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집안 막내로 태어나 목회자가 되기까지
하나님의 계획에서 벗어난 적 없는 그의 삶
탈북민과 함께 울고 웃는 사역…나누고 흘려보내는 기쁨 누려 
어제보다 오늘 더 '행복한 하루' 꿈꿔

탈북민 목회자들의 든든한 맏형이자, 후원이사장인 김종욱 목사. 탈북민은 이 땅의 손님이 아니라 이 땅의 주인이라 말하며 북한 선교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교회의 크기는 작지만 큰 사역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펼쳐가고 있는 이레교회 김종욱 목사를 만나 삶과 사역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탈북민 목회자의 든든한 맏형, 이레교회 김종욱 목사는 작지만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
탈북민 목회자의 든든한 맏형, 이레교회 김종욱 목사는 작지만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

ㅣ삶의 시선

교회가 놀이터이자 삶이었던 아이
갈라디아서 말씀이 인생의 터닝포인트
‘가정’이 목회와 삶의 원동력 

Q. 지금까지의 목사님 삶을 드라마의 한 장르로 표현한다면?

'스릴러'라고 표현하고 싶다. 60년을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내 계획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다. 가난한 어린 시절부터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된 것도, 목회를 하면서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긴장 속에 살아왔다. 하나님은 내가 일을 저지르면 그때마다 정확하게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더라. 늘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이 있었다. 지나고 보니 스릴 있는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 그래서 내 삶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스릴러다. 

Q. 어린 시절이 궁금하다. 어떤 삶을 살았나요?

강원도 산골짜기, 2남 5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두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머니가 홀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 도둑질 빼고 돈 버는 일이라면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모진 어려움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신 어머니다. 그래서였을까. 철이 일찍 들었던 것 같다. 아버지 없는 후레자식 소리 안 듣고 싶어서, 나까지 어머니 눈에서 눈물 흘리게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어릴 적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착한 아이로 자랐다. 

Q. 교회를 다닌 것도 어머니의 영향이었나요? 

어머니를 따라 자동 신앙인이 되었다고 할까(웃음). 내가 두 살 때 자전거에서 떨어져 다리를 크게 다쳤다. 어린 아들을 살려보겠다고 사력을 다했던 어머니에게 교회를 다니던 동네 분이 전도를 했고, 그렇게 신앙생활을 시작한 어머니를 따라 나 역시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교회 안에서 자라고, 성장했다. 교회는 나에게 놀이터였고, 집이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마음껏 부를 수 있어서 좋았다. 

Q. 그때부터 목회자의 꿈을 꾸게 되었나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있다면?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극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경험보다는 자연스레 하나님 안에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일찍이 주일학교 교사를 했는데, 1년에 한 번씩 6~700명의 교사가 모여 2박 3일 동안 수련회를 했었다. 여느 해와 같이 참석한 교사 수련회에서 설교자 목사님 말씀이 내 마음 깊이와 박혔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러니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다.” 이 말씀이 내 안으로 들어오면서 그날 저녁 숙소로 돌아와 하염없이 울었다. ‘내가 지금까지는 표면적으로만 예수님을 알고 있었구나! 그분이 나를 위해 돌아가셨고 지금 내가 사는 것이 그분을 믿는 믿음 가운데 사는 것이구나’라는 사실이 믿어지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됐다. 그렇게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또 한 가지는 장덕인 선교사님을 만난 것이다. 현재 멕시코 명성교회를 담임하고 계신데, 당시 우리 교회 전도사님으로 오셨다. 그분을 통해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분의 소개로 신학교를 다니며 목회의 꿈을 꾸게 되었다. 

이레교회 김종욱 목사
이레교회 김종욱 목사

Q. 신학생 생활은 어땠나요?

가난한 신학생이었다.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주간이 아닌 야간 신학교를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 아들인 친구가 제안을 했다. 아버지가 교회를 개척했는데 새벽 기도를 인도해 줄 전도사를 찾는다고. 숙식까지 제공해 준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서울 은평구의 작은 개척교회에서 1년 동안 지내며 새벽기도를 인도하게 되었고 3학년 때, 교육 전도사로 본격적인 목회 현장에 뛰어들게 됐다. 

