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릴 때부터 수많은 의무와 당위성 속에서 자아(ego)를 만들고 훈련받아왔다.

어른 보면 예쁘게 배꼽 인사를 해야 한다. 네가 앉은 자리는 네가 청소해야 한다. 사람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노력해라.

넌 할 수 있다. 고로 해야만 한다. 안하면 결국 다 니 책임이다. 그것도 모르냐. 한심한 인간이 되지 말아라..

아마 우리가 지금 나이를 먹기까지 얼마나 많은 당위성과 의무 속에서 그런 말들을 듣고 자라왔는지 가만 돌아보고 그것을 기록해 본다면

다들..경악할 것이다. "이렇게..많았어? 내 마음에 들어있던 의무와 당위적인 말들이..."

우리의 눈이 왼쪽을 보면 오른쪽을 볼 수 없고 밑을 보면 위는 볼 수 없다. 우리의 자아가 그렇다. 한 쪽 방향만 발달시켜왔던 것이다.

자기 삶을 마치 군인처럼 철저히 살아온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아침 일찍 일어났고 곧장 하루 일과를 계획하고 계획한대로 움직였다.

그렇게 수십년을 살아온 철저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꿈에서 북한 인민군이 나온 것이다.

인민군들이 도망가는 미군과 국국에게 총을 쏘는데 아군들은 정신없이 도망가고 숨지만 인민군은 그것을 정확하게 찾아내어 사살했다.

그는 식은 땀을 흘리며 일어났다.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이 자기 삶에 일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꿈분석을 해 달라 상담을 왔다. 그 꿈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렇게 물었다.

"선생님의 삶이 이제까지 인민군이었고 아군이었네요" 그는 알아듣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그리고 설명을 드렸다.

당신이 살아온 삶은 인민군처럼 철두철미하게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해 치우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온 것이다.

당신은 스스로 정해 둔 그런 목표를 실천하지 못하게 되면 쫓기는 아군들처럼 쫓기듯 뭔가 불안해 하고 강박적인 태도를 만들어왔다.

그런데 앞으로도 그런 식의 삶을 태도를 계속 유지하게 되면 당신은 스스로 쏜 총탄에 맞아죽을 것이다.

그는 그 해석에 큰 충격을 받았던것 같다. 잠시 긴 한 숨을 내쉬더니 "그런 거 같습니다..뭐 더 변명의 여지가 없네요"라는 말을 남기고

내 연구실을 나갔다. 10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지금도 그 분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군인이었기에..군인"답게"살아야 하는 게 맞다. 그러나 군인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나치 시대의 군인들 역시 뉘른베르크 법정에 서서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재판을 받았으나 그 누구도 죄를 뉘우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상부의 지시에 의해 그런 일을 한 것이지 자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항변한 것이다. 

그당시.. 낯에는 유대인들과 그 아이들을 잔인하게 생체실험하고 난도질한 나치 장교가 저녁이 되니 퇴근 한 후 자기 아이들과 놀아주는 

인자한 아빠였다는 이 분열증적 사실이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우리는 모두 그 군인처럼 어떤 역할에 충실하여 열심히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나도 모르게 의식의 일방성이라는 

최면에 빠져 너무나 경직되고 너무나 정확한 기계처럼 자신을 만들어왔는지 모른다.

그 군인에게 그 군인 무의식의 자기(self)는 경고하는 것이다. 인생이란 그렇게 쫓고 쫓기는 전쟁터만은 아니라고 말이다.

칼 융의 분석심리학을 공부해 본 사람은 이 심리학이 이상하게 종교적인 것 같다고 말하곤 한다.

종교성이 깃들어있는 건 분명하다. 아무튼 융은 신경증에 걸린 사람들에게 항상 그렇게 강조하였다. "태도를 바꾸시오"

일방적인 태도

너무나 익숙한 태도

너무나 한쪽 방향으로만 최선을 다하는 그런 태도를 바꾸지 않는 이상 우리는 계속 자아의 일방성으로부터 더 진전된 삶을 살아갈 수

없다고 경고한 것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일상의 반복이다. 어제 밥먹었으면 오늘도 밥 먹어야 하고 어제 한 일, 오늘도 해야 한다. 그렇게 반복이다.

그렇게 반복된 삶을 살다보면 우리는 스스로를 편리하게 일할 수 있는 기계로 만든다.

그럼 분명 돈도 벌고 삶은 돌아가는데 이상한 짜증과 우울, 소외감 그리고 불면의 밤을 지새우게 된다.

낙(樂)을 잃은 것이다. 흥을 잃은 삶이다. 작년 봄에 개봉한 대작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는 가슴이 뭉클한 기억이 있다

온통 전투와 긴장의 연속이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크리스 에반스(캡틴 아메리카)가 그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연인의 손을 잡고

흘러나오는 재즈에 춤을 추는 장면이었다.

군인에게는 군무가 아니라..재즈가 필요하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삶을 재즈처럼 살다 갈 수 없을까?

돈 버는 기계로 살다 죽다..이게 우리의 묘비명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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