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부모님 아래 소망 없던 삶이 군대에서 하나님 만나 다음 세대를 위한 선교사로
스타 강사의 자리 내려놓고 IM선교회 사역을 통해 교회와 아이들 살아나
아이들은 '보석'과 같은 존재, 복음적 가치관으로 성장해 복음 전하는 삶 살길

잘나가선 스타 영어강사의 자리를 내려놓고, 다음 세대 아이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사역하고 있는 마이클 조 선교사. '모태 장아찌'같은 삶이었지만 하나님을 경험한 후 지금은 IM선교회를 통해 전국의 교회에 다음 세대 부흥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소망 없던 삶에서 어떤 일이 그를 다음 세대 선교사로 바뀌게 만들었을까?

IM선교회 마이클 조 선교사
IM선교회 마이클 조 선교사

| 삶의 시선

태어날 때부터 교회 다녔지만 구원의 확신 없던 '모태 장아찌' 마이클조 선교사
군 병원 수술대 위에서 예수님 체험, 삶과 가정에 회복의 역사 경험
스타 영어강사에서 다음 세대 선교사로, IM선교회 통해 교회와 아이들 살아나

Q. 하나님은 어떻게 만났나?

나는 사실 모태 장아찌였다. 모태 장아찌는 태어날 때부터 교회를 떠날 수 없는 운명을 갖고 태어났지만 구원의 기쁨도 십자가에 대한 믿음도 없는 신앙을 말하는 것이다.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앉은뱅이 같은 삶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22년 동안 방황을 많이 했다. 성경이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고,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일들 모두 나에게는 말이 안 됐다.

충남 서산의 시골에서 살았던 우리 집은 가난했다. 어머니는 다리가 불구셨고, 아버지는 정신박약이셨다. 무학으로 공부도 못하신 부모님 아래서 자라다 보니 공부도 잘하지 못했다. 아홉 식구 중에 중학교도 제대로 졸업한 사람이 없었다. 소망이 보이지 않는 삶이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하나님 믿으시면서 기도를 열심히 하셨다. 목사님을 잘 섬기고 집안에서도 늘 찬양하고 기도하셨다. 시골에서 기댈 배경 없는 내 상황이 성경을 봐도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맞지 않았다.

군에 입대했는데 부대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나는 백도 없고, 능력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지방 사립대 졸업한 들 앞으로 무슨 좋은 일이 있겠어. 나는 꿈도 없고 깡도 없고 끼도 꾀도 없으니 그냥 죽어야 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도 오고 탈영도 했는데 술을 엄청 많이 마시고 필름이 끊겼는데 다시 부대에 돌아와있었다. 나를 볼 때 실망스럽고 절망스러워 어떻게 하면 죽을까만 생각했다. 5층 되는 높이의 큰 나무에서 뛰어내렸는 데 나뭇가지에 걸려서 병원에 실려갔는데 죽지 않고 다시 부대로 돌아왔다.

