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유교 집안에서 태어난 대가족 장손 전석범 목사. 미션스쿨 중학교에서 하나님 만난 후 평생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로 매달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 신학생 시절 고학, 군대에서 믿음 지키기 위해 정면돌파, 신학대학원 수석 입학으로 전액 장학금, 교목과 담임 목사로 최선을 다해 가르치고 소통하며 한 영혼을 끝까지 사랑하는 목회를 이뤄가는 가양교회 전석범 목사를 만나봤다.

가양감리교회 전석범 목사
가양감리교회 전석범 목사

| 삶의 시선

원산도 제사 지내던 집안 장손이 하나님께 "주님의 종이 되겠습니다"
신학교 가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고학으로 일어서
자대 배치 신고식 '부름받아 나선 이 몸' 불러, 주일 성수 길 열려

Q. 하나님을 어떻게 만났나?

나는 철저한 유교 전통 집안에서 태어났다. 충남 보령에 원산도라고 하는 인구 한 2천여 명 정도 되는 섬에서 대가족의 장손으로 제사도 지내면서 자랐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고기도 잡으시고 농사도 지으셔서 부족하지 않는 형편이었다. 중학교에 원산도에 있는 미션스쿨인 원의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예배도 드리게 되고 성경도 배우게 되면서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때 교목으로 계시던 신청 목사님께서 우리를 위해 정말 열심히 사역하셨는데 그 영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됐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던 나는 예산 삽교에 있는 신설 고등학교에 3년 장학생으로 가게 됐다. 유학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근처 감리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 2학년 때 봉림산에 있는 기도원으로 고등부 여름 수련회를 가서 일주일 동안 말씀 듣고 기도하였다. 수련회 마지막 날 봉림산 꼭대기에서 소나무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다가 소나무는 뽑히지 않았지만 성령의 불이 임했다. 그날 방언 받고 밤새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했다. “하나님! 앞으로 주님의 종이 되겠습니다!” 새벽녘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사랑하는 아들 석범아 내가 너와 늘 함께 할 것이다.”라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교회학교 교사, 성가대, 학생부 연합회장 등 열심히 했다. 그리고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목원대학교 신학과에 진학했다.

Q. 신학교 진학을 하는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나?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늘 1등을 하고 상도 많이 탔기 때문에 부모님의 기대가 컸다. 마을에 공부 잘하는 2년 선배가 공주대학교 사범대학을 들어갔는데 아버지가 나도 공주 사대 국어교육과에 들어가서 교사가 되기를 바라셨다. 그런데 내가 부모님의 허락을 받지 않고 목원대학교 신학과에 지원해서 합격하게 됐다. 오산리 기도원에 들어가서 부모님의 마음을 녹여달라고 사흘 동안 금식기도를 하고 집으로 갔는데 아버지께서 안방으로 부르시더니 “어느 대학에 지원했느냐?” 하셔서 “신학대학에 들어갔습니다.”말씀드렸다. 아버지께서 “이제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모든 기대를 저버리고 네 마음대로 했으니까 이제 모든 건 네 마음대로 해라. 지원은 안 해주겠다.” 

1981년 3월 입학과 함께 고된 대학생활이 시작됐다. 자취생활을 하면서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책 방문 판매, 아이템플 도서 배달 등으로 생활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부유한 가정에서 평탄하게 살았던 삶과 반대로 20대 초반은 광야와 같은 삶이었다. 삶은 피곤했지만 신학생으로 새벽기도도 열심히 하고 교회 봉사도 최선을 다했다. 공부에 대한 열정도 강해서 어느 것 하나 소홀하지 않았다. 그 시간을 통해 나는 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나를 철저하게 스스로 설 수 있도록 하셨다. 

