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선교로 주님과 동행해
사단법인 '선한 의료인들'으로 북한선교 섬겨

주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배려하는 삶 찾아

사단법인 선한 의료인들을 책임지고 있는 조동윤 장로. 나의 크고 작은 짐을 의료선교를 통해 주님께 맡기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와 진솔한 대화를 나눠보자.

위대항외과 대표이자 사단법인 선한 의료인들 사무총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조동윤 원장
위대항외과 대표이자 사단법인 선한 의료인들 사무총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조동윤 원장

ㅣ삶의 시선

기독 의료인으로서 섬김 다해
하나님의 주신 사랑으로 항상 기도해

Q.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 계기는?

의과대학 2학년 시절 친한 친구로부터 교회를 다니자는 권유로 나가기 시작했지만 교회가 좋아서 나가기보다는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나갔다. 세례를 받고, ‘예수제자회’라는 성경 공부 모임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배웠지만 아직 하나님 사랑을 체험해 보지 못했기에 나의 신앙생활은 어린아이와 같았다. 그런데 ‘농어촌 전도회’에 가입하여 즐겁게 봉사하는 신앙의 선배들을 보면서 하나님 사랑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본과 3학년 때에는 외과 의사이며 광주기독병원 7대 원장으로 역임하신 디트릭 선교사님 기독병원 사택에서 영어 성경 공부를 하게 되었다. 성경 공부뿐만 아니라 김밥을 싸 들고 무등산으로 야유회도 가는 등 친교도 나누었다. 사모님 베스 선교사님께서 직접 만든 과자가 지금도 생각이 나는데 평생 잊히지 않는 맛이기 때문에 추억으로 가지고 있다. 디트릭 선교사님은 온유한 성격이셨고 유머도 많았다. 나의 약혼식에 참석하여 기도도 해주시고 결혼식 때는 신혼여행 잘 다녀오라고 광주 송정 비행장까지 배웅해 줄 정도로 나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셨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이제 생각해 보니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았을 때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셨던 것이다.

1979년 광주 무등산에서 디트릭 선교사님(왼쪽에서 3번째)과 함께 찍은 사진  @출처=(사)선한 의료인들
1979년 광주 무등산에서 디트릭 선교사님(왼쪽에서 3번째)과 함께 찍은 사진 @출처=(사)선한 의료인들

Q. 인격적으로 만난 후 내가 변화된 모습이 있다면?

기독교의 사랑은 '긍휼'이라고 배웠다. 긍휼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상대방의 처지에서 상대방을 도와주고 사랑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동정심으로 동전 한 닢 적선하는 사랑의 개념과는 다른 사랑이자 상대방의 어려움이 자신의 문제가 되는 긍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행하신 사랑을 생각하며 나의 중심적이었던 태도가 상대방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배려하는 태도로 바뀌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변화되지 않은 나의 생각과 행동들이 간혹 나를 괴롭히기도 하여 항상 그럴때 마다 기도하며 디트릭 선교사님이 내게 주신 사랑을 항상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Q. 삶속에서 가장 행복했을 때와 가장 힘들었을 때?

1970년대 의과대학 학생 시절 선배들을 따라 의료봉사를 따라다녔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의료 취약지역이 많았는데, 특별히 무의촌 의료봉사는 크게 환영을 받았다. 진료가 끝날 때는 동네 주민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돼지를 잡아 다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 주민들의 순수한 마음속에 무언가 봉사를 했다는 뿌듯함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고 행복은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과 의사가 되어서는 태국, 필리핀 등 해외 의료 선교를 다니면서 나눔의 즐거움을 많이 경험했다. 특별히 2005년 파키스탄 카슈미르 지진이 났을 때 교회 의사 후배들, 간호사, 식사 담당 권사님들과 함께 긴급구호팀으로 참가했던 때가 지금 생각해 보니 가장 즐거웠고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생각된다. 한 번도 외지인의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무슬림 지역에 크리스천인 나와 광주중앙교회 식구들이 그곳에 들어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역을 하며 아름다운 풍경과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때를 굳이 말한다면 교회 분란이 있었던 때이다. 다행히도 마무리가 잘되어 교회가 잘 서가고 있는데 항상 내가 힘들어 할 때마다 아내가 "당신은 하나님 아들인데 누가 당신을 건드리겠소"라고 했던 조언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든든한 후원자이신 하나님께 의지하며 어려움을 극복했던 것 같다.

