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 나무의 소원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산 속에 세 그루의 나무들이 저마다 나름의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나무는 왕을 모시는 멋지고 화려한 침대가 되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 나무는 바다를 항해하는 큰 배가 되어 사람들의 왕래를 도울 뿐 아니라 온 세계로 두루 다니며 쓰임 받기를 소원했습니다.
세 번째 나무는 높이 자라나 하늘을 향해 서 있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나무꾼은 산에 올라가 왕의 침대가 되고 싶었던 첫 번째 나무를 찍어 작은 구유를 만들었습니다. 소나 말들이 핥아먹는 먹이통이 되어 마굿간 한 귀퉁이에 팽개쳐버린 슬픈 신세가 되었습니다. 첫 번째 나무의 소원은 물거품이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고자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만왕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께서 왕궁이나 좋은 처소에 오시지 않고 더럽고 냄새나는 말구유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첫 번째 나무의 소원보다 하나님께서 더 영광스럽고 가치 있게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30년 후 나무꾼은 산에 올라가 큰 배가 되고 싶었던 두 번째 나무를 찍어 조그마한 고깃배를 만들었습니다. 바다가 아닌 호숫가에서 어부들이나 올라타고 비린내 나는 생선이나 싣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나무의 소원은 물거품이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실 때 갈릴리 호수에 오셔서 그 보잘 것 없는 고깃배를 빌리셔서 올라 앉으시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고깃배가 말씀을 전하는 주님의 강단이 되어 뜻밖의 영광을 입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나무의 소원보다 하나님께서 더 영광스럽고 아름답게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그로부터 3년 후 나무꾼은 산에 올라가 산에 홀로 남아 있고 싶었던 세 번째 나무를 급히 찍어 저주받은 죄인들을 매달아 죽이는 형틀인 십자가를 만든 것입니다. 세 번째 나무의 소원은 물거품이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세 번째 나무였던 그 십자가는 내가 죄를 지어 마땅히 벌을 받아 죽어 심판받아야 하는데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달리심으로 우리 죄를 용서하신 도구가 되었습니다. 세 번째 나무의 소원보다 하나님께서 더 영광스럽고 존귀하게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입니다.
개인적으로 아픔과 고통의 모든 순간은 사람이 만드는 것 같지만 배후에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큰 그림을 가지고 계시며 선하게 우리를 인도하시고 다듬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쁨과 고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십니다.

내가 나를 향한 계획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계획은 더 크고 놀랍고 위대하며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계획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들의 특징은 인생의 주어가 하나님입니다.
이런 사람은 환경이나 사람이 그를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승리도, 넘어짐도 받아들입니다.
잘되어도 교만하지 않고 잘 안되어도 흔들리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혹시 나의 계획대로 안 된다고 당황하거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더 좋은 계획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뜻 안에 있습니다.

내 꿈이 깨어진다고 하나님의 꿈이 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실패할 수 있어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신뢰하면 요동하지 않고 평안할 수 있으며 당당할 수 있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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