휴가를 얻어 집에 갔는데 어머니가 앉아서 기도하고 있는 자리만 잔디가 나지 않은 걸 보여주시면서 “내가 너를 위해서 하루에 3시간씩 기도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내 마음속에 하나님을 만나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부대로 복귀 후에 벙커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했다. “당신 살아있으면 나를 만나주시고 나를 안 만나주실 거면 나를 치든지 아니면 나에게 벼락을 맞게 해서 죽여라!” 딱 2주 후 부비동염으로 수술을 3번 하게 됐다. 세 번째 수술을 하는데 환상을 보았다. 세 명이 한 명을 때리고 있었는데, 맞고 있는 사람을 보니 가시관을 쓰고 피가 나고 있는 예수님이었다. 때리는 사람이 로마 병정인 줄 알았는데 첫 번째 사람을 보니 나였다 두 번째, 세 번째 사람도 나였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그가 찔림이 너의 허물로 인함이다.” 이사야 말씀인데 나는 그때까지 그 구절을 알지도 못했다. 나는 모태 장아찌였고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가 찔림은 너희 허물로 인함이고 그가 상함은 너의 죄로 인함이다. 징계를 받음으로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도다.” 20년이 넘게 교회를 다녔는데 이제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죽어주셨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이성과 합리와 논리 위에 나의 모든 지식과 경험이 깨지고,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다. 내가 믿으려고 하는 능동태가 아니라 성령이 확 들어오면서 수동태로 믿어진 것이다. 예수님이 믿어지고 믿음이 생긴 것이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인으로 태어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이해가 되고, 눈물과 함께 내 입에서 “주여!”가 터져 나오면서 구원의 의미, 하나님의 공의, 죄와 심판을 깨닫게 됐다. 내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상 받아야 되겠다는 결심까지, 신기하게도 단번에 깨닫게 됐다. 단 0.1초 만에. 눈물을 흘리면서 수술이 다 끝나고 내 발로 교회를 찾아갔다. 링거를 꼽은 채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오던지. 다시 환상이 보이는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온몸에 채찍을 맞으시는데 나를 너무 온화하게 바라보시고 계셨다. “예수님, 죽지 마시고 내려오세요!”라고 내가 계속 외치니까 “내가 죽어야 네가 산다.”라고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주님께 죄송해서 눈물이 계속 흘렀다.  주님을 부인했던 것도 죄송하고, 내가 인생을 왜 이렇게 살았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수님의 피가 바닥에 떨어져서 내 앞에 흘러오는데 저 피가 나에게 닿으면 죽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몸부림을 쳤다. 그런데 하늘에서 커다란 손이 내려와서 내 가슴에 붙어있는 시커먼 것을 잡아 떼기 시작했다. 내 안에 있는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 자살하고 싶은 마음을 다 떼서 가져갔다. 자유함과 기쁨이 쓰나미같이 몰려왔다. 눈물이 터져 나오면서 땅바닥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 그날 나는 주님을 만났고 내 인생은 완전히 변했다.

살고 싶지 않았던 내가 살고 싶어지고, 낙망과 절망이 가득했던 내가 소망과 희망을 갖게 되니 이제는 한 번뿐인 인생을 주님을 위해 살고 싶어졌다. 내 인생을 드려서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달려가기로 결심했다.

초등학교 3학년 당시 마이클 조 선교사
초등학교 3학년 당시 마이클 조 선교사

Q. 하나님을 만난 후, 어떤 삶의 변화가 있었나?

세 가지가 회복이 있었다. 첫째는 나 자신이 회복됐고, 두 번째는 우리 가정이 회복됐고, 세 번째는 나의 삶의 터전과 사역에 회복이 일어났다. 

내 안의 회복이 일어나니까 뭐라도 하고 싶어졌다. 나 자신이 좋아졌고 이전의 삶처럼 살고싶지 않았다. 입에서 찬양이 흘러나와서 기타를 치면서 군 병원 안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한두 명씩 교회로 모이기 시작하더니 30명 예배드리던 교회가 100명, 200명씩 늘어났다.

이전에 나는 “하나님 나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나는 외롭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정신박약이시고 내 이름도 불러주지 못했습니다. 학교를 입학할 때나 졸업할 때도 오시지 못하고 내 마음을 터놓을 곳이 없어서 너무 힘들었습니다.”라고 기도했었는데, 하나님께서 “재영아! 아들아! 내가 너를 입양했다. 너의 육신의 아버지는 무능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너를 돌보고 너를 인도하고 너와 함께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두 번째는 가족이 회복이 있었는데, 우리 어머니가 원치 않게 장애인으로 태어나서 손가락질 받으시면서 사셨는데 예수님을 만난 후 기도로 자녀들을 키우셨다. 고생 안 해본 사람이나 환경이 좋은 사람은 눈물을 잘 모를텐데, 눈물을 흘려가면서 나를 키우셨던 어머니의 그 눈물을 보고 자랐던 나는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회복이 일어났다.

세 번째는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이전에는 한 번도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지만, 나 자신을 위해 공부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하겠다고 생각하니 공부가 즐거워지고 재미있게 변했다. 군대 가기 전에 학교에도 적응 못하고 성적도 바닥이었던 내가 모범생이 됐다.