Q. 목회자로써의 삶은 평탄했나요? 

어려움을 겪지 않은 목회자가 있을까. 울고 웃었던 순간들이 많았지만, 10여 년 전 일이 생각난다. 건강한 교회, 행복한 목회를 하며 교회가 부흥 성장하고 있었다. 그 시점에 한 사람에 의해 교회가 쑥대밭이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천지였던 것 같다. 돈 문제를 걸고 넘어진 것. 그동안 교인들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 헌금이나 건축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오해가 쌓이면서 많은 사람이 교회를 떠나갔다. 그러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Q. 목회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나요?

충성된 일꾼으로 교회를 섬겼던 안수집사 가정들이 교회를 떠나면서 이대론 더 이상 안되겠다 싶어 교회에 사표를 냈다. 누구보다 정직하고 투명하게 목회를 해왔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목회를 해야 하나’,‘하나님이 여기까지만 나를 쓰기 원하시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교인들이 찾아와 “사표를 철회해달라. 다시 시작해보자”며 나를 설득했다. 무책임하게 그만두면 안 될 것 같아서 교인들 앞에서 무릎 꿇고 큰절을 올렸다. “이 모든 게 다 나의 허물이고 부족이다. 용서해달라”고 말했다. 많이 억울하고 속상했지만, 하나님의 몸 된 교회의 회복을 위해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남아있는 성도들을 다독이며 예배에 집중했다.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기 원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교회에 정착했다. 그렇게 작지만, 행복을 나누며 목회하고 있다. 

Q. 목사님의 삶을 이끄는 것, 삶의 원동력은? 

내 삶의 원동력은 가족이다. 먼저는 어머니다. 어머니의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교회에 가게 됐고, 어머니의 기도 덕분에 목회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90세를 넘긴 지금도 새벽마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분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내 아내와 자녀들이다. 목회자는 가정이 원만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목회를 할 수가 없다. 목회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가족 앞에 설교하는 것인데, 지금까지 내 설교에 가장 은혜를 많이 받는 사람이 아내이다. 참 감사한 일이다. 예배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종종 이런 말을 한다. “당신 설교를 이만큼만 들어야 한다는 게 너무 아깝다. CTS에서 방송해야 하는데...” 진심으로 내 설교를 좋아해 주고 최고라 말해주는 아내 덕분에 많은 힘을 얻게 된다. 두 아들도 존경하는 사람으로 늘 ‘아버지’를 말한다. 장성한 두 아들에게 지금도 전화. 문자를 하면 마지막에 꼭 사랑한다는 말해준다. 가족이 있었기에 30년 동안 목회 여정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김종욱 목사의 삶의 원동력은 가족이다. 가족의 사랑으로 30년 동안 목회 여정을 지내 올 수 있었다.
김종욱 목사의 삶의 원동력은 가족이다. 가족의 사랑으로 30년 동안 목회 여정을 지내 올 수 있었다.

ㅣ사역의 시선

중국에서 만난 탈북민 구출 사역
탈북민교회 - 한국교회 가교 역할
탈북민들의 아프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밴드 붙여주고파

탈북민은 '북한 선교의 마중물'

Q. 지금 맡고 있는 사역을 소개한다면?

교회는 작지만, 목회는 크게 하고 있다.(웃음) 이레교회를 담임하면서 인천 연수구기독교연합회 총무를 오랫동안 맡고 있고, 남동공단 기독경영인연합회 지도 목사로 활동하고 있다. 무엇보다 탈북민 사역에 관심을 갖고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사단법인 북한기독교총연합회 후원이사장으로, 예장통합 용천노회 남북한선교위원회 총무로, 탈북민 구출 사역을 하며 북한 선교에 작은 힘을 보태고 있다.  