군종 시절의 전석범 목사
군종 시절의 전석범 목사

Q. 군 생활 중에 에피소드는?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하게 됐다. 두 가지의 기도제목이 있었는데 군종 사병이 되는 것과 주일성수였다. 군 생활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체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입대해서 훈련소를 마치고 경기도 연천의 최전방 부대에 배치를 받았는데 함께 배치를 받은 신병 두 명과 신고식을 하게 됐다. 당시 신고식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는데 두 명 다 유행가를 잘 불렀다. 분위기는 고조됐다. 이제 내 차례가 됐는데 아는 유행가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하다가 찬송가 323장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찬송가를 불렀다. 그것도 1절부터 3절까지 다 불렀다. 들썩이던 분위기가 마치 찬물을 얹은 듯이 완전히 가라앉았다. 나는 군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 드러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갔으니까 그런 용기가 났던 것 같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포대장님이 그날 밤부터 나에게 취침기도를 하라고 하셨다. 알고 보니 포대장님이 집사님이셨는데 그날 감동을 받으셨는지 성령님이 역사하셨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자대 배치 후 첫 주일 아침, 눈이 엄청 와서 부대원 전원이 연병장에 집합해서 눈을 치우게 됐다. 그런데 그때 손을 들고 교회 가게 해달라고 했다. 허락을 받고 군인교회에 갔는데 대부분 제설작업하느라 몇 명만 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주일 성수를 지키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하면서 눈물로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부대로 복귀하니까 한 고참이 나를 포를 숨겨놓는 굴속으로 데려가서 때리기 시작했다. 쇠 파이프로 엄청나게 때렸다. 평생 그토록 많이 맞아본 적은 처음이었다. 엉덩이에 피멍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감사가 넘쳤다. 지킬 수 없는 상황에서도 주일예배를 드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토요일만 되면 눈이 많이 왔다. 또 손들고 교회 가고 다녀와서 얻어맞기를 한 달이 넘게 하니까 그때부터는 나를 인정해 줬다. 이후로 제대할 때까지 주일예배를 빠지지 않고 예배드릴 수 있게 됐다.

| 사역의 시선

군종병으로 새벽기도 주일예배 인도, 민간인 7가정 심방해 담임목회 한 셈
26살 담임전도사 시작, 수석으로 신학대학원 입학, 권사님의 딸과 결혼
호수돈여자중고등학교 교목, 목원대학교회, 가양교회 사역 이어와

2018년 부활절 칸타타를 마치고 기념사진
2018년 부활절 칸타타를 마치고 기념사진

Q. 목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나의 첫 목회는 군대에서 시작한 셈이다. 대대 군종병이 제대를 하면서 대대장님께 나를 후임 군종병으로 추천을 했다. 나는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대대 본부로 옮겨가고 군종으로 보직이 바뀌었다. 이후 2년 동안 군종 사병으로 매일 새벽기도회를 인도했다. 그리고 주일 낮 예배, 주일 저녁예배, 수요예배 등 모든 예배를 내가 담당했다. 어떻게 보면 담임 목회를 하는 것처럼 됐다. 민간인 성도 7가정도 출석했기 때문에 심방도 다녔다. 

어느 날 대대장님이 나를 부르셔서 휴가를 다녀오라고 하셨다. 이유가 부대 안에 불당에 사용할 선풍기와 냉방 기기를 위한 선교비를 받아오라고 하셨다. 나는 교회를 위해서는 할 수 있지만 불당을 위해서는 못한다고 말씀드렸다. 명령을 불복종 한 것이다. 나를 영창에는 보내지는 못했지만 그날부터 나는 사병들과 근무도 서야 되고, 교회도 예배시간만 갈 수 있도록 조치가 내려졌다. 말씀 준비하는 것도 어려워지고 새벽기도, 위문활동도 다 제한됐다. 대대장 부부가 불당에 지원을 많이 하게 되면서 선교에 어려움이 많이 겪게 됐다. 나는 또 기도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해결해 주세요.” 얼마 후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는데 대대장님이 다른 부대로 전출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더 큰 기적은 새로 오신 대대장님이 육군본부교회 집사 부부였고 고등학교 친구의 사촌 형님이셨다. 주일만 되면 사복을 입고 부부가 예배당 맨 앞자리에 앉아서 군종병의 설교를 들으셨다. 대대장 부부가 왕군교회 예배에 참석하자 많은 군인들이 예배에 참석하게 되어 큰 부흥을 이루게 됐다. 이후 군인교회 리모델링도 하게 되고 전역할 때까지 멋있게 군선교 할 수 있도록 하나님 인도해 주셨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기도하면 어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멋있게 역전시켜 주시는 하나님을 20대에 군대에서 경험하게 되었다. 모태신앙이나 3~4대 믿음의 가정에서 신앙생활을 하면 부모님들의 기도가 뒷받침될 수 있을 텐데 나는 부모님들께서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시기 때문에 맨땅에 헤딩하는 것처럼 했다. 그래서 더 하나님을 신뢰하고 더 의지하고 더 간절하게 지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멋있게 역전시켜 주시고 때마다 개입해 주셔서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체험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다. 

