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중세사회는 외형적으로 살펴볼 때 독특한 특징이 있다. 기독교회만이 존재하였던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신앙의 시대라고 불리어지 는 중세사회를 가리켜 많은 지성사가들은 암흑의 시대(Dark Age)라고 표현한다. 북방 게르만족의 라틴제국 침략과 정복으로 결과 된 문화의 침체기를 뜻하지만, 그 이면에는 헬라와 로마에서 꽃피웠던 찬란한 인 문주의가 중세 신앙의 사회 속에서 통제되고 억압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세계의 역사가들은 중세를 가리켜 하나님만이 존재 하셨던 시대라고 평가하고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살펴보면 중세시대가 인문주의 측면에서만 암흑 시대였던 것은 아니다. 올바른 신앙의식과 기독교 진리의 차원에서도 중세는 암흑과 무지의 시대였다. 

이 시대는 하나님도 인문주의도 없었던 시대이다. 존재했던 것은 성경에서 빗나간 인본적인 보편교회와 그와 조화를 이루었던 세속권력만이 존재했을 뿐이었다. 물론 중세교회가 처음부터 갑자기 성경에서 빗나간 것은 아니었다. 중세의 독특한 사회구조의 형성과 야만족들의 종교문화가 여과 없이 기독교회 안에 침투되면서 사도전승의 정통 기독교회에서 서서히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1. 보편사회로서의 중세사회 

중세사회가 이처럼 독특한 특징을 이루게 된 데는 이 시대의 역사적 소산물로서 봉건제 사회구조 때문이었다. 봉건제 사회구조는 두 가지 전통에서 유래되었다. 로마제정 말기 평민권의 신장으로 인하여 정치적인 면에서 사회계층의 하부구조는 없었다. 그러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사회질서가 형성되고 있었다. 대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귀족인 영주와 땅이 없는 평민과의 농노제도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경제적인 주종관계만으로 시작하였지만 점차 피라밋 구조의 신분제 사회 구조인 봉건제도가 토착화 되었다. 다른 전통은 북방 야만족에게서 오래동안 유지되었던 군사적인 주종관계이었다. 이 두 전통이 합쳐져 중세는 개인의 가치는 평가 절하되고 보편적인 사회구조에서 모든 일들이 단체로 행해지는 사회로 변형되었다. 

이런 보편사회는 자그마치 천 년여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그와 같은 정체된 사회구조가 장기간동안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중세인들의 사고의 기반이 플라톤적인 사고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플라톤 철학에서는 눈에 보이는 세계는 영원한(본질적인) 세계의 그림자로 인식하면서 물질세계를 평가절하 한다. 모든 것은 근원적인 존재에게서 유래되므로 개체 또는 개인의 이성에 대해서는 비중을 두지 않는다. 이런 가치관의 철학이 눈에 보이는 이데아(Idea) 즉 로마 교회의 가르침과 그 전통을 천 년간이나 지속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2. 중세초기 - 혼란과 무질서의 시대 

중세 초기는 혼란과 무질서의 시대이었다. 북방 야만족들은 로마제국을 붕괴시키면서 살육과 약탈을 강행하였다. 이 시대 가장 현저한 사회현상들은 가난, 파괴, 전쟁, 역병, 기근 등으로 집약될 수 있다. 민족 이동의 초창기에는 중세사회의 질서가 형성되지 않았다. 자기들끼리의 패권 장악을 위하여 계속해서 싸웠다. 전쟁은 이 시대의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그 결과 전염병이 찾아왔고 살아남은 자들은 기근으로 힘든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 당시 서유럽은 인구가 절반으로 감소되었다. 오 천 명이 넘는 촌락을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휘황찬란했던 로마제국의 문화는 초토화 되었다. 농촌에는 초기의 원시적인 농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봉건제도는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로 그 틀이 잡혀가고 있었다. 영주 간에는 농토를 넓히기 위하여 싸움이 여전히 계속되었다. 

이러한 혼란과 무질서 시대의 사람들은 모두가 다 안전을 추구하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평화를 얻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초자연적인 신앙과 연관을 맺어서 평화를 추구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수도원 운동이었다. 여전히 대부분의 민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성자유물 숭배 등의 미신적 신앙이었다. 성자의 유물에는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고 그들은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통속적인 신앙은 민중들뿐만 아니라 통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지도자들은 성자의 유물을 소유함으로 자신들의 지도적 권위가 뒷받침 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런 미신적 신앙은 로마교회가 야만족들을 수용하면서 선교하는 중에 그들의 통속적인 신앙을 여과 없이 수용하여 생긴 종교현상이라고 생각 할 수 있다. 

서방교회에서는 성상숭배를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동·서 교회 분립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어쨌든 안정을 추구하는 마음이 교회로 향하였기 때문에 외형적인 면에서 보면 기독교 선교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다. 로마교회의 확대 이면에는 정치적 동기에 의한 국가와 교회의 결탁임을 알 수가 있다. 이 시대의 특징이 개인은 전체에 의하여 흡수된 사회이었기에 개인적 신앙의 고백 없이 구조적으로 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겠느냐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그들의 세계관이 플라톤적이었으므로 장차 올 영적인 세계를 강조하였다. 그들이 이 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상징과 의식 그리고 금욕적인 엄격한 훈련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 결과 로마교회는 엄청난 권위를 지니게 되었고 세속의 통치자들의 권위는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있었다. 

이 시대의 모습을 웅변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 800년 크리스마스 날에 생겼다. 그것은 신성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가 교황 앞에 무릎을 꿇고서 왕관을 받아 쓴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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