Q. 대외 활동을 활발히 하고 계신데, 목사님의 사역 방향은 무엇인가요?

물은 고이면 썩는다. 일이 커지면 문제가 생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주어진 일들을 감당하려고 한다. 사소하고 작은 것 하나라도 필요한 곳에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흘려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글을 써서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다. 매일 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짧은 글을 나누고 있다. 세상 이야기, 선교, 목회 현장 이야기 등 주제는 다양하다. 이 일을 통해 수많은 역사들이 일어나고 있다. 기도부대가 생기고, 선교지와 탈북민교회에 필요한 물품, 후원이 연결되고...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연결되고 이뤄진다. 나누면 나눌수록 축복이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시계 방향으로 오른쪽부터) 필리핀 비전트립, 남동공단 기독경영인연합회 소속 기업인과 함께한 군선교, 탈북민목회자 수련회, 통일선교학교 세미나
(시계 방향으로 오른쪽부터) 필리핀 비전트립, 남동공단 기독경영인연합회 소속 기업인과 함께한 군선교, 탈북민목회자 수련회, 통일선교학교 세미나

Q. 특별히 탈북민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계기가 있었나요? 

선교를 위해 70번 가까이 중국을 다녀왔다. 중국에서 많은 탈북민들을 만나게 되었고, 한국에 들어오기 원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어떻게 하면 탈북민을 한국에 들어오게 할 수 있을까?’를 자연스레 고민하며 관심을 갖게 됐다.   

Q. 탈북민 구출 사역, 어떻게 이뤄지나요? 

김태진 선교사와 함께 탈북민 구출에 필요한 돈을 마련해 제3국을 통해 중국에 있는 탈북민을 한국으로 데려오게 되었다. 이후 교단 차원으로 탈북민 구출 사역이 확대됐다. 예장통합 용천노회 안에 남·북한위원회 총무를 맡으며 1년에 1천만 원의 예산을 세워 4명의 탈북민을 한국에 데려오게 되었고, 다른 노회에서 관심을 가지면서 이북 5개 노회가 연합해 탈북민을 위한 후원금을 모으고 있다. 그렇게 탈북민 목회자와 신학생의 모임인 ‘북한기독교총연합회’를 알게 되었고 사단법인 출범을 함께하며 탈북민 목회자, 신학생과의 네트워킹을 이어가고 있다. 탈북민교회 대부분이 개척교회다. 개척교회의 어려움과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의 아픈 곳,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소통하고 있다.       

Q. 사역 가운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지금까지 80여 명의 탈북민을 구출했다. 그 가운데 두 명이 기억에 남는다. 한 분은 남자였는데 한국 들어올 때 몸무게가 35kg였다. 보통 국정원 조사를 마치면 하나원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이분은 영양실조와 결핵으로 입원해 6개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교인들이 매일 몸에 좋은 음식을 먹이며 정성스레 돌봤다. 나중에는 50kg까지 몸무게 늘어났다. 지금은 포항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종종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또 다른 한 분은 현재 우리 교회를 다니고 있는 집사님이다. 북한에 있는 9살 딸에게 “6개월만 돈 벌고 올게”라며 중국에 넘어왔다 인신매매로 팔려 갔다. 그곳에서 15년을 살다 필사적인 탈출로 5년 전 한국으로 오게 됐다. 그런데 얼마 전 국정원으로부터 딸이 한국에 왔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북한을 떠난 지 20년 만에 29살이 된 딸을 극적으로 만나게 됐다. 이제 행복한 날만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현재 암 투병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수많은 탈북민이 한국에서 정착해 살아가고 있는데 1년에 한 두 번씩 찾아가거나 연락을 하며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탈북민 목회자 가정들과 함께 떠난 제주여행
탈북민 목회자 가정들과 함께 떠난 제주여행

Q. 북한기독교총연합회 후원이사장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북한기독교총연합회는 북한 땅에 무너진 교회들을 재건하고 회복시키기 위해 모인 남·북한 목회자들의 모임이다. 연합회 소속 탈북민 목회자 대부분이 개척했지만, 자립이 어려운 상태다. 교인 50명이 넘는 교회가 손에 꼽을 정도. 그들에게 물질이 흘러갈 수 있도록 돕고 있지만, 그것보다 때로는 형님처럼, 때로는 오빠처럼 위로와 격려를 건네며 소통하고 있다. 탈북민 목회자가 영성과 실력을 갖춘 사역자로 세워질 수 있도록, 북한 선교의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한국교회와 탈북민교회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Q. 목사님이 생각하시는 북한 선교를 위한 첫걸음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북한을 바라보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보수냐, 진보냐는 중요하지 않다. 교회 안에 진보, 보수가 무슨 소용인가. 남·북한의 통일은 하나님이 하셔야 가능하며 한국교회를 통해서 이뤄지리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먼저 통일을 부르짖어야 한다. 하나의 제목으로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을 키우고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한다. 통일 한국과 북한 선교의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탈북민 신학생을 향한 교단의 관심과 한국교회의 과감한 투자와 훈련, 교육이 필요하다. 

