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신앙의 추구 

진리를 향한 여정에서 끊임없는 번민과 갈등에 쌓여있던 어거스틴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만남이 이루어졌다. 밀란지방의 교회감독으로 암브로시우스가 부임하였다. 그의 설교는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수사학 교수인 어거스틴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암브로시우스의 감화력 있는 설교와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라는 신플라톤주의의 깨우침이 서서히 그의 어두운 마음에 빛을 보여주었다. 어거스틴은 진리와 더불어 순결한 삶을 추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살펴보면 여전히 육체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는 모습이 부끄러웠다. 어거스틴은 어느 날 견딜 수가 없었다.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거리에서 어린애들이 부르는 노랫말이 “펴서 읽어라” “펴서 읽어라”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그는 탁자 위에 있는 성경을 펴니 로마서 13:13~14이 눈에 띄었다. 그는 계속해서 성경을 읽는 동안에 바울의 사상에 심취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진리들을 터득하면서 이제껏 추구했던 자신의 진리탐구의 오류를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낮고 천한 인간이 되셔서 진리를 계시하셨고 구원을 이루어주셨다. 여기서 그는 겸손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6) 불완전한 이성 

성경을 통해서 어거스틴은 진정한 진리 추구의 방법론을 터득하게 되었다. 타락한 죄인들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진리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시력을 상실한 눈으로 사물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시력을 상실한 자들은 어떤 대상을 보고 있어도 사실상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무엇을 보기 전에 먼저 눈부터 치료되어야 한다. 

어거스틴은 “믿기 전에는 절대로 알 수 없으니” 그것은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럼 왜 깨닫지 못하는가? 그것은 교만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 역사 속에 오실 때 택한 방법은 겸손이었다.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교만한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보이지가 않았다. 교만이 모든 죄의 시작이므로 하나님은 정반대로 겸손한 모습으로 인간 세상에 오셨다. 

(7) 진리의 방법론은 겸손 

한번은 어거스틴의 제자들이 "성도에게 제일가는 미덕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을 때 그는 "겸손"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럼 "두 번째 미덕은 무엇입니까?" 역시 "겸손"이지요. "세 번째 미덕으로 무엇이죠?" 역시 "겸손"이라고 대답하였다. 자신의 교만한 이성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의 눈으로 자신의 무지와 부족을 느끼면서 겸손하게 우리에게 계시하는 진리를 추구하는 겸손을 말한다. 겸손한 자만이 하나님의 은총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8) 고백론 

고백론은 어거스틴의 저작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책으로서 그의 사상 형성의 과정을 알 수 있는 경건서적이다. 이 책에서 어거스틴은 영적생활을 점검하며 자신의 죄를 참회한다. 유아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번민과 갈등과 회의에서 기독교 신앙인으로 변화되기까지 그가 겪은 적은 경험들까지도 회상하며 마음 속 깊이 있는 것들을 토로한다. 특별히 진리를 찾는 그의 여정을 소개함으로서 그가 깨달은 은총의 진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해 주는 가장 위대한 경건서적 중의 하나이다. 

(9) 신의 도성 

로마제국이 야만족들에게 멸망당하자 많은 로마의 지성인들이 하나님께 향한 신앙의 갈등이 싹텄다. 어찌하여 기독교 국가가 된 로마제국이 멸망했는가의 문제이었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어거스틴은 필생의 대역작을 저술하였다. 어거스틴은 로마의 위대함이나 그 제국의 강건함을 인정한다. 역사에 등장하는 제아무리 최고의 위대한 도시나 제국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사라진다. 인간의 위대함이란 아무것도 없고 영원토록 지속하는 인간의 업적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곧 하나님의 도성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그 도성은 지금 건설되고 있는데 세상나라와 구별되어서 다르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세속의 나라와 역사를 이용하면서 구속의 역사는 개진되고 있다. 그러나 교회안의 성도들이 다 하늘나라의 시민은 아니다. 역사의 끝 날에 악의 도성, 인간의 왕국은 끝이 나고 하나님의 도성은 영원히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 

(10) 삼위일체론 

어거스틴은 정통적인 삼위일체 교리를 발전시켰다. 세 위격 사이의 완전한 동등성과 단일성을 강조하였다. 즉 한 분 하나님 안에서 세 가지 존재양식이 있으며 그 중 하나도 다른 하나가 없이는 세 위격이 존재할 수 없다. 세 인격 사이에는 상호의존 관계가 있으며 성부, 성자, 성령은 모두가 나누어지지 않는 완전한 단일성임을 나타낸다고 주장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인 양성의 하나님으로 만유보다 먼저 계셨고 인간세계에 오신 사람이시다.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중보자이시며 그를 통해서만 사죄의 은혜를 받는다. 성령은 아버지에게만 나온 것이 아니라 아들에게서도(filioque) 나온다고 가르쳤다. 기억해야 할 중요한 교훈이 있다. 어거스틴 자신도 삼위일체 교리는 성경에 있기 때문에 믿는다고 하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은 이론적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경배의 대상임을 강조하였다. 

저작권자 © 투데이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