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터툴리안의 삼위일체론

삼위일체 기독교 교리의 윤곽을 형성시킨 학자는 서방의 터툴리안(Tertullian)이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안에 하나님의 신성(divinenature)이 있다고 가르쳤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하나의 신성을 공통으로 소유한다. 그러나 인격에 관해서는 서로 분리하거나 구별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 신성이 있으나 세 인격(three person)이 있고 세 인격은 한 본성에 존재한다.
터툴리안에게도 이단적 요소가 있었던 부분이 있다. 그는 말하길 “성자는 영원하지 않다. 세상을 창조하실 때 창조주가 된 것처럼 영원하신 하나님이 성부가 되신 것은 성자를 낳으실 때 비로소 그렇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점에서 그는 변증학자들과 같은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7. 아리우스

알렉산드리아의 장로 아리우스(Arius)는 변증신학과 양자론에 큰 영향을 받았다. 아리우스는 성부 하나님만이 시작이 없는 영원하신 분이시고 성자는 시작이 있는 분으로 보았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최고 존재로 삼았다. 그 증거로 아들 예수는 인간의 육체를 가졌으나 인간의 영혼은 갖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로고스가 인간 영혼의 자리에 들어갔기 때문에 예수는 완전한 인간이 아니었고, 로고스는 피조물이므로 예수는 완전한 하나님일 수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Bernhard Lohse, A Short History of Christian Doctrine)

8. 니케아 신조

아리우스의 이단적인 주장은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알렉산더의 반박으로 알렉산더 대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그러나 아리우스는 정치력을 동원하여 새로운 교회회의를 열고 그의 주장을 공인 받고자 하였다.
첫 회의는 니케아(Nicea)에서 325년 5월 20일에 소집되었다. 회의는 처음부터 3파전이었다. 아리우스 이단파, 중간파, 정통파였다.
회의가 고조에 올랐을 때 알렉산더 감독이 사별하자 아타나시우스(Athanacius)가 계승하게 되었다.
초반기 회의분위기는 아리우스 쪽으로 기울어지다가 아타나시우스의 등장으로 역전되었다. 아타나시우스는 성부와 성자는 동질이며 동시에 성자는 영원하신 분으로 주장하였다. 그의 설득력 있는 설명은 만일 성자가 피조물이라면 아들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지적이었다. 그의 주장은 결국 다수 회원들의 동의와 황제의 동의를 얻게 되어서 니케아 신조를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의 참 하나님이시다. 출생은 했으나 피조되지는 않았다. 성부와 성자는 동일본질이시다”

9. 초대교회의 종교회의 (Robert G. Walton, Chronological and Background Charts of Church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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