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 제105회기를 이끈 신정호 총회장
코로나 팬데믹으로 뛸 수는 없었지만, 묵묵히 동역자들의 손을 잡고 걸으며 사역 이어와
고난의 사건이 아닌 그 고난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에 집중하며 총회장 임기 채워

1,500명의 총대 중 96%의 지지를 받고 시작된 총회 사역은 코로나19라는 생각지 못한 위기 앞에 멈춰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코로나19라는 '사건'이 아닌 그 사건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에 집중했고 그 결과, 그 어느 회기보다 교단 소속 목회자들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격려하며 무사히 임기를 채워가고 있는 신정호 총회장.
하나님께서는 늘 '위기'라는 성장을 위한 탄력 요소를 예비하시고 그의 삶 곳곳에 놀라운 간증 거리를 만드셨다. '고난'이라는 반사체를 통해 더욱 선명한 메시지를 들려주셨던 하나님과 신정호 총회장의 동행 스토리를 들어보자.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05회기 총회장 신정호 목사(전주동신교회) @=전주동신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05회기 총회장 신정호 목사(전주동신교회) @=전주동신교회

ㅣ삶의 시선

Q. 목사님께서는 모태신앙이셨나요? 신앙을 갖게 되신 과정이 궁금합니다

나는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 교회를 처음 가게 됐는데 그땐 교회가 참 좋았다. 당시 교회는 시청각 교육이 사회보다 앞섰다. 선교사님들이 융판을 가져다가 요셉과 다니엘 등 성경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정말 재미있었다. 그때 교회 교육은 세상의 교육보다 더 앞서갔다. 또, 여름 성경학교 때는 고구마, 옥수수를 쪄주면서 먹고 살기 어려웠던 우리의 허기도 채워주는,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곳이었다. 교회가 아니면 우리에게 놀 거리는 그저 모여서 귀신 이야기나 하는 것이었는데 그런 우리에게 교회는 사회보다 더 뛰어난 시청각 교육이 펼쳐지는 곳으로 늘 교회 가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Q. 유교 사상이 강하던 당시 어르신들은 교회 가는 것을 반대하신 분들도 있으셨던데요?

부모님께서는 내가 교회 가는 것을 크게 반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어린 나이에도 부모님께 최선을 다해 순종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들만 넷 있는 집에서 둘째인 나에게 어머니께서는 늘 “정호 네가 딸이었다면 좋았겠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참 나에게 일도 많이 시키셨는데 당시 김치를 담글 때마다 맨손으로 절구에 고추와 젓갈을 갈기도 했다. 그러다보면 고추 때문에 손이 매워서 “앞으로는 죽어도 안 한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또 일을 시키시면 시키신 대로 순종하며 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도 그렇게 순종하며 최선을 다해 섬기니 부모님께서 복음을 받아들이시고 고향인 순창에서 열심히 신앙 생활하시다 천국에 가셨다.
지금은 사형제 중 장로가 둘, 목사인 나, 집사 한 명 그리고 각 가정의 모든 구성원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가정이다. 

Q. 목회자로서의 부르심은 언제, 어떻게 받으셨는지 궁금한데요?

고등학교 때 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순수한 믿음의 영성이 좋았던 것 같다. 특히 담임목사님 영성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교통시설이 좋지 않아 대부분 비포장도로를 걸어 다녔는데 어디를 가실 때면 종종 나를 함께 데리고 다니셨다. 그러다 선교사님이 오토바이를 한 대주셨는데 그걸 배우셔서 그 오토바이 뒤에 나를 태워 심방을 가시곤 했다. 그러면서 그분의 영성과 신앙을 많이 배우고 닮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목회자로서의 소명을 발견하고 신학교를 가려고 1년 동안 준비 기도를 했다. 그때 부모님께서 극구 반대를 하셨다. 당시만 해도 목사가 된다는 것은 교회에 삶을 바치는 것이라 여기셨기 때문에 아들을 하나 잃는 것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반대의 이유가 됐다. 그런 상황을 아신 목사님께서 시험을 보러갈 경비를 빌려주셨다. 그 도움으로 광주까지 가서 신학교 입학 시험을 보고 왔는데 빌려주신 금액의 일부가 남았다. 그 남은 일부를 하얀 봉투에 모두 담아 예배당 재단에 올려두고 밤새도록 기도했다. 목회자로 부르신 것이 하나님이 뜻이라면 빌린 돈이지만 제 전부인 이것을 드리니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시고 한번에 신학교를 합격시켜주시라고 기도드렸다. 그 이후 합격을 알리는 통지서가 왔다. 하지만 신학교를 가기까지 모든 것이 막히는 고난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45년이 지났는데도 그 당시 강단에서 밤새도록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하던 감격과 영성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다.