예수님을 만난 후 갈 데가 없어서 교회에서 잤었는데,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께서 “이제 너는 열방을 위해 가라. 위대한 꿈과 위대한 비전을 놓고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다. 당장 먹고살기도 막막한 내가 잠시 후 열방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하나님께 나도 써달라고 기도했더니 공부하고 싶어지고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했던 영어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매일 열몇 시간씩 공부하느라 코피가 터졌는데도 재미있었다. 몇 달 후 꿈에서 미국 사람, 영국 사람, 인도 사람이 나타나서 회화를 하기 시작했다. 영어가 터지고 성적이 고득점을 맞았다.

전도도 엄청 열심히 했다. 전공이 전도하는 것이 됐다. 한 학기에 스무 명 가량 전도해서 교회로 데리고 나갔다. 원래 전공인 관광경영이 부전공이 된 것 같았다.

아들을 위해 늘 기도하시던 어머니와 함께 찍은 마이클 조 선교사의 어릴적 모습
아들을 위해 늘 기도하시던 어머니와 함께 찍은 마이클 조 선교사의 어릴적 모습

| 사역의 시선

스타 강사의 자리를 내려놓고 다음 세대를 위한 선교사로 헌신
IM선교회, 교육 선교를 중심으로 한국과 다음 세대, 세계선교
아이들의 변화로 교회가 부흥하는 일들이 활발히 일어나

Q. 어떻게 선교사의 길을 가게 됐나?

26살에 중국 선교사로 가려고 준비했는데, 먼저 들어간 선배가 중국 정부에 잡혀서 추방됐다. 그래서 나도 들어갈 수 있는 길이 막혔다. 신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갈 수가 없었다. 이듬해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시사영어학원에 강사로 들어가게 됐다. 학원이 선교지라고 생각하고 학생들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새벽에 출근해서 하루 2시간씩 학생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가면서 구원받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마이클 조 선생님은 토익 점수를 한 달에 100점씩 200점씩 올려주는 토익신이라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해서 교회를 다니게 만든다는 소문도 났다. 전도도 열심히 해서 한 해에 100명 넘게 전도했다. 그때 전도한 학생들 중 대부분이 지금 함께 사역하고 있다.  

한 학생은 되고 싶은 직업이 뭔지 물으니 목사 아니면 다 괜찮다고 했는데, 내가 3개월 후에 나에게 목사가 되겠다고 이야기할 거라고 말했다. 내 말대로 3개월 후에 나를 찾아와서 목사가 되겠다고 했다. 한 학생은 1년 동안 나를 지켜봤는데 내가 행복해 보이고 내 안에 예수님이 있는 것 같아서 예수님 믿겠다고 했다. 귀신 들려있던 개척교회 목사님 딸도 예수를 믿고 변화되는 등 아주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심지어 학생들을 위해 결혼한 지 3일 만에 우리 집을 오픈했다. 매일 소주를 2잔 이상 먹던 술주정뱅이 학생이 함께 살면서 삶으로 복음을 전했더니 변화돼 지금은 목회자가 됐다. 지금 IM선교회에서 함께 사역하는 87명이 모두 이렇게 변화된 나의 제자들이다. 제자들 중에는 영역선교를 위해 다른 분야로 나간 이들도 있고, 여기 남아서 함께 사역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Q.  잘나가던 스타 강사에서 선교사로 바뀌면서 생활이 어렵지는 않았나?

누가 나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시사영어학원에서 돈도 많이 벌었을 텐데 어떻게 내려놓고 선교를 하냐고. 그런데 나는 처음부터 10의 9조를 했다. 월급 100만 원을 받으면 나는 10만 원으로 생활하고, 나머지 90만 원 중에 10만 원은 교회, 80만 원은 선교지에 보냈다. 원래 나는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으니까 어렵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게 산다. 나는 정말 주님 안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복음이 나의 전부이고 내가 주님의 전부가 되고 주님이 나의 전부 되셔야 되기 때문이다. 

