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연동서부교회 이상성 목사(lee-sangsung@hanmail.net)의 작품
제주연동서부교회 이상성 목사(lee-sangsung@hanmail.net)의 작품

유명한 아동문학가인 정채봉 씨가 쓴 에세이집에 ‘만남’이라고 하는 글이 있다. 이 글에서 그는 여러 가지 종류의 만남을 얘기하고 있다.

작가가 본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 같은 만남’이라고 한다. 만나면 만날수록 비린내가 나는 만남이다. 작가는 만나면 만날수록 역한 냄새가 나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만남을 ‘생선 같은 만남’이라고 표현한다.

아주 조심해야 할 만남이 있다고 하는데 ‘꽃송이 같은 만남’이라고 했다. 꽃송이가 활짝 피어 있을 때는 좋아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기 때문에 그 만남을 즐기고 좋아하지만, 꽃이 시들어 좋아할 이유가 없으면 그 만남은 곧 시들어 버리게 된다.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이라고 한다. 아주 근사하고 멋있어 보였던 만남인데, 어느 순간에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버린 것같이 아무것도 남지 않는 만남이다.

그럼, 가장 좋은 만남은 어떤 만남일까? 작가는 ‘손수건 같은 만남’이라고 한다. 땀나면 땀을 닦아주고, 눈물이 나면 눈물을 닦아주는 만남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이런 만남이 최고의 만남이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에 있어 굉장히 영향을 많이 받는다. 좋은 부모를 만나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도움이 된다. 좋은 스승을 만나고, 좋은 책을 만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특별히 좋은 교회를 만나는 것에 따라 우리 삶의 행복과 불행이 좌우된다.

그러나 이런 만남보다 더욱 중요한 만남이 있다. 바로 예수님과의 만남이다. 사건은 요한복음 4장에 기록되어 있다.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동네에서 이 만남이 일어났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의 유대지역과 갈릴리 지역 사이에 위치한 곳이다.

이 땅은 주전 722년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후 이곳에 이방인들을 이주케 하여 살게 한 뒤부터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사마리아 사람과 이방인들 간에 결혼을 통해 혼혈족이 생기게 되었고, 이후 유대인들은 이들과의 만남 자체를 불결하게 생각했다. 경건한 유대인이라면 사마리아 사람과 엮이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그런데 이 땅으로 주님이 가셨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살 것을 각오하고서 말이다. 큰 손실을 예상하고서 그 땅에 가야만 했다면 누구를 만나야 했을까? 보통의 사람이라면 수가성의 아주 유력한 사람들, 예를 들어 성주라든지, 학자라든지, 장군이라든지, 부자라든지 아주 유력한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로부터 협조를 구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수가성에 들어가셔서 이런 사람을 만난 것이 아니고 그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어 있는 사람을 만났다. 이 만남을 위해 제자들을 물리치기까지 하셨다(요 4:8).

그럼 주님이 만난 수가 성의 여인은 어떤 사람인가? 그녀의 삶 자체가 너무 기구하다. 그녀에게는 이미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다. 그리고 현재는 여섯 번째 남자하고 살고 있었다고 한다.

혹시 이 얘기를 읽으면서 “이 여인이 아주 부도덕한 여자구나.”라고 생각하면 틀렸다. 이 시대는 철저히 남성 위주의 사회였는데, 그래서 여성들이 홀로 사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여성이 사는 길은 결혼을 통해 남성에게 몸을 얹어야만 했다.

혹시 이런 생각을 가진 분이 있는가? “야, 그 여자 복도 많지! 남자를 여섯 명이나 두다니 말이야.” 이 여성이 이렇게 대여섯 번 결혼하게 된 이유는 그 당시 남자들이 굉장히 빨리 죽었기 때문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당시는 전염병과 잦은 전쟁으로 남자들 평균 수명이 40살 정도밖에 안 되었다고 한다.

여성들은 조금 더 오래 살았다. 여기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다시 결혼하는 것이었다. 다시 결혼했는데 그 남자가 또 죽었거나 그 남자한테 이런 저런 이유로 버림을 받게 되면 살기 위해 결혼을 선택해야만 했다. 주님이 만난 수가성의 여인의 삶이 얼마나 기구했는지를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여성과 예수님의 만남과 대화는 ‘물’로 시작됐다. 예수님께서 넌지시 말했다. “당신에게 내가 물을 달라고는 하지만 당신이 하나님의 선물이 뭔지를 알고, 당신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는 내가 누군지를 안다면 당신이 나에게 물을 달라고 그랬을 것이다. 내가 당신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줄 수 있는 사람이다.”

목이 갈하니까, 인생이 힘이 드니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게 있다면 날 좀 주십시오.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다시는 우물에 물을 길러 오지도 않아도 된다니, 한 번 마시면 평생 우물에 안 나와도 되는 그런 물이 어디 있습니까?”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뭔가? 마음이 큰 혼돈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 간절하게 생수를 갈망하고 있는 이 여자는 주님이 주시겠다는 것이 그게 생수인지 뭔지 몰랐다. 그저 이 여성은 자기 인생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 남자들에게 상처를 받고 쫓겨나는 치욕을 당해도 살려고 몸부림치는 생존 본능이 있었다. 그렇지만 수가성 여인의 이런 노력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오늘 우리도 형태는 다르지만 수가 성 여인과 같이 우리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해결하려고 수많은 시도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시도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아무리 괜찮은 배우자를 만나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많은 연봉을 받는다고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더욱 더 우리의 인생을 죄어 오는 수많은 문제가 발생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예수님과의 만남이 필요하다. 우리의 아픔과 상처를 아시고, 눈물을 아시고, 결국 마시고 마셔도 계속해서 목마르는 물이 아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되신 주님과의 만남이 필요하다.

이 최고의 만남을 위해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신다. 이 만남의 초청에 응답하면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가 풀리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주님의 제자된 우리가 이 땅의 수많은 문제로 가득찬 사람들을 주님께로 연결하는 만남의 중계소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 만남이 이 땅의 수많은 복잡한 문제를 풀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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