오랜 시간 총회 사역에 함께 하며 한국교회를 섬겨 온 신정호 총회장 @=전주동신교회
오랜 시간 총회 사역에 함께 하며 한국교회를 섬겨 온 신정호 총회장 @=전주동신교회

ㅣ사역의 시선

Q. 코로나19로 힘들 때 맡으신 교단 총회장 사역, 많이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총회장으로서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총회장이 되는 것도 힘들지만 1,500명의 총대 투표에서 과반수가 넘어야 부총회장이 되는데 96.3%라는 지지로 포항기쁨의교회에서 104회기 부총회장으로 당선이 됐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 속에서 하나님께서 멋진 프레임을 잡아놓고 나에 대한 인생을 계획하셨다는 것을 느꼈다.
‘예수님을 믿고 가장 축복을 받은 사람이 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지금 나의 입술에는 감사밖에 없고 그런 감사로 총회장의 사역을 감당해왔다.

신정호 총회장 취임감사예배 후 총회와 노회 임원들과 함께 @=전주동신교회
신정호 총회장 취임감사예배 후 총회와 노회 임원들과 함께 @=전주동신교회

Q. 이번 회기 총회의 주제는 ‘회복’이었는데 그렇게 정하신 특별한 이유나 의미가 있을까요?

지난 2020년은 한국전쟁 70년이 되는 해로 회복의 의미가 있는 해였다. 요나가 회복되는 것처럼 우리 일상이 회복되길 바랐다. 사실은 코로나가 오기 전부터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게 아닌 세상이 교회를 걱정했다. 교회로서의 다른 모습이 아닌 세상과 같이 물질과 외향에만 집중하는 한국교회를 걱정했는데 그래서 우리가 다시 옛날 초대교회로 회복하길 원했다. 루터의 종교 개혁 당시로 되돌아가야 하고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회복의 마음을 성경 에스라서에서 찾았다. 에스라가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귀환하면서 외쳤던 것이 바로 ‘회복’이었다. 다시 회복돼야 한다고…. 그래서 그 회복을 기도하면서 준비했는데 코로나 팬데믹 상황과 딱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기적으로 ‘회복’이라는 주제를 쓰지 않으면 안될 정도의 상황을 맞이하면서 모든 것을 딱 맞춰 준비해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총회 주제까지도 준비시키셨구나’ 하는 깨달음에 감동이 됐다. 
그런 섭리를 통해 틀림없이 회복시키실 하나님의 계획을 믿는다.

초대교회, 루터의 종교 개혁 당시로 되돌아가 진정한 회복을 이루기를 소망하는 신정호 총회장 @=전주동신교회
초대교회, 루터의 종교 개혁 당시로 되돌아가 진정한 회복을 이루기를 소망하는 신정호 총회장 @=전주동신교회

Q.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미자립교회를 위해 총회에서 특별한 사역을 진행하셨다면서요?

어머니의 마음으로 '어려울 때 그들을 보듬어 주고 격려해줄 수 있는 사역이 뭘까?"를 고민했다. 총회장이 되니 그런 수많은 고민으로 오히려 기도가 더 짧아졌다.
“하나님 도와주세요”다. 짧지만 ‘하나님만 의지하고 함께 해야겠다’는 다짐이 담긴 고백이다.
이렇게 어려울 때 소상공인을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도 있지만 미자립교회는 누가 돕겠는가? 교회가 도와야 한다. 교회 밖에 도울 데가 없다. 지치고 힘들어서 낙심해 있을 때, 조금이라도 형편이 나은 교회들이 그들을 초청해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목회자들이 희망과 용기를 얻길 바랐다.
또한, 사례비도 지급하고 마음과 상황이 되는 교회들은 선교헌금까지 더해서 지원했다. 총회 직원들을 통해서 1,000개 교회를 선택해서 1,000명의 미자립 목회자들이 1,000개 교회에 가서 말씀을 전했다. 강단을 열어 참여한 1,000개 교회가 1,000명의 미자립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것이다.
진짜 크고 귀한 사역이었다 생각된다. 틀림없이 한국교회 회복을 돕는 기회가 될 것이다.