2019년 대구 고산동부교회에서 열린 한다살 캠프에서 마이클조 선교사가 기도회를 인도하고 있다.
2019년 대구 고산동부교회에서 열린 한다살 캠프에서 마이클조 선교사가 기도회를 인도하고 있다.

Q. 지난 1월, IM선교회 코로나 확진 발생과 관련해서 어려운 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어떤 시간을 가졌는지?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다. 캠프를 한 것도 아니고 신입생을 받았던 건데 코로나가 터지게 돼서 사람들에게 욕먹고, 지탄받게 된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세 가지를 깨닫게 하셨다. 

첫 번째가 “이래도 이 일할래?”라고 주님이물어보셨다. "예,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영혼 구원과 다음 세대 살리기 위해서 주님이 이 시대를 향한 눈물이 있는 곳이라면 제가 하겠습니다."고 대답했다. 주님이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두 번째는 이 사역의 중요성에 대해서 깨닫게 됐다. 나는 비록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떠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 사역을 꼭 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 자녀들이 갈 데가 없다고 꼭 해주셔야 된다고 부탁했다. 

일반적으로 조직이 깨지려면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리더의 부도덕성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여자 문제나 돈 문제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경찰에서도 며칠 동안 많은 인원이 조사를 했지만 전혀 나온 것이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 신학적인 부분인데, 우리 교단과 600여 명의 목사님들이 방어해 주셨다. 개혁주의에 근거한 우리 교육이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교과서가 탁월하다고 증명해 주셨다. 세 번째는 내부의 갈등인데, 우리는 내부의 갈등이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나의 제자들이었고 함께 따라오는 분들이 함께하는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히려 선교회에 학생들이 늘어나고 교회들이 늘어나게 되고 더욱 알려졌다. 그러면서 이 일이 내 일이 아니구나 라는 걸 알게 됐다. 

Q. IM선교회에 대해 소개해 달라.

IM선교회는 2006년 1월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꿈과소망의교회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선교회로 하고 있다.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된다’고 했는데 거기에 내가 정말 동참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마태복음 24장 14절에 말씀에 근거해서 세워졌다. 우리는 선교를 ‘한다세’라고 부른다. 한국 선교, 다음 세대 선교, 세계 선교다. 교육 선교를 중점으로 한국 선교와 다음 세대 선교, 세계 선교를 이루는 역할을 하고 있다. 15년 동안 국내외에서 했던 교육선교를 지금은 교회들에 나눠주고 있다.

처음에 교육 선교에 비전을 갖고 시사영어학원 제자들과 함께 비행청소년 5명을 받아서 대안학교를 시작했다. 5명의 아이들이 놀랍게 변화됐다. 다음 세대 선교에 정말 좋은 도구가 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가면 갈수록 저출산으로 아이가 줄고 아이들이 교회에서 빠져나갈 텐데 1907년 평양에 대부흥이 있었을 때 학교 세우기를 했듯이, 그리고 지금 CTS에서 ‘1교회 1학교 세우기’ 운동을 하듯이 우리가 학교를 세우기 위해서 달려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안학교는 이후에 국제학교로 바뀌었고, 지금은 교회들에 맞는 다음 세대 사역을 가르쳐주면서 돕는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필리핀에서 사역할 당시 동역하는 선교사들과 기념사진(사진 맨 오른쪽이 마이클 조 선교사)
필리핀에서 사역할 당시 동역하는 선교사들과 기념사진(사진 맨 오른쪽이 마이클 조 선교사)

Q. IM선교회는 어떤 사역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교회에서 다음 세대 사역을 하시는 분들을 만나서 컨설팅을 하고, 그 교회에 가장 적합하게 다음 세대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교회마다 가보면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어떤 곳은 스터디카페를 하는 곳도 있고, 어떤 곳은 학원, 어떤 곳은 학교를 한다. 그리고 다음 세대 사역을 하기 위한 프로그램과 시스템과 콘텐츠를 만들어 주고 있다. 그것을 제공해서 교회가 쓸 수 있도록 한다. 현재 87명의 선교사님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사역을 하고 있고, 전국에 70여 개 교회가 동참하고 있다. 최근에 요청하는 교회들이 더 많아져서 아주 바쁘게 사역하고 있다. 이걸 해서 우리가 돈을 버는 게 한 푼도 없는데 사람들이 떼돈을 버는 줄 알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후원을 통해 운영된다. 요즘은 후원 계좌를 열어서 선교회에서 후원도 받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만든 콘텐츠에 대해 감사하게도 헌금을 해 주시기도 한다.

