상황에서도 연합사역에 열심을 다한 목회자
충남학생인권조례 저지를 위해 앞장서
한국교계 중심이 되는 연합사역에 함께하게 돼

서천제일교회를 섬기고 있는 한철희 목사는 코로나로 힘든 상황에서 충남학생인권조례 저지를 위해 앞장서며 연합사역에 열심을 다했다. 아버지의 목회를 봐오며 자란 어린시절부터 목회의 길을 결정한 순간, 처음 목회했던 교회 그리고 연합사역을 하기까지 한 목사의 모든 시간 속엔 하나님이 계셨다. 한 목사가 지나온 시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함께하셨을까?

서천제일교회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한철희 목사
서천제일교회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한철희 목사

Q. 연합사역을 해오고 있다.

어렸을 땐 연합사역에 대해서 회장이라는 직책, 많은 사람들이 회장으로 나오는 신문광고를 보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다. 한국 사회에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차별금지법, 동성애 관련해서 일을 해오고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초교파적으로 많은 목사님들을 만나게 되었고 충남기독교총연합회에서 사무총장에 대한 제의가 있었고 그 기회로 연합회 사역을 시작했다. 충남기독교총연합회가 한국교계 전체에서 굉장히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등 여러가지로 보람된 일들이 많았다.

목양실에서의 한철희 목사
목양실에서의 한철희 목사

Q. 기억에 남는 연합회 사역은 무엇인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작년 5~6월에 충남학생인권조례를 막기 위한 일이었다. 결과적으론 통과가 됐지만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서 3차례에 걸쳐 집회를 하고 충남 전체 교회에 홍보도 했다. 그리고 보령에 계시는 한 목사님께서 도청 앞에서 10일 단식을 하셨었는데 나도 옆에서 같이 잠을 자고 지내면서 학생인권조례를 적극반대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몇년 전 하나님께 초교파적으로 많은 목사님들과 좋은 목사님들을 많이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는데 연합회 사역을 통해 목사님들과 함께 활동을 하다보니 교단을 떠나서 인간관계가 넓어지고 그 기도에 응답을 해주셨다. 그래서 현재는 많은 초교파 목사님들과 교제도 하고 함께 일도 하고 있다.

목양실에서 말씀을 준비 중인 한철희 목사
목양실에서 말씀을 준비 중인 한철희 목사

Q. 목회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내가 제일 첫번째 목회했던 원산도에서의 시간이다. 섬에서 처음 목회를 시작해서 만 4년을 지냈는데 1월 비바람이 치던 추운 어느날, 작은 배를 타고 새벽기도를 하러 갔다. 교회가 건축된지 오래되어 더 추웠는데 추운 곳에서 난로도 틀지 않으시고 권사님 3~4분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셨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원산도라는 섬에서 결혼도 하고 목사 안수도 받고 첫 아이도 낳고 많은 행복한 일들이 있었다.

2003년 목사 안수식
2003년 목사 안수식

어렸을 때부터 교회나 목회에 대해서 직, 간접적으로 보고 배운 것들이 있었지만 내가 직접 담임하는 목회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서툰 것도 많고 부족한 것도 많고 실수투성이었는데 교회 성도님들께서 다 이해해주시고 받아주셔서 참 행복했었다.

한철희 목사가 원산도교회 목회 당시 교인들과 부활절에 찍은 사진
한철희 목사가 원산도교회 목회 당시 교인들과 부활절에 찍은 사진

Q. 서천제일교회는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나?

부친께서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천제일교회에 와서 목회를 시작하셨고 현재 위치로 2002년에 교회를 건축하고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2014년부터 이곳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교회를 건축할 때 학생들과 함께 같이 벽돌을 날랐던 재밌는 기억도 있다.

서천제일감리교회
서천제일감리교회

Q. 서천제일교회만의 특별한 사역이 있다면 무엇인가?

우리 교회는 다른교회와 비교했을 때 특출난 사역은 없다. 하지만 정통적인 목회, 예배가 있는 교회다.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림으로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그것이 내 목회 중심이다. 이것이 우리교회만의 특별함이다.

Q.목회를 하게된 동기가 있나?

아버지의 목회를 보면서 어렵고 힘든 모습을 많이 봐왔기에 목회에 대한 생각이 많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대전에서 다녔는데 3학년 여름방학 때 부모님께서 신학교를 가 볼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신학에 대한 말씀을 처음 하셨는데 처음 들은 말씀에 진지하게 신중히 생각해보게 됐고 진로를 바꿔서 신학교를 가기로 결심하고 3학년 여름방학 때 부터 공부해서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입학한 것이 목회의 시작이었다.

한철희 목사 가족 사진
한철희 목사 가족 사진

그리고 목회를 시작하고 나서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우연히 참석한 한 세미나에서 책을 보았다. 설교에 관한 책이었는데 달라스 신학교 교수님의 책이었고 그 영향으로 2004년부터 10년 정도 미국 텍사스 주의 달라스 신학교라는 초교파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신학교 재학 중에 내적인 혼란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들이 있었다. 그 때 목회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한 때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셔서 목회를 하게 되었다.

2001년 한철희 목사 부부 대학원 졸업사진
2001년 한철희 목사 부부 대학원 졸업사진

Q. 서천으로 돌아와 목회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에서의 공부가 마쳐질 때 쯤 자연스럽게 오게 되었다. 서천이라는 곳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개척하셔서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시간을 보내고 지낸곳이고 고등학교 때부터는 객지생활을 했기에 서천에서 실제적으로 산 기간은 길지 않았다. 고향은 그 옆 지역인 보령이지만 서천이 더 고향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그 마음으로 지금까지 쭉 목회를 해오고 있다.

목양실에서 인터뷰 후 사진 찍고 있는 한철희 목사
목양실에서 인터뷰 후 사진 찍고 있는 한철희 목사

Q. 비전은 무엇인가?

서천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은 인구가 현재 5만 2천 명인데 서천의 50%는 복음화가 이루어지고 서천제일교회가 읍 인구의 10%의 영혼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도제목을 가지고 있다. 또한 목사님들과 더 연합을 해서 서천 지역에서 동성애,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이슈에 대한 세미나를 갖고 기도회를 갖고 있는데 그 중심적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교회의 본질인 영혼구원과 복음전파는 당연히 열심히 하겠지만 외적으로 안좋은 이슈들이 있어서 침묵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 그런 마음을 주셨다면 실행해야 하기에 이 일들에 대해서 열심히 하고자 한다.

인터뷰 후 교회 앞에서 사진을 찍는 한철희 목사
인터뷰 후 교회 앞에서 사진을 찍는 한철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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