Q. 총회장 사역으로 너무 바쁘셔서 사역하시는 전주동신교회 성도들이 서운해하시지는 않았나요?

그게 참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솔직히 나는 성도들이 담임목사가 교단 총회장으로 사역하는 것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부총회장이 됐다는 소식에 기뻐하며 울어주는 성도도 있었다. 그런 성도들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하고 더 열심히 사역해야겠다는 사명감도 생겼다. 늘 성도들이 기도해준다. 대표 기도 때는 물론 개인 기도 제목에도 늘 총회장 사역을 위해 기도해주고 계신다. 전주동신교회는 개척교회다. 오랜 전통이 있는 교회가 아닌 지금의 성도들이 개척해서 사역을 시작한 교회인데 이곳에서 총회장까지 나왔다는 게 교회의 영광이 되고 자랑이 되는 것 같다. 그것에 감사하며 든든하게 기도로 응원해주는 성도들이 있어 총회 사역도 잘 감당할 수 있는 것 같다. 감사할 따름이다.

총회장인 신정호 목사뿐 아니라 교단의 사역과 발전을 위해서도 계속해서 기도를 이어오고 있는 전주동신교회 성도들 @=전주동신교회
총회장인 신정호 목사뿐 아니라 교단의 사역과 발전을 위해서도 계속해서 기도를 이어오고 있는 전주동신교회 성도들 @=전주동신교회

Q. 전주동신교회를 개척하신 지 30년, 개척 당시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당시 김제에서 10여 년 목회를 했었다. 8가정 12명의 성도와 함께 7~8평 공간에서 40일 새벽기도를 시작했다. 12명이 시작했지만 한 명이 포기하고 11명이 40일 새벽기도를 마쳤는데 그때의 감동과 영성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데 개척하고 일주일 만에 교회에 불이 났다. 당시 대학원 공부로 서울에 있을 때였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교회에 불이 나서 지금은 꺼진 상태지만 빨리 내려와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때 교회에 불이 났다는 충격적인 한 마디로 얼굴이 사색이 되었던 듯하다. 그 모습을 지켜봤던 동기들은 아직도 그 상황에서 사색이 됐던 내 모습을 기억하고 종종 이야기하곤 한다. 그만큼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다행히 교회가 전소된 것은 아니고 강대상 쪽에만 불이 났었지만 지하 교회에서 난 불로 그을음이 가득했다. 많은 분이 그 소식을 듣고 도와주셨다. 용기를 주는 말로 “불나면 더 잘되고 좋다더라” 하시며 위로하셨지만 개척하고 바로 교회에 불이 났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이미지로 각인될까 싶은 걱정에 목회를 계속 이어가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과 부르심에 대한 믿음을 붙잡고 교회를 다시 정상화해 목회를 이어갔다. 지금도 그 당시 그을음이 묻은 의자를 버리지 않고 있는데 그것들이 초심을 잃지 않게 해주는 동기가 되고 있다.

아직도 화재 당시 그을음이 묻은 의자는 전주동신교회 성도들과 함께하고 있다. @=전주동신교회
아직도 화재 당시 그을음이 묻은 의자는 전주동신교회 성도들과 함께하고 있다. @=전주동신교회

그렇게 조금씩 부흥과 함께 교회 이전을 이어가다 120평의 땅을 구입해 조립식으로 교회를 짓게 됐다. 지하에서 1층으로 올라가는 것이, 1층으로 올라가서는 조립식이라도 우리 교회 건물을 갖는 것이 꿈이었는데 지하 교회 화재 이후 3년 만에 성전을 건축하는 은혜를 입었다.
어렵게 빚을 내 120평 땅을 구입하고 80평 조립식 교회를 지었는데 교회 근처에 아파트가 지어지고 주민들이 입주하면서 교회는 부흥에 더욱 속도를 붙였다.  