전석범 목사는 CTS설교방송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전석범 목사는 CTS설교방송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Q. 담임 목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지금은 신학대학원까지 졸업해야 목회를 할 수 있는데 그때는 신학과 4학년 마치면 목회를 할 수 있었다. 군 제대 후 3학년 2학기 복학하면서 신탄진에 있는 작은 교회에 교육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하게 됐다. 교회 옆에 장로님과 권사님들이 나무로 작은 숙소를 만들어주셨다. 그 옆에는 아주 높은 축대가 있었다. 1987년 7월, 장마로 비가 많이 오는데 여름성경학교를 진행하고 있었다. 6학년 12명을 데리고 분반공부를 내 숙소에서 인도하고 있는데, 자꾸 빨리 마치고 나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예정된 시간이 더 남았지만 서둘러 정리하고 나왔다. 12명 아이들과 내가 숙소에서 나와서 교회에 들어가는 바로 그 순간 30미터가 넘는 축대가 완전히 무너져서 집이 매몰됐다. 정해진 시간까지 분반공부를 진행했으면 12명의 아이들과 나는 콘크리트 더미에 완전히 매몰되어 죽었을 것이다. 놀라운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다. 엄청난 폭우 때문에 아르바이트하면서 모아놓은 책이라든가 옷, 살림 도구 등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고 수해민이 되어 적십자에서 보내준 물품으로 지냈다.

그런데 얼마 후 9월에 논산 근처 신은감리교회에 담임 전도사로 부임하게 됐다. 30명 정도 모이는 교회에 할머니 권사님이 목회를 하고 계시던 곳이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신학과 4학년 2학기 학생인 나를 하나님께서 놀랍게 인도하셨다. 

김병미 사모와 전석범 목사
김병미 사모와 전석범 목사

Q.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많이 경험했을 것 같다.

이른 담임 목회를 열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더 큰 은혜는 신은교회에서 기도대장으로 헌신하시던 문 권사님께서 40일 특별 작정기도를 하시며 나를 사위 삼고 싶다고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그 기도가 이뤄져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던 아내를 만나 5개월 만인 1988년 3월 1일 결혼하게 됐다. 

또 신학대학 3~4학년 동안 전액 장학금을 받고 수석으로 공부하면서 다녔지만, 신학대학원도 장학금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신학대학원을 꼭 수석으로 입학하게 해주세요.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요.” 간절히 기도했다. 통학하는 버스 안에서도 열심히 공부했다. 신학대학원도 수석만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장학금을 받도록 길을 열어주셨다. 수석으로 입학하게 하신 것이다. 

모든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세밀하시고 특별한 섭리였음을 고백한다. 나를 일찍 신학교 1학년 때부터 연단시키시고, 군대에서 여러 가지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 주시고,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구원해 주시고, 또 목회지도 예비해 주시고, 신학대학원도 수석으로 입학하게 해주시고, 헌신하는 아내도 만나서 결혼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고 감사드릴 것 밖에 없다.

