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주년을 맞이한 광복절. 꺼져가는 가냘픈 촛불같이 바람에 흔들리던 때에 다시 하면 된다는 ‘희망’으로 다시 촛불을 세우게 한 날이다. 수많은 선혈의 대가로 찾은 광복으로, 오늘과 같은 번영과 광영을 맞이하게 되었다. 기독교의 깃발 아래 광복의 역사는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처음 열린 국회도 기도로 시작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광복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게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나라가 이런 나라인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그래서 민족 분단 70년의 아픔과 상처 속에서도 복음의 축복을 주시고, 부흥의 역사를 만들어 주셨다. 강하고, 부유한 나라로 만들어야 하겠다는 모든 국민의 염원 속에 대한민국은 광복 이후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도와주고, 베푸는 나라로 성장했고, 2021년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이 되었다. 이 역사의 길 가운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애국가의 가사처럼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축복하심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치고 잘사는 나라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남아프리카의 대부 ‘넬슨 만델라’가 생각난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 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하기 위해 싸우다 투옥되었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힌 뒤 27년이 지나서야 풀려났다. 그때 그의 나이 71세였다. 꿈에 그리던 풀밭을 다시 밟으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위대한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희망을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그는 결코 자신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넬슨 만델라’가 자신의 감방에 붙여놓았던 그림이 있다. ‘희망’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왓츠의 그림이다. 지구 위에 어느 여인이 초라하게 앉아 있다. 이 여인의 눈은 앞을 볼 수 없게 붕대로 감겨 있고 손에는 하프가 들려 있다. 그런데 이 하프를 자세히 보면 유일하게 한 줄만 끊어지지 않고 남아 있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왓츠는 매우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고, 수년 동안 실패를 거듭해 크게 실망한 상태였다고 한다. 어쩌면 왓츠는 이 그림을 그리며 희망을 잃고 싶지 않은 자신의 감정을 추스렸던 것은 아닐까? 마지막 남은 한 줄의 하프로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남은 한 줄로 연주할 방법을 찾는 이도 있을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는 왓츠의 그림 속 하프처럼, 끊어지지 않는 희망의 한 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희망은 그 어떤 지독한 토양에도 뿌리가 내려질 것을 바라고, 기대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그 희망의 목적지를 향하여 끊임없이 나가야 한다. 끈기를 갖고 어떤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전진해 나가야 한다. 목적이란? 정신적인 것이다. 그래서 목적이 흔들리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목적은 하나이지만 목표는 여러 가지이다. 그러기에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목표를 잘 가지고 나가야 한다. 도표를 만든다면, ‘목적=왜’가 되고, ‘목표=무엇이 되며, ’전략과 실행=어떻게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적의식이 분명하면 삶의 잔가지들을 정리하게 된다. 삶이 심플해지고 깔끔해진다. 당신이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되어 줄 수 없고, 세상의 모든 좋은 일들을 다 할 수 없다. 다 잘하려고 하면 나중엔 아무것도 확실히 하는 게 없게 된다. 자신의 역량을 한두 군데로 집중해야 한다. 

 바버라 브래들리 해거티가 쓴 ‘인생의 재발견’을 보면, “눈을 떠야 할 이유가 있으면 오래 살 뿐 아니라 건강도 더 좋아진다. 미국인 남성을 대상으로 한 어느 연구에서는 인생에 구체적인 목표가 있다고 말한 사람들의 뇌졸중 발병 확률이 목표가 거의 없는 사람들에 비해 22% 더 적었다. 일본인 남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목적의식이 뚜렷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뇌졸중에 걸리거나 심장발작을 일으키는 확률이 더 적게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목적의식이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점을 발견했다. 목적의식이 있을 때 사람들은 건강을 더 잘 챙겼다”라고 했다. 우리는 지금 목적의식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진 않은지 늘 체크하면서 인생의 남은 길을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인생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나에게 주어진 짐을 지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각자의 짐을 지라고 하셨다.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지어야 한다. 달팽이가 무거운 껍데기를 쓰고 목표를 향하여 가듯 나의 짐은 벗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이다. 인생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짐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저마다 힘든 짐을 감당하다가 저세상으로 간다. 인생 자체가 짐인 것이다. 가난도 짐이고, 부유도 짐이다. 질병도 짐이고, 건강도 짐이다. 책임도 짐이고, 권세도 짐이다. 헤어짐도 짐이고, 만남도 짐이다. 미움도 짐이고, 사랑도 짐이다. 살면서 부닥치는 일 중에서 짐 아닌 게 하나도 없다. 이럴 바엔 기꺼이 짐을 짊어보자. 언젠가 짐을 풀 때 짐의 무게만큼 보람과 행복을 얻게 될 것이다. 

아프리카의 어느 원주민은 강을 건널 때 큰 돌덩이를 진다고 한다. 급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란다. 무거운 짐이 자신을 살린다는 것을 깨우친 것이다. 차가 가벼우면 헛바퀴가 돈다. 그럴 때는 차에 일부러 짐을 싣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짐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손쉽게 들거나 주머니에 넣을 수 있다면 그건 짐이 아니다. 짐을 한번 져 보자. 자연스럽게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워질 것이다. 절로 고개가 수그러지고 허리가 굽어지며 시선이 아래로 향하게 될 것이다. 

오늘도 우리 모두 각자에게 주어진 짐을 마다하지 말고 목적지를 향하여 담대하게 한눈팔지 않고 걸어가다 보면, 나에게 한 줄기의 빛이 비추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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