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창세기 39:1-5)

지금 우리는 불통이 난무하는 역경의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불통의 시대 속에서 불통의 문제 소에 파묻힌 사람들은 생각이 막히고, 마음이 막혀 괴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물질의 불통 때문에 절망하고, 관계의 불통 때문에 상처받고, 건강의 불통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역경을 초월하는 형통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잘 통하고, 이웃과 잘 통하며 자기 자신과 잘 통하는 사람은 불통의 시대 속에서도 막힘이 없는 형통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영혼의 형통이 이루어지면 마음의 형통, 생각의 형통, 언어의 형통이 이루어지고 역경을 뛰어넘은 형통을 창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시간 여러분 모두에게 역경을 초월하는 형통의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형통은 아무 문제 없이 자신이 원하고 계획한 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적인 형통은 문제없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은 고난을 통해서라도 우리의 내면을 정결하게 하고 역경을 통해서라도 우리의 영혼을 성장시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많은 영혼을 살리는 삶을 살게 합니다.
창세기 39장의 주인공인 요셉은 역경을 초월하는 형통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실 육의 눈으로 보면 그의 인생은 형통이 아니라 극심한 불통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는 형통에게 죽임을 당할 뻔하다가 애굽의 노예로 팔리는 역경에 처해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은 노예로 팔린 요셉을 ‘형통한 자’라고 불렀습니다.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창세기 39장 1-2절을 살펴보면 요셉의 형통은 세상적인 형통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형통으로,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능력으로 역경을 돌파해내는 형통이었습니다.
그는 노예로 있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무슨 일을 하든지 형통한 결과를 이루었습니다. 성경은 단도직입적으로 요셉의 주인인 보디발이 요셉의 형통을 목격했다고 설명함으로써 요셉이 누린 형통이 얼마나 강력한 것이었는지를 표현했습니다. 요셉의 형통은 억울하게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이어졌고, 마침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 자기 가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데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형통의 삶을 사는 사람은 실패처럼 보이는 상황 속에서 승리의 역사를 써내려갑니다. 형통의 근원지는 마음이기에, 어떤 환경에 처해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마음으로부터 승리의 개가를 부릅니다. 그래서 형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정직하고 성실하며 지혜롭고 깔끔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요셉에게 있었던 역경을 초월하는 형통의 능력이 임하여 범사에 형통을 누리고 많은 영혼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글 ㅣ 이순희 목사(백송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