ㅣ사역의 시선

선한 의료인들 통해 사역의 목표 찾아
북한선교의 섬김으로 하나님 사랑 찾아

Q. 지금 맡고 있는 사역을 소개한다면?

위대항외과 대표이자 사단법인 선한 의료인들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선한 의료인들은 2008년도에 설립된 통일부 산하 사단법인으로 대북 의료지원을 하는 단체이다. 선한 의료인들이 설립된 동기는 북한 온정인민병원에 의료봉사를 갔던 것이다. 온정인민병원은 금강산 관광단지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있는데, 통일부 산하 단체이기에 우리들은 인민군 호위를 받으며 들어갈 수 있었다. 필리핀과 태국 등의 다른 해외 의료 봉사를 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북한 주민들뿐 아니라 북한 의사들을 포함한 의료진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 과연 우리 말이 통하는 내 민족이구나!'라고 느낄수 있었고 같은 언어와 동포라는 공통적인 부분으로 한국에 있는 것처럼 편하게 진료할 수 있었다. 그래서 조직한 단체가 선한 의료인들이고 다른 해외 의료선교보다 북한선교를 돕고 싶기에 모여진 단체이다.

2007년 온정인민병원 북측 의료진과 기념사진 @출처=(사)선한 의료인들
2007년 온정인민병원 북측 의료진과 기념사진 @출처=(사)선한 의료인들

Q. 사단법인 선한 의료인들에서 주로 어떤 사역을 하시는지?

선한 의료인들이 온정인민병원에서 3차례에 걸쳐 의료봉사를 하면서 '북한선교로 섬길 수 있겠구나'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2008년도 금강산 관광객 저격 사건 이후 금강산이 문을 닫게 되어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갑자기 닥쳐온 상황 속에서 주님께 어떤 식으로도 북한 지역에 있는 우리 동포에 봉사를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기다려온 순간,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 의약품 지원과 남측 근로자에 대한 의료봉사로 눈을 돌리게 됐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2016년에 개성공단도 문을 닫게 되어 현재는 북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틈틈이 기도하는 중이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한국에 있는 새터민 사역으로 봉사를 하고 있다. 새터민 사역은 주로 새터민들이 필요로 할 때 회원들 병원에 안내하여 진료를 받도록 안내해 주고, 찬양 음악회, 크리스마스 행사 등을 통하여 후원하고 있다.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북한 사역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거라 믿고 기다리고 있다.

2019년 제5회 새터민음악회 행사 사진 @출처=(사)선한 의료인들
2019년 제5회 새터민음악회 행사 사진 @출처=(사)선한 의료인들

Q. 사역하면서 지쳤을 때 나만의 충전 방법이 있다면?

2015년 12월 북한 근로자들에게 구충제 5만 6천정을 전달하고 돌아오기 위하여 북측 출입사무소에 들렸을 때 젊은 북측 직원이 퉁명스럽게 나에게 직접 '찍으라우'라고 했다. 출입증을 받아서 본인이 스캐너에 찍어서 처리해야 할 일을 나에게 시킨 것이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온 사람인 줄 뻔히 알면서도 불쾌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당시 남북 관계가 경색되어서 그랬을것이라 이해도 해보았지만 이런 일을 당할 때는 너무 힘이 든다. 이럴 때 나만의 충전 방법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한다. 또한 전라도 지방에 파송되었던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님들의 미담을 생각해 보곤 한다. 한센병에 걸린 이들은 인간 취급도 받지 못했던 조선시대에 그들을 사랑으로 감싸 안은 포사이드 선교사의 이야기가 특히 나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1904년 4월 오웬 선교사가 지방 전도를 갔다가 폐염에 걸려 사경을 헤메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광주에 오던 중 나주 지역 길옆에서 가마니를 뒤집어 쓴 채 신음하고 있는 한센병 여인을 발견하고 자신이 입던 털외투를 벗어 입히고 지신의 말에 태워 광주로 데려와 피고름이 터져 흐르는 손과 발을 만져가며 치료해주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불가능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개성공단 남북협력진료소에서 북측 의료진과 친교 모임 @출처=(사)선한 의료인들
개성공단 남북협력진료소에서 북측 의료진과 친교 모임 @출처=(사)선한 의료인들