전석범 목사는 매주 토요일마다 전성도들에게 직접 작성한 목회서신을 보내고 있다.
전석범 목사는 매주 토요일마다 전성도들에게 직접 작성한 목회서신을 보내고 있다.

Q. 목회를 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는 사역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2가지 있는데 ‘함께 하는 것’과 ‘소통’이다. 그리고 목회자가 모든 영역에서 본을 보여야 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함께 하면서 소통하면서 사역해왔다. 나는 호수돈여자중고등학교 교목으로 약 7년 여 기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때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다 거의 다 외웠다. 종교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명찰을 가리고 있어도 내가 이름을 다 기억해서 불러주니 아이들이 행복해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생명 다해 가르쳤다. 매년 성탄절 때 세례식을 하는데 200~300명씩 세례를 받게 되고 학생들에게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다. 또 전도된 학생들을 주변에 있는 교회로 연결시켜서 교사와 반주자로 봉사할 수 있도록 했다.

특별한 선물이 기억나는데 겨울방학을 시작하던 날 한 학생이 성탄선물과 카드를 교목실로 가져왔다. 부모님이 절에 다녀서 딸이 기독교 학교에 배정돼서 걱정을 많이 하였는데 목사님을 통해 예배드리게 되고 성경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돼서 정말 감사하다는 내용이다. 너무 감동이 됐다.

신학 박사과정을 마칠 때는 하나님께서 목원대학교회로 인도하셨다. 신학과에서 매 학기마다 대학생들에게 강의하게 되었고 더욱 감사한 것은 교회가 처음에는 몇 십 명밖에 안 모였는데 수 백 명으로 성장했다.  

가양감리교회 선교비전센터 전경
가양감리교회 선교비전센터 전경

Q. 가양교회에서 사역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2009년도 7월 1일 가양교회에 부임해서 지금까지 12년 동안 장로님들과 성도들과 함께 행복하게 목회를 하고 있다. 그리고 장로님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사역을 위임하고 소통하면서 팀 목회를 해오고 있다. 성도 한 분 한 분을 귀하게 여기면서 은사 배치 사역을 하다 보니 교회가 든든하게 서가고 코로나 상황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여전히 열심히 헌신하고 있다. 작년 10월에 4년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본당 리모델링과 선교비전센터 봉헌예배를 드릴 수 있었는데 성도들이 눈물겹도록 헌신한 것에 대해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1,100평으로 지어진 선교비전센터는 장로님을 비롯한 온 성도들이 다음세대를 생명의 부양자로 세우고 지역 주민들에게 선교하고 교제할 수 있는 활발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첫째, 가양교회는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면서 불신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이다. 7월 첫째 주 맥추감사예배 드리면서 나를 비롯한 전 교인이 태신자를 작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1,300명 가까이 되는 작정 명단을 교회 게시판에 적어 놓고 영적인 제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둘째, 제자 삼는 교회로 제자를 양육하고 가르치는 사역을 열심히 하고 있다. 교회뿐만 아니라 신학대학원에서도 20년이 넘게 가르치고 있다. 교회에서 12년 동안 매주 수요일에는 여성 리더들, 금요일에는 남성 리더들을 1시간 30분 정도 말씀으로 훈련하고 있다.

셋째, 다음 세대를 세워가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가 ‘다음 세대를 생명의 부양자로 세우는 교회’이다. 유니게와 바울을 통해서 디모데라고 하는 신실한 제자가 세워진 것처럼 ‘유바디 교육’이라 이름하고 철저한 교육 콘셉트를 가지고 교사를 훈련시키고 있다. 

네 번째는 선교하고 구제하고 봉사하는 교회이다. 교회 1층 파구스 카페의 수익금은 장학금과 지역 아동, 어려운 이웃을 구제하고 선교하는 데 전액 사용하고 있다. 비전스쿨을 통해서 다음 세대를 생명의 부양자로 세우고 문화 센터, 다양한 강좌를 통해서 지역 주민들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교회를 지향하고 있다. 매달 40여 곳의 비전교회와 사회 기관 등에 선교비를 지원하고 있고 지난 12년 동안 해외 지교회 3곳을 건축하고 앞으로 아프리카 케냐와 동남아에 3개 지교회를 더 건축하려고 한다.

