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성경공부 2020년 6월 24일 수요일 저녁 8시 / 변상규 교수

4장 사단의 세 가지 시험

시험은 테스트로서의 시험과 템테이션으로서의 시험 두 가지가 있다. temptation은 사람을 의도를 갖고 넘어지고 다치게 하려는 시험이다. 악의적 시험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 시험하신다. 그건 테스트지 템테이션이 아니다.
오직 사람과 사단만 템테이션을 한다.

4장은 예수님이 30세를 넘자마자 공생애 즉 메시야로서의 삶을 사시기 위해 하나님이 부르신 첫 사건이다. 1절을 읽어보자. “성령에게 이끌리어” 이 때부터 적극적으로 예수의 삶은 성령이 인도하신 삶이었다. 마귀에게 시험(tempted)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광야는 항상 시험과 연단의 상징이었다. 우리 각자의 삶에는 각자의 광야가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은 그 광야에서 우리를 연단하신다. 그곳은 하나님과 나 밖에 없는 곳이다. 하나님은 모세5경에 당신이 히브리 민족을 택하시고 그들을 광야에서 시험하사 그들과 광야에서 신혼을 즐겼다고 하셨다. 그 당시에 이스라엘은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절-40일을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 지라..도미니언 이라는 정신과의사가 쓴 인간 예수 라는 책을 보면 예수님이 4일도 힘든데 40일을 금식하실 수 있는 인간적 이유에 대해 쓴다. 그것은 마리아와의 풍성한 젖가슴 체험이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로 보자면 Good enough한 젖가슴 체험 즉 구강기의 만족스러운 경험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예수는 하나님이시자 인간이었기에 그의 행동 이면에는 하나님의 마음과 인간의 어떠함을 추측할 수 있다. 마리아는 아기 예수에게 성심을 다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자기에게 속할 수 없는 분임을 알았다. 마리아는 예수와 자기 사이에 건강한 분화를 전제하며 촉진자로서 곁을 지킨 여인이다.

3절 시험하는 자의 유혹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사단이 하는 가장 첫 임무는 예수님의 하나님 됨을 뒤흔드는 것이다.

즉 정체성을 뒤흔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 무엇인가?

에덴동산의 하와에게 뱀이 그런 말을 한다. “참으로 하나님이 동산 모든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하더냐?” 참되신 하나님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참으로 그러더냐? 주님은 믿음을 심어주신다. 사단은 의심부터 심어놓는다.

이처럼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여일을 금식하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새로운 정체성과 사명에 대해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다고 마태복음은 서술한다.

예수께서 시험 받으신 광야에는 생긴 모습이 둥그렇고 모양과 색깔이 얼핏 보면 거칠게 구운 빵(떡)처럼 보이는 돌들이 수도 없이 많다고 한다.

그러니 아무리 하나님이시지만 육신을 입고 계신 분이라면 40일을 굶은 상태에서 아주 순간적이나마 그 돌들이 떡처럼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배고픔이라는 감정은 가장 절박한 감정에 속한다. 오늘도 지구 인구 70억 명 중 하루에 온전히 세 끼를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은 3분의 1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감사해야 한다. 예수님은 굶주리는 고통이 무엇인지 아는 분이다. 아무리 굶주려도 먹고 싶은데 못 먹고 40일을 버티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런 사단의 유혹은 예수께서 인생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매 달리시는 그 순간까지 군중들의 입을 통해 이어진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마태 27장 39-40보시오)

예수의 공생애 3년간 사단은 매 순간 매 번 쉰 적이 없다. 사단이 말한 돌을 떡 만들어 먹으라는 유혹에 예수께서 뭐라 반박하셨는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다"

떡으로만 이다. 떡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 공산주의의 기본 논리이다. 특히 레닌의 이야기는 더욱 그랬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은 아니라 하셨다. 떡의 중요성, 배고픔의 중요성을 인정하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먹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다.

창세기에는 첫째 아담이 실패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이다. 예수처럼 40일을 굶어보지도 않았음에도 선악과를 먹고 말았다. 에덴동산에는 먹을 것이 그토록 가득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둘째 아담 되신 예수님은 아담이 실패한 먹음의 문제 앞에서 실패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우리의 영혼이 만족할 수 있다.

4장 5-6절 성전 꼭대기에 있는 마귀..마태는 마귀가 성전 꼭대기에 있다고 한다. 은유적이다. 성전 꼭대기에 시험하는 자가 있다. 높이를 말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한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그러면서 구약의 말씀을 인용한다.

마귀도 성경을 인용한다. 자의적으로. 모든 이단들의 특징은 자의적으로 성경을 해석한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을 왜곡한 문선명.

7절 예수님의 반박,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우리는 성경을 갖고 이렇게 하겠다 하셨는데 제게 왜 이러십니까? 십일조 바치면 더 주시겠다 하셨는데 저 지금 생활이 매우 힘듭니다..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시험이 다른 게 시험이 아니다. 일종의 조종과 통제다. 조작이다.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에게 나갈수도 없고 무엇을 구하려 해서도 안 된다.