Q. 사역 중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평택에 있는 학교에서 자살 시도를 세 번이나 한 학생이 있었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더니 모범생이 됐다. 친구 13명을 캠프에 데려왔는데 아이들이 모두 뒤집어져서 교회에서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전엔 교회가 6~70명 정도였는데 약 8개월 만에 670명까지 놀랍게 부흥했다. 특별히 감사한 것은 교회에 온 절반이 예수님을 전혀 안 믿는 아이들이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되고 가정에도 부흥이 일어나고 교회에 부흥이 일어났다.

광주에 아이들이 4명 있는 교회에서 방과 후 학교를 시작했는데 한 학생이 영어 스피치 대회에서 1등을 하게 된 계기로 많은 학생들이 오게 됐다. 아이들이 30명 정도밖에 되지 않던 개척교회가 120명의 아이로 늘어났다. 새로 온 학생들 중에 50여 명의 아이들은 예수님을 안 믿는 아이였다.

또 한 분은 목회를 포기했던 목사님이셨는데, 아이들을 통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아서 40~50명의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목회를 하시고 계신다.

| 생각의 시선

나의 슬로건은 ‘내가 죽든지 다음 세대가 살든지’
'다음 세대 부흥 프로젝트' 통해 교회들이다음 세대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지원

'복음을 위해 살다 간 사람'으로 자녀에게 기억되길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마이클 조 선교사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마이클 조 선교사

Q. 요즘 많이 하는 생각은?

내 속엔 ‘다음 세대를 꼭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나의 슬로건은 ‘내가 죽든지 다음 세대가 살든지’이다. 한국의 다음 세대들이 일어나는 걸 내 눈으로 보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두 번째는 부흥이 다시 왔으면 좋겠다. 새로운 부흥이 와서 이 땅에 코로나 때문에 위축된 교회들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시 집결하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면 좋겠다.

세 번째는 한국 교회가 다시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이념의 전쟁과 좌우로 나누어진 갈등이 많은데, 코로나 때문에 마음이 무너지고 사역을 다시 일으켜야 되는 이 상황에서 혼돈과 패닉이 많은 것 같다. 주님이 꼭 역사해 주셔서 교회가 다시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Q. 다음 세대를 꼭 살리고 싶은 이유는?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사사기처럼 부흥을 주실 것이다. 그러면 지금 가장 시급한 세대가 어딜까? 나는 다음 세대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한국에 부흥을 좀 부어줘야 되겠는데 어디에 부어줄까 생각하신다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다른 세대가 아니라 새로운 세대에 하나님의 부흥을 주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교회마다 다시 부흥이 올 것이라고. 그리고 그 부흥이 누구를 통해서 와야 되냐면 새로운 세대, 이다음 세대를 통해 일어나야 된다. 그래야 한국 교회의 소망이 있다고 본다. 

다음 세대의 부흥을 위해서 IM선교회가 새로운 다음 세대 부흥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걸 학교라고 생각하더라. 그런데 IM선교회는 학교만 하는 단체가 아니다. 방과후학교도 하고 스터디 카페도 하고 학원도 하고, 식당도 하고 다음 세대 사역에 가장 적합한 것을 교회가 찾아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역을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학교를 운영하고 있지 않다. 교회들이 학교와 다음 세대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시대가 암울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빛은 더 밝은 거니까. 

필리핀에서 사역하던 당시 현지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다양한 물품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필리핀에서 사역하던 당시 현지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다양한 물품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Q. 나의 생각이나 가치관에 영향을 끼친 존재는?