가양감리교회 선교비전센터 봉헌 예배를 마치고 내빈, 임직자들과 함께
가양감리교회 선교비전센터 봉헌 예배를 마치고 내빈, 임직자들과 함께

Q. 당신의 달란트를 PR 한다면?

나는 늘 어떤 상황에도 감사하면서 긍정적으로 생각을 한다. 많은 연단 속에서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셨기 때문에 나의 사고와 생각은 긍정적이고 늘 감사하면서 생활한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을 잘 기억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달란트라고 생각한다. 또 나의 표정은 늘 웃는 인상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만나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셨다. 

굉장히 중요한 달란트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르침의 은사를 주셨다. 우리 교인들을 열심히 가르칠 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가르치고 목사님들도 계속 가르치고 있다. 지방 부흥 집회라든가 말씀 사경회 같은 데 가서도 말씀으로 가르치면 다들 은혜를 받으신다.

| 생각의 시선

목회에서 소통 중요,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사역의 키워드
김근철 교장 선생님, 김희인 목사님, 존 맥스웰 박사 영향받아
목회자는 말씀의 전문가, 소명의식과 탁월한 영성 준비돼야

월드비전과 함께 아프리카 에스와티니 선교 사역 모습
월드비전과 함께 아프리카 에스와티니 선교 사역 모습

Q. 요즘 많이 생각하는 주제는?

지금까지 목회와 여러 사역을 해오면서 느끼는 것은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 자신이 먼저 소통을 잘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교회 장로님들과도 더 소통하고, 교인들과도 소통하고, 부사역자들도 많은데 부사역자들과도 잘 소통해서 함께 좋은 사역을 하길 바라고 있다. 또 우리 교회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목회자들과 장로님들과도 시간 될 때마다 만나서 이야기도 듣고 기도제목도 나눠가면서 함께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나의 목회 사역의 키워드가 됐다.

전석범 목사 가족사진.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전석범 목사 가족사진.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Q.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에 가장 영향을 끼친 존재는?

나를 아주 사랑해 주시고 기도해 주셨던 원의중학교 김근철 교장선생님이 계셨다. 장로님이셨는데 매일같이 점심시간에 나를 교장실로 부르셔서 기도를 해주셨다. 그리고 “석범아, 너는 도산 안창호 선생님처럼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또 하나님이 영광을 위해서 큰 인물이 될 거야. 내가 너를 위해서 늘 기도해 줄게.”라고 말씀하셨다. 특별히 잊히지 않는 감사한 기억은 중학교 졸업식 날 내가 교육감상을 받았는데 학교에서 우리집까지 3.5km 떨어진 거리를 직접 자전거를 타고 오셔서 아버지에게 아드님 잘 키워서 정말 감사다고 말씀하셨다. 그 정도로 나를 사랑해 주시고 기도해 주셨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는 전화연결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늘 엽서를 보내주셨다. 지금은 하늘나라 가셨지만 나에게 참 영향을 많이 주신 분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학교 다닐 때 출석한 삽교감리교회 김희인 목사님께서 신실하게 목회하는 모습을 보면서 목회자는 저 목사님 같은 모습을 갖춰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외에도 나를 가르쳐 주신 수많은 교수님들과 목사님들이 있다.

또, 세계적인 리더십 전문가 존 맥스웰 박사가 있다. 지금 내 서재에도 존 맥스웰 박사의 리더십에 대한 책이 수십 권 있다. 나는 목회자의 리더십만큼 교인들의 역량도 그만큼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목사 자신이 탁월한 리더십을 겸비해야 된다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게 됐다. 그래서 존 맥스웰 박사의 리더십에 관계된 책이라고 하는 책은 모두 구입해서 계속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다. 존 맥스웰 박사의 리더십 특별 세미나가 여러 번 있었는데 나는 그 과정을 모두 다 공부하고 목사님들에게 같이 나누기도 한다.