120평의 땅 위에 세워진 전주동신교회 첫 조립식 예배당 모습 @=전주동신교회
120평의 땅 위에 세워진 전주동신교회 첫 조립식 예배당 모습 @=전주동신교회

당시 60~70명의 성도가 500명의 성도를 목표로 기도했다. 그런 목표를 두니 성도들도 활력이 붙어 교회 성장에 더 큰바람이 불었다. 그렇게 10년이 되던 해에는 성도 1,000명이 되는 교회가 됐다. 그러던 때 교회 가까이에 대형 교회가 들어섰다. 그 상황은 상당히 막막하고 가슴 아픈 상처가 됐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목회에 전념했고 그러다 우리도 비슷한 교회로 성장해 교회 건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주신 신기한 기도가 있었다. “지금 네 세대에는 나뉘어 있지만 언젠가는 하나의 교회가 될 것이니 참고 기다려라”하는 마음을 주시며 기도하게 하셨다.
그래서 그 믿음으로 건축 업자들에게 “우리 교회 옆에 지어진 그 교회와 똑같은 벽돌로 지어 주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건축이 이뤄졌고 그 가운데에도 우리 교회는 계속해서 부흥을 거듭해갔다. 그런데 옆에 있던 교회가 다른 지역으로 교회를 옮기게 되면서 교회 예배당을 내놓게 됐다. 우리는 그 교회를 매입해 기도대로 하나의 교회가 됐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가운데 세워진 전주동신교회의 현재 모습 @=전주동신교회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가운데 세워진 전주동신교회의 현재 모습 @=전주동신교회
한 교회임을 더욱 확실히 보여준 두 교회를 잇는 연결 통로 @=전주동신교회
한 교회임을 더욱 확실히 보여준 두 교회를 잇는 연결 통로 @=전주동신교회

매입한 건물과 새로 지은 건물 사이에 두 곳을 연결하는 다리를 연결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성도들의 기쁨과 성취감도 상당히 커졌던 것 같다. 목회는 그때그때 마다 탄력을 받을 수 있는 요소들이 있었다. 화재 사건 역시 그러했다. 새로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요소들을 하나님께서 늘 예비해주셨다. 

신정호 총회장은 고난을 고난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늘 그 메시지에 귀 기울이며 고난을 성장의 기회로 만들어가고 있다. @=전주동신교회
신정호 총회장은 고난을 고난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늘 그 메시지에 귀 기울이며 고난을 성장의 기회로 만들어가고 있다. @=전주동신교회

ㅣ생각의 시선

Q.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두가 지쳐있는데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목사님의 생각을 말씀해주세요

고난을 고난으로 느끼면 절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에 조명해보면 거기에 어떤 기적의 요소가 나타나는데 그 힘이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성경 어디에도 고난이 끝이고 죽음이라 말씀하시지 않는다. 고난은 축복이라고 말씀하신다. 사도 바울도 다윗도 그러했다. 전쟁 중 골리앗의 외형적인 모습에 떨고 있는 상황에서도 골리앗을 위협이 아닌 큰 표적으로 보니 다윗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도 그러하기를 바란다. 욥도 그러했다.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게 됐음을 고백하듯고난의 사건과 환경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상황을 해석하는 능력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긍정적, 적극적으로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에 집중하면 좋을 것 같다. 총회 일도 그러했다. 코로나로 인해 큰 움직임을 가지고 일 할 수는 없어도 어머니의 마음으로 일하다 보니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임원회 전날 함께 모여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가 섬기곤 했다. 청소년 센터를 방문했고 영등포의 쪽방촌, 청주의 개척교회를 찾아가 위로하고 보듬으며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계속 사역을 만들어가고 있다.
코로나19때문에 모든 일상이 막힌 어려운 시점에 있는데 이런 어려움 가운데 모든 일이나 사건이나 행동은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어렵다 어렵다고만 하지 말고 이런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으리라 믿어보자.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사건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려울 수록 간증 거리가 많아지는 것 아니겠는가? ‘언젠가는 지나가리라’ 하는 마음으로 어려운 이때 후대에 전할 귀한 간증 거리를 많이 쌓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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