ㅣ생각의 시선

새터민 보며 우리의 통일 생각해
하나님의 말씀 속에 해결책 찾아
주님의 내 편 속에 함께하고파

Q. 요즘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새터민 사역을 하다 보면 새터민들의 간증을 많이 듣게 된다. 북한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많은 어려움도 문제지만 한국에 무사히 와서 정착하였다 하더라도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 때문에 심한 악몽에 시달린다고 한다. 분단의 아픔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현실이다. 우리 민족의 저력과 우수성에 대해서는 자긍심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분단된 현실 속에서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빠른 시일 내에 통일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적어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시절이 오기를 소망해본다.

Q. 어떠한 일을 결정하거나 기준이 있다면?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래서인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고 항상 기도하며 더 나아가 주님께 칭찬받는 삶을 살아 내가 죽음을 맡더라도 하나님 앞에 전혀 뒷걸음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안에는 성경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항상 무슨 일이 생겼을 때나 내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는 성경을 읽고 그 안에 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Q.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씀구절이 있다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장 28절 말씀이다. 인간은 누구나 개인적으로는 생로병사의 짐을 질 수밖에 없고 가정에서의 짐과 교회에서의 짐 그리고 나라와 민족의 짐을 지고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리 힘을 써도 이 짐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래서 나의 크고 작은 짐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낭떠러지 길을 아슬아슬 운전하며 가는 버스 속에서 모두들 두려워하고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놀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고 한다. 아이에게 무섭지 않냐고 묻자 "저기 운전하신 분이 내 아버지예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ㅣ세상의 시선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로 헌신하고파
주님께 의지하며 문제 해결해야

Q. 세상에 비친 나의 모습은?

하나님의 자녀는 어느 누구보다도 풍성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노력 없이 풍성한 삶을 살 수는 없다. 나는 외과 의사이며 전문 분야는 항문병 수술이다. 28년 전 세계에서 가장 항문병 수술을 잘하는 외과의사가 되겠다고 영국의 세인트막병원, 미국 플로리다의 클리브랜드크리닉, 일본의 다까노병원, 사회보험중앙병원에 연수를 다녀오며 항문병 수술에 매진하며 노력했다. 그런 노력 끝에 미국 대장항문병 학회에 패널리스트로 2차례 초청받았으며, SCI 논문 2편이 채택되었다. 감사하게도 개인 의사로서 ’마퀴스후스후‘ 세계인명사전에 등록되는 영예도 얻었다. 이것은 나의 자랑이 아닌 주님께서 복을 주셨기에 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인명사전에 등록된 조동윤 원장
세계인명사전에 등록된 조동윤 원장

Q. 변화했으면 하는 세상의 방향은?

우리 인간은 고난을 피할 수는 없다. 단지 그 순간 어느 처지에 있냐가 다를 뿐이라고 생각한다. 고난의 토굴 밖에서 살면서 간혹 고난의 토굴을 들락거리는 삶을 사는 사람들, 어쩌면 가장 건강한 사람들이다. 고난의 토굴 속에서 살지만 간혹 고난의 토굴 바깥세상의 맛을 보며 한 가닥 희망은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토굴 속에서 살아가며 삶에 대한 희망을 아예 찾지 못하는 암담한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토굴 안의 사람들은 토굴 밖의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언제든지 고난의 토굴 속에서 헤맬 수 있어 우리는 서로의 관계 속에서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과 나누며 서로 배려하는 세상을 소망해 본다. 

Q. 독자들에게 한 마디!

병든 자가 병든 자를 돕거나 치료해 줄 수는 없다.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건강해야만 남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건강한 영혼과 육체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주님께 의지함으로 치유를 받아야 할 것이다. 말로만 하는 전도보다는 자신의 풍성한 삶 속에서 타인에게 모범이 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는 상대방의 어려움을 자신의 문제로 여기는 긍휼의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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