ㅣ생각의 시선

주변에 관심을 갖고 함께 기뻐하고 아파하는 것  
글을 통해 나눔을 흘려보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건강하고 행복한 목회 꿈꿔 

Q. 요즘에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어떻게 하면 남과 북이 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그리고 내년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이다. 어떤 지도자가 세워져야 하는가를 생각한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교회가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세워질 수 있는지, 하나님이 뜻은 무엇인가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  

Q. 매일 글을 쓰며 생각을 나누고 있다. 글을 통해 궁극적으로 나누고픈 메시지가 있나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공유하고 생각을 나누고 있다. 좋은 일에 같이 기뻐하고 슬픈 일에 같이 아파하고, 도움이 필요한 일에는 도움을 나누며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는 것.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이자 이유다. 

매일 일상을 공유하는 짧은 글을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 있다.
매일 일상을 공유하는 짧은 글을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 있다.

Q. 목사님의 글에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행복을 바꿔 말하면 만족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100% 인생을 만족하며 살진 못한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면 행복해지는 것이다. 비교하지 않고 자족하면 행복할 수 있다. 하나님의 거룩함 속에서 행복한 것이 진짜 행복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Q. 생각을 정리해야 할 때, 목사님만의 노하우가 있나요?

생각이 많아지고 정리가 필요할 때 걷는다. 무작정 걷는다. 걸으면서 스트레스 풀리기도 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계획하기도 한다. 그리고 운전을 한다. 운전하며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을 비우기도 한다.  

Q. 결정과 선택의 기로에서 기준으로 삼는 것이 있다면? 

육신이 만족할 것인가, 영혼이 만족할 것인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영혼이 만족하는 것이다. 육신은 힘들어도 영혼이 편할 수 있는 결정을 한다. 우리 교인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고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지만, 덕을 세우고 유익한 일이 아니라면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Q. 현재 목사님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요? 

탈북민에게 향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 선교의 마스터키가 탈북민이기 때문에 그들의 삶과 사역에 내 시선이 머무르고 있다. 그리고 이레교회 교인들이다. 코로나로 1년 반 넘게 교회를 나오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교인들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신앙이 흔들리지 않도록 살피고 있다. 

이레교회 김종욱 목사
이레교회 김종욱 목사

ㅣ세상의 시선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공정한 세상
빛과 소금의 역할 위한 철저한 성찰 필요 
우리만의 리그가 아닌 세상과 소통하는 교회가 되길

Q. 목사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지금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너무 양극화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19로 양극화가 더욱 심해졌다. 갈등으로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최근 연합의 움직임이 있긴 하지만, 교회 안에 양극화도 상당하다. 

Q. 세상의 시선에서 교회는 어떻게 비춰질까요?

교회는 세상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 소망의 빛을 비추는 등대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세상은 교회를 희망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늘 하는 얘기 중의 하나가 "4천 4백 만이 왕따 시키고 있는 것을 교회만 모르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세상은 교회를 없어져야 할 집단으로 바라보고 있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절망적이다. 좋은 일과 선한 일은 교회가 다 하고 있는데 세상에 어필하지 못했다. 이제는 알려야 한다. 어떻게 해야 세상의 시선을 바꿔 놓을 수 있는지 철저히 고민해야 한다. 

Q. 내 마음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게 바꾸고 싶은가요?

서로 존중하고 서로 신뢰하며 공정이 이루어지는 세상이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제대로 대접을 받고, 대우를 받는 세상을 꿈꾼다. 이런 세상이 된다면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을까.  

Q. 마지막으로, 가장 좋아하는 성경 말씀이 있다면?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로마서 12장 15절 말씀이 내 목회와 사역, 삶의 모토이다. 오늘은 누구를 기쁘게 섬길까? 누구를 행복하게 할까? 작은 고민을 해 본다. 우리 모두 어제보다는 조금 더 행복한 하루가 되길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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