나는 사람보다는 책들을 통해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선교사 열전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선교사 열전에서 나왔던 모든 사람들이 순종을 넘어 순교를 향해 달려갔던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나도 가능하다면 하나님이 기회 주신다면 순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그냥 죽지 않고 돌에 맞아 죽거나 화형을 당해서 주님이 그런 영광을 주신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분은 우리 어머니다. 참 무식하고 무지하셨지만 자녀를 위해서 세 시간씩 기도해 주시는 어머니가 있어서 행복하다. 지금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요양원에 계신다.

Q. 나의 고정관념을 깼던 사건이나 문구는?

짐 엘리엇의 ‘영원한 것을 위해서 영원하지 않은 것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다’라는 말에 큰 영향을 받았다. 선교사 열전에 나오는 짐 엘리엇의 삶을 보면서 결단했다. 저분은 스물아홉에 주님께 갔는데 나의 평생 삶은 모두 주님께 드려야 되겠다. 그리고 복음을 위해 살다 간 사람으로 내 자식에게는 우리 아버지가 복음을 위해 살다 간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참 기쁘겠다 이런 생각을 했다.

필리핀 아이들에게 포토존을 만들어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필리핀 아이들에게 포토존을 만들어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 세상의 시선

교육선교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차의 방향을 바꿔 복음 전하는 삶 살도록 하는 사역
아이들은 '보석' 하나님 말씀으로 깎고, 가정은 '신앙전수' 공간 돼야
12 베이스, 300 교회, 3,000의 교육 선교사를 목표로

Q.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는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살아간다. 예수를 믿는 사람과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과 또 천국문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지옥문을 향해 달려가는 게 아니라 천국문을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그런 세상을 좀 만들었으면 좋겠다.

Q. 변화했으면 하는 세상의 해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세상을 위해서 우리는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모든 분야에 대한 영역 선교를 해야 된다. 방과후학교나 도서관은 목표가 아니라 도구이다. 교육 선교를 통해서 잘못된 방향으로 가던 차를 돌려서 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공부만 잘하고 외국 대학을 가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어떻게 이롭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복음이 들어가서 신앙과 생활이 바뀌면 학습이 바뀌게 되는데, 하나님 안에서 균형 있는 이 4차선 고속도로에 아이들이 올라가게 된다. 반대쪽 4차선이 아니라 이쪽 4차선에 잘 올려서 갈 수 있도록 만드는 교육 시스템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Q. 요즘 아이들의 상황은?

아이들이 핸드폰을 하는 세대다 보니까 세상 가치관이 어릴 때부터 들어가고 사람들과 대화가 잘 안된다. 옛날에는 노는 아이들이 더 폭력적이고 그랬는데 요즘 애들은 오히려 착하다. 그런데 더 말을 안 듣는다. 그리고 포르노를 옛날에는 중학교 2학년 정도 돼서 처음 봤었다면 지금은 초등학교 3학년, 4학년에 보게 된다고 한다. 

10년 전까지는 캠프를 하면 술이나 담배를 하는 아이들이나 문신한 아이들이 왔었는데 요즘은 제일 무서운 게 동성애자들이다. 10년 전만 해도 기겁을 했는데 지금은 학생들의 반 이상이 동성애에 대해 찬성한다. 수련회 중에 문제도 종종 발생된다.

아이들의 꿈도 이전에는 대통령 같은 꿈을 꿨다면, 지금은 아바타 만들어서 메타버스에 올려서 돈을 번다던지 건물주가 되고 싶다고 한다. 결혼도 꼭 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아이들의 마음에 공허가 가득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안타까운 것은 작년에 캠프에 참석한 2천 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확인해 보니 50여 명이 교회 다닌다고 했다. 20명 중에서 19명이 예수를 안 믿고, 그중에 교회는 다니지만 예수를 안 믿고 예수를 만나지 못한 아이들이 대부분인 것이 현실이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성장하면서 19명의 아이들은 저절로 교회를 떠나가게 된다. 그래서 지금 한국 교회의 미래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2019년 수원 은사랑교회에서 진행된 한다살캠프에서 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19년 수원 은사랑교회에서 진행된 한다살캠프에서 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Q. 아이들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아이들은 보석이다. 보석이기 때문에 잘 깎이기만 하면 된다. 하나님 말씀으로 깎이기만 하면 된다. 말씀이 들어가면 아이들은 살아난다. 예수님이 만지시면 아이들은 변화되기 때문에 아이들이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은 영이셔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으신다. 실제 매년 우리 수련회를 할 때마다 참석한 아이들이 은혜를 엄청 받게 된다. 아이들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30년 전에 부흥회 하듯이 예배하고 말씀 보고 기도하면 통한다. 

