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S Essay / 이성조 목사(상동감리교회)

는 보스턴에서 오랫동안 목회했습니다. 그곳에서는 1 년목회를시작할수있는9월이가장중요합니다. 항상 전도초청잔치를 했는데 그해에도 참 멋있게 잘 진행하 는 가운데 많은 초청자가 있었습니다. 초청잔치가 끝나 고 음식이 꽤 많이 남았습니다. 성도들이 가져가기도 했 고 냉장고에 넣고 나서도 남았습니다. 어쩔 수 없었지만 성공적인 초청잔치에 만족하며 남은 음식을 버릴 수밖 에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우리가 버린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백인 모녀를 발견했습니다. 지금도 그 아이의 눈 과 딱 마주친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우리가 타자의 얼굴 앞에 노출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은 “제가 여기 있습니다(Here I am)!”라고 말하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타자에 대한 무한한 책임이 나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수십억 인구 중에 그 타자의 문제 앞 에응답할수있는사람은저한사람뿐인것입니다. 왜 냐하면 마주 서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소명입니다. 그날 이후 동네 어려운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사역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 결과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하나 님께서 그들을 통해 부흥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이 사람들을 먹이겠는가” (요한복음 6장 1~11절)

이 말씀에서도 타자를 마주한 두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과 안드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만을 바라 보고 호수 건너편까지 따라온 백성들을 보며 “오늘 나는 그들을 먹일 것이다”라는 결정을 하십니다. 그리고 빌립 에게 “어떻게 하면 이들을 먹일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 셨습니다. 빌립은열두제자중계산이가장뛰어난자 였습니다. 빌립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철저하게 배 제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계량화를 거쳐 2만 명이나 되 는 사람을 먹이려면 200데나리온이 있어도 부족하다 는 답변을 내놓습니다. 대부분의 질문은 아픔과 고통이 가득한 현장에서 나옵니다. 빌립과 같은 연구자의 방법 도 인류의 발전을 위해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세상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인간의 정답은 세상 의 거대함 앞에 우리를 소시민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의 마음에 늘 관심이 있던 사람이었습 니다. 그래서 안드레는 무리에게 달려갔습니다. 음식 가 지고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그게 있다면 예수님께서 무 엇인가를 하실 것을 믿고 가져 온 것이 바로 오병이어입 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보리떡과 생선은 정말 작고 보잘 것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수많은 사역을 하면서 항상 이 본문을 생각합니다. 사역의 결정을 앞두고 내가 과 연 안드레라면 이 오병이어를 예수님께 가져갈 수 있었 을까? 저라면 안 그랬을 것 같습니다. 작고 볼품없는 걸 많은 제자 앞에서 보인다는 게 부끄러웠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안드레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게 바로 믿음이 었습니다.
세상의 방식으로 믿음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믿음의 방 식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우리의 고민입니다. 세 상은 우리에게 “200데나리온도 없잖아”라며 현실을 지 적합니다. 그때문에훨씬더큰믿음이필요합니다. 책 상이나 회의장이 아닌 현장에서 그 정답을 찾으려고 했 던 안드레의 믿음을 봐야 합니다. 그 배고픔의 현장에서
갈망하는 백성을 보며 자신의 아픔이 되는 순간 백성을 먹이는 문제는 자신의 문제가 된 것입니다. 자신의 타자 가됐기때문에어쩔수없이그문제를해결할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200데나리온이 있는지 없는지가 별 로중요하지않은것입니다. 나같은사람도이러한데그 들을 지으신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 그리고 예수 님은 친히 무엇인가를 하기로 결정하신 게 아닐까? 그 믿음으로 예수님께 오병이어를 가져간 것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믿음은 우리 안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세상의 고통과 아픔의 현장 가운데서 언제나 타자의 얼굴을 대면했을 때 나옵니다. 제가 쓰레기통 앞 에서 마주한 타자의 얼굴이 저를 개척의 목회로 이끌었 듯이그타자가바로우리를변화시킬것입니다. 그얼굴 에서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합니다. 그 현장 에서 하나님의 아픔을 느낄 때 그 아픔은 역설적으로 인 간의 가장 연약한 본성인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이기게 하는 능력입니다. 얼마나 아파할 수 있느냐가 얼마나 믿 음으로 살 수 있느냐를 결정합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아픔과 대면하는 능력을 잃어버렸습 니다. 이 시대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CTS 프로그램인 <7000 미라클>의 기적이 하루도 쉬지 않고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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