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시 율촌면 출신
광주 만세운동에 참여해 옥고
여수제일교회 재직 중 체포돼

김순배 목사(1899. 5. 17~1970. 8. 12)는 전남 여수시 율촌면에서 태어났다.

김순배 목사는 청소년 시절 광주만세운동에 참여하고, 목회자로 기독항일운동을 주도해 2번이나 옥고를 치렀다. @출처=여수제일교회
김순배 목사는 청소년 시절 광주만세운동에 참여하고, 목회자로 기독항일운동을 주도해 2번이나 옥고를 치렀다. @출처=여수제일교회

김순배 목사는 미국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인 순천매산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숭일고등학교 재학 당시 광주YMCA 총무를 했다.

1919년 3월 10일 광주 시내에서 벌어진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해 군중 1천여 명과 함께 독립선언서와 ‘경고 아 이천만 동포’라는 격문을 배포했다. 시위를 주도해 일본 경찰과 헌병의 총칼 탄압으로 현장에서 체포됐고, 그해 8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 후, 평양숭실대학교를 진학하고 졸업한 뒤 평양신학교를 졸업해 본격적인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1939년 여수제일교회(당시, 여수읍교회) 제4대 담임목사로 재직했다. 그때 당시 여수제일교회가 속한 순천노회는 전남 동부지역(순천, 여수, 광양, 구례, 고흥, 보성 등)이 합쳐진 큰 노회였다. 김순배 목사가 부노회장이 됐을 땐 일제의 강압 속에서 신사참배를 수용하게 됐다. 또한, 일제는 특정 찬송가 금지(내 주는 강한 성이요 등), 계시록을 비롯한 묵시록 설교 금지 등으로 기독교 신앙을 억압했다.

김순배 목사는 신사참배를 회개하는 심정으로 매주 토요일 순천노회 목회자들과 비밀리에 장소를 옮겨가며 ‘설교반’을 조직해 기독항일운동을 주도했고, 일제의 종말을 말세론에 견주어 설교하는 등 교인들에게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다 일경에 체포됐다. 이 일을 통해 순천노회 목사, 장로 전원이 투옥되기도 했다. 특히, 김순배 목사는 주도자로 체포됐고, 1942년 9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김순배 목사는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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