Q. 다음 세대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나길 바라는가?

우리 아이들이 말씀 안에서 크고, 세상을 이길 만한 가치관을 가지면 좋겠다. 과학적, 논리적, 이성적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복음의 가치관을 가지면 동성애와 담배 등에 대해 성경과 하나님을 이유를 들 수 있게 된다. 또 비전과 꿈을 갖고 자라길 바란다. 신앙이 바뀌면 생활이 바뀐다. 생활이 바뀌면 학습이 바뀌고 직장이 바뀌게 된다. 거룩한 하나님의 의로 왕 같은 제사장 같은 존재인 것을 깨닫고 지역선교와 영역선교, 열방선교의 비전을 갖고 각자의 자리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면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길 간절히 소망한다.

Q. 학부모님들이 아이들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잘 못 가르치는 부분이 있는지?

내가 생각하는 가정에 대한 정의를 4글자로 하면 ‘신앙전수’이다. 집은 그냥 밥만 먹고 잠만 자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정을 주신 이유는 자녀 교육만 잘 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앙을 다음 세대에게 전수하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 가는 것이 다가 아니고 매일매일 아이들이 하나님 앞에서 신앙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부모님이 "나는 그렇게 못 살았지만 너는 그렇게 살아라"가 아니라 "우리 이렇게 살자"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들께 꼭 강조하는 것 중에 매일 예수님이 거실 앞에 앉아 있다는 생각으로 양육하라고 한다. 주님을 교회에다만 두지 마시고 예수님을 집 안에 모셔야 한다고 요청한다. 신앙의 터전이 삶이기 때문에 가정이 천국이 되고 가정에 예수님이 들어와서 사셔야 한다. 부모의 신앙을 전수하기 위해서 신앙을 몸으로 삶으로 보여주는 터전이 가장 아름다운 가정이다. 

IM선교회에서 매년 진행하는 수련회를 통해 참석한 학생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되고 있다.
IM선교회에서 매년 진행하는 수련회를 통해 참석한 학생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되고 있다.

Q. 가정에서의 나의 모습은?

나는 자녀가 5명이다. 큰 아이들은 선교사가 되겠다고 한다. 그래서 왜 선교사가 되고 싶냐고 물었더니 “아빠가 사는 삶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참 행복해 보여요.” 사실 나는 주님이 나를 선교사로 불러주신 것만 해도 정말 감사한데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면서 열방과 한국 땅을 누비며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기쁨과 특권이 늘 감사하다. 

아내는 늘 ‘선교사는 죽어도 선교지에서 죽어야 된다’고 말한다. 우리 둘은 사명에 묶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땅의 것에 그렇게 연연하지 않고 포기하는 삶이 아니라 반대로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천만 원을 갖고 백만 원과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가치가 있으니까 이 땅의 것이 천국과 비교할 때 가치가 작을 수밖에 없다. 이 땅의 것을 내려놓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Q. IM선교회의 앞으로 비전은?

12개 나라에 베이스를 두고 300개 교회와 3천 명의 교육 선교사를 보내는 것이 비전이다. 교육 선교사를 통해 하나님의 다음 세대와 군대를 예비 시켜서 한국 땅과 열방에서 부흥을 보기를 소원한다.

Q. 독자분들에게 권면과 도전의 말씀?

예수만이 생명이고 예수만이 부활이고 능력이시다. 낙망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이 땅에 다음 세대의 소망을 갖고 이 땅의 교회가 다시 부흥을 경험하도록 위축되지 말고 일어나서 주의 나라를 위해 달리길 바란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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