8절 마귀가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한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도 천하만국을 볼 수는 없다. 마귀는 높은 자리를 좋아한다. 그리고 세상의 영광을 중요하게 여긴다.

9절 모든 시험의 핵심적 이유가 드러난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 결국 마귀에게 절하라는 것이다. 네 영혼을 팔라는 것이다. 그 대가로 천하만국의 영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유혹은 모든 인류에게 임했다. 아담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고 알고 싶었다. 이 본문의 마귀는 천하 만국의 영광을 예수께 약속한다. 대신 절하라 한다. 일제 시대 때 신사가 있었다. 그 신사를 작게 만들어 교회 강대상 옆에 놓았고 그 앞에 먼저 고개 숙여 절한 후에 예배를 드리게 했다. 거기에 절하도록 부추긴 목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영광을 얻어 지금도 그 후손들 잘 살고 있고, 절하지 않은 목회자들 자손은 지금도 힘들게 산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어느 사람이 정말 잘 사는 것일까?

절대 마귀에게 고개 숙이거나 동의하거나 유혹에 넘어가거나 절하면 안 된다. 말씀에 우리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이를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는 영원성을 믿으며 그 영원한 삶을 믿는다. 그런 배신의 수치를 당하면서 영원을 누릴 수는 없다.

마귀는 항상 우리를 높은 자리로 이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깊은 자리로 이끄신다.

4장 12절 세례 요한이 잡히다. 요한이 체포된 이유. 당시 팔레스타인을 통치하던 헤롯왕은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는 분봉왕이었다. 그런데 헤롯은 헤로디아에게 반하여 20년간 넘게 살아온 부인과의 혼인을 파기하였다. 헤로디아는 헤롯왕의 이복동생 필립의 아내였다. 이로인해 세례 요한은 헤롯에게 형제의 아내를 가로챈 것과 악한 일을 행한 것을 책망하였다. 헤롯과 헤로디아는 더욱 악하여져서 세례 요한을 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헤로디아는 자신의 딸 살로메로 하여금 잔치 날에 성적인 춤을 추게 하여 헤롯의 마음을 산 후 요한의 목을 달라고 요청한다.

- 영적으로 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인물이다. 그가 잡히자 드디어 예수님이 17절처럼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신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그 천국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그 분을 통해 하나님의 권세가 세상에 임하기 시작한다. 거짓된 왕인 사단은 패한다. 사단은 인간의 죄를 먹고 사는 영적 동물이다. 그 죄를 모두 다 가져가신 예수로 인해 사단은 거짓된 권세를 끝맺게 된다.

18절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를 제자로 부르시는 예수님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19-22절 읽자. 그들은 주저 없이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른다. 아버지를 버려두고..마태의 암시다. 여기서 아버지는 제자들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유대교를 의미한다. 아버지를 떠난다는 이 말씀은 네 부모를 떠나라는 말씀과 유사하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겨야 한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 시작된 것이다.

23절 읽자.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것을 고치시니 교회는 가르치고 전파하며 치유하는 일을 한다. 사랑의 교회 옥목사의 주장.

* 구한말 한국의 초기 기독교는 이 세 가지를 몸소 실천하였다.

1. 전인적 기독교 교육 - 중고등학교 및 대학을 세움

2. 전도와 선교 - 전도와 선교로 교회가 성장함

3. 치유와 회복 - 병원 설립 / 물론 언급은 되어 있지 않지만 예배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

- 이 세 가지는 오로지 하나님나라를 위한 사역이어야 한다. 교회성장의 도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 라는 대의 명분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

조지 래드의 저서 하나님 나라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모든 신앙인의 필독서이다.

오늘 날 교회가 힘들어지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교회가 지나치게 몸 사리며 교회성장만을 위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했다면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도 교회는 굳건해진다. 목사 중심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교회가 옳은 것이다.

24-25절을 읽자. 당시는 너무나 힘든 상황이었다. 의사도 없었고 하루 한 끼도 해결이 어려웠고 종교인들은 돈만 아는 자들이었고, 죄의식만 심어주고 있었다. 그 어디에도 희망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그 사건은 그 당시(아래 세 가지 세상을 지배하던 종교와 철학과 사조) 어두움에 잠긴 세상에 큰 빛을 주신 사건이 된다.

* 유대교 - 사람들에게 율법을 통해 죄의식만 심어주고 아무런 해결책이 없었다. 유월절에 성전 제사를 드릴 적에 제물을 성전에서 길러 판매하는 일을 하였다.

* 로마의 스토아주의 - 지나치게 염세주의적이며 음울한 삶의 전제를 깔고 지성인들에게 전해진 철학 사조였다. 지혜와 달관을 주장하지만 결국은 허무한 삶에 대한 철학이었다.

* 영지주의 - 물체와 육체를 더럽다하여 영적 깨달음만이 삶의 고통을 벗어날 수 있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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