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셉과 유다
창37:1~38:30
창세기 37장부터 요셉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르우벤과 시므온, 레위, 디나 등 야곱의 아들 딸 이야기가 이전에도 잠깐씩 나오긴 했지만 창세기가 긴 분량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풀어낸 사람은 요셉이 처음이죠. 2절 서두에서 야곱 족보를 소개한다고 하고서 요셉 이야기로 바로 넘어가는 걸 보면 창세기는 야곱의 뒤를 잇는 족장 자격을 요셉에게 부여하는 듯합니다.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창37:2, 개역개정)
…열일곱 살 된 소년 요셉이 아버지의 첩들인 빌하와 실바가 낳은 형들과 함께 양을 치는데, 요셉은 형들의 허물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곤 하였다.(창37:2, 새번역)
2절에서 야곱 아들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짝 엿볼 수 있습니다. 노동은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단, 납달리, 갓, 아셀)이 많이 했던 모양입니다. 빌하와 실바의 과거 시녀 신분이 자녀 삶에도 영향을 미쳤겠죠. 자녀들이 감당해야 하는 노동 의무에서 레아와 라헬의 아들들이 비교적 자유로웠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레아와 라헬의 아들은 무슨 일을 했을까요? 우선 레아의 아들들(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에 관해선 어떤 언급도 없습니다. 노동을 안 하고 살지는 않았겠죠.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지만 노동을 하긴 했어도 야곱의 통제를 크게 받지 않았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자기 소유 양 떼를 돌보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았나 싶네요.
라헬의 두 아들 중 베냐민은 야곱이 늘 곁에 두었을 겁니다. 늦둥이기도 했고 사랑했던 라헬의 목숨과 맞바꾼 아들이니 베냐민에게 사고라도 생긴다면 야곱이 감당하기 어렵겠죠. 결국, 야곱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는 아들은 요셉이 유일했습니다. 2절에서 보이는 요셉의 행동은 그가 형들과 일을 나가긴 했지만 노동을 하기보다는 야곱의 대리인 역할에 더 충실했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당연히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이 불편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바로 레아와 라헬의 아들이 빌하와 실바의 아들을 상대로 가지는 우월감이었죠. 어쨌거나 빌하와 실바의 아들에게는 요셉이 싫은 이유가 매우 많았습니다. 물론 레아 아들도 요셉을 좋아할 수 없었고요.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창37:3, 개역개정)
이스라엘은 늘그막에 요셉을 얻었으므로, 다른 아들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여서, 그에게 화려한 옷을 지어서 입혔다.(창37:3, 새번역)
고자질이 아니더라도 요셉이 미움받을 이유는 많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야곱의 특별한 사랑이었죠. 레아의 첫 네 아들이 2세 가운데 가장 연장자였음에도, 빌하와 실바의 아들이 많은 노동을 감당했음에도 야곱은 요셉만을 사랑해 눈에 띄게 좋은 대우를 했죠. 이렇게 대놓고 편애 받는 동생을 좋아할 형이 있을까요? 야곱은 다른 아들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베냐민 말고는 아들 이름 하나 지어본 적 없는 걸 보면 아이 낳고 키우는 일은 아내들이 거의 하고 야곱은 재산만 관리하는 것이 지난 시간 동안 가족이 살아온 방식이었죠. 그랬던 야곱이 라헬의 아들에게는 엄청난 애정을 보여 베냐민은 항상 곁에 두고 요셉은 대리인처럼 다른 아들이 일하는 곳에 보내곤 했으니 형들 불만이 커질 수밖에요. 채색옷은 야곱의 편애와 형들의 미움을 하나로 응축해 놓은 상징입니다. 형들이 그 정도로 싫어하면 형들을 만날 때만큼은 안 입을 수도 있었을 텐데, 요셉은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며 입었던 모양입니다. 눈치가 없는 걸까요? 채색옷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창37:6~7, 개역개정)
요셉이 형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꾼 꿈 이야기를 한 번 들어 보셔요. 우리가 밭에서 곡식단을 묶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내가 묶은 단이 우뚝 일어서고, 형들의 단이 나의 단을 둘러서서 절을 하였어요.”(창37:6~7, 새번역)
요셉은 그저 ‘꿈에서 본 장면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을 뿐’이라고 항변했겠지만 누가 들어도 형들이 요셉을 섬기게 되리라는 내용의 꿈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행동은 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랑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반복되기까지 하니(창37:9) 미움이 더 깊어질 수밖에요. 반면 야곱은 요셉이 들려준 꿈 이야기를 쉽게 지나칠 수 없었을 겁니다. 꿈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적이 있기 때문이죠. 하나님이 꿈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고 미래 일어날 일까지 알려주심을 아는 야곱으로서는 요셉의 꿈을 범상치 않게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꿈에 나타난 하나님 계시의 성취를 실제로 경험한 산 증인이었으니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었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