작년 겨울 지역 주민들을 위한 ‘이웃사랑 쌀 나누기’ 행사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작년 겨울 지역 주민들을 위한 ‘이웃사랑 쌀 나누기’ 행사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Q. 후배 목회자들을 위한 조언을 한다면?

21세기 목회를 해나가는 데 있어서 우리가 갖춰야 될 네 가지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고, 그다음에 하나님이 세워주신 자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일꾼이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소명 의식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과 하나님의 뜻에 민감한 삶과 사역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서 늘 나 자신에게도 도전하는 것은 성경의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도 의학에 전문가가 돼야 하듯이 목회자는 성경의 전문가가 돼야 한다. 먼저는 가장 중요한 것이 말씀이기 때문에 탁월한 말씀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고, 그다음에는 내 힘으로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거니까 탁월한 영성과 함께 무릎을 꿇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서 있다. 하나님 앞에 서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사역을 해 나가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늘 나 자신을 체크하고 또 후배들이나 동료들에게도 “말씀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 앞에 서 있기 때문에 무릎 꿇고 기도하면서 늘 정직하게 사역에 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전석범 목사가 신천 권사, 집사 임원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전석범 목사가 신천 권사, 집사 임원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 세상의 시선

지금 세상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무너져 가는 시대
그리스도인이 깨어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회복해야
선십(Sonship)과 킹십(Kingship) 이뤄 하나님 구원 역사 계승하는 것이 우리 사명

Q. 당신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늘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지켜나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우리 안에 죄성이 들어오고 또 악한 영이 지배를 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하나님의 정의, 공의가 무너져 가는 시대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더 안타까운 건 포괄적 차별금지법 문제인데, 그것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창조 질서까지도 근간을 흔들어 놓는 상황을 우리는 보고 있다. 심지어 영국 감리교회도 동성 결혼을 허용한다고 한다. 결혼은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 몸을 이루는 것인데 그들은 결혼을 남자 또는 여자의 서로의 계약 관계라고 말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연합감리교회(UMC)도 교단이 갈라질 지경이다. 진보적인 진영은 동성 결혼을 허용하는 쪽으로 가고, 보수적인 진영은 절대로 안 된다고 막고 있다.

오늘날 시대적인 상황을 보면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무너지고 동성애도 조장하고 차별금지법과 평등법이라고 하는 미명 아래 교회의 가장 중요한 교리인 창조 질서를 억압하려고 하는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다.

1,300여 명의 전도 대상자 명단을 적어놓은 게시판. 가양교회는 불신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교회의 존재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1,300여 명의 전도 대상자 명단을 적어놓은 게시판. 가양교회는 불신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교회의 존재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Q. 변화했으면 하는 세상의 방향은?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깨어 있어야 된다.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완전히 무너지는 시대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창세기 1장 26절 이하에 보면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복을 내려주시면서 생육과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리라고 하시며 복을 내려 주셨는데 그 생육과 번성, 충만은 선십(Sonship)이라고 하고 정복, 다스림은 킹십(Kingship)이라고 한다. 이 땅에 하나님의 창조 질서대로 선십과 킹십을 이루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계승되도록 해야 될 책임이 목회자와 먼저 믿은 우리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소돔과 고모라성이 의인 10명이 없어서 완전히 무너진 것처럼 이 시대를 회복시켜야 될 우리들의 사명은 주님이 원하시는 의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돼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강한 도전을 하나님이 계속 주시는 것 같다. 

Q. 독자에게 권면과 도전의 한마디?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해 나가는 킹덤 빌더(Kingdom Builder)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 보내졌다. 우리는 반드시 복음의 4세대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투철한 사명의식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생명 다해 선포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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