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창37:35, 개역개정)
그의 아들딸들이 모두 나서서 그를 위로하였지만, 그는 위로받기를 마다하면서 탄식하였다. “아니다. 내가 울면서, 나의 아들이 있는 스올로 내려가겠다.” 아버지는 잃은 자식을 생각하면서 울었다.(창37:35, 새번역)
‘스올’은 사후세계를 의미하죠.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한 야곱은 자기도 따라 죽겠다며 통곡합니다. 자신이 요셉을 세겜으로 보냈으니 후회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갑니다. 무엇보다 야곱을 힘들게 한 것은 요셉이 꾸었던 꿈에 대한 기억이었을 겁니다. 하나님이 꿈을 통해 요셉이 장차 대단히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리라는 계시를 주셨는데, 자기가 범한 실수로 인해 물거품이 되고 말았으니까요. 가장 총명했던 아들, 그 아이를 낳아준 사랑하는 아내, 그에게 베풀 미래를 꿈으로 알려주신 하나님에게 모두 죄를 지은 듯한 고통이었을 겁니다. 레아의 아들 르우벤이 맏아들이었어도 야곱 마음속에선 누가 뭐래도 요셉이 장자고 상속자였죠. 요셉이 죽고 없는 지금, 야곱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습니다. 이후 야곱은 소망을 잃은 채 극성스러운 아들들에게 밀려나 요셉과 재회할 때까지 침울한 삶을 살게 되죠.
요셉의 이야기는 37장에서 접어두고 유다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창세기 38장 주인공은 유다입니다. 요셉과 유다, 이 두 사람은 장자의 권위를 잃은 르우벤을 대신해 형제들 사이에서 실질적인 리더로 부상하게 되죠. 창세기는 37장과 38장을 요셉과 유다 이야기에 할애함으로써 두 사람이 훗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됨을 예고합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초기에 굉장히 곤란한 지경에 처한다는 사실인데요, 이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이제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창38:1~2, 개역개정)
그 무렵에 유다는 형제들에게서 떨어져 나가, 히라라고 하는 아둘람 사람이 사는 곳으로 가서, 그와 함께 살았다. 유다는 거기에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고 하는 사람의 딸을 만나서 결혼하고, 아내와 동침하였다.(창38:1~2, 새번역)
유다는 집을 떠나 가나안 땅에서 결혼해 자녀를 낳고 살았죠. 분가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이것이 유다 혼자만의 사례인지, 다른 형제들도 분가해서 살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창세기 38장이 매우 예외적인 기록이기 때문에 야곱 아들의 일반적 삶을 추측할 근거로 삼기 어렵거든요. 다만 가나안 사람과 결혼하는 상황은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야곱과 밧단아람 사이에 결혼을 포함한 모든 관계가 끊겼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서 결혼 상대를 찾을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과 결혼한 유다는 엘, 오난, 셀라의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큰아들 엘이 가나안 사람 다말과 결혼했죠.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창38:8, 개역개정)
유다가 오난에게 말하였다. “너는 형수와 결혼해서, 시동생으로서의 책임을 다해라. 너는 네 형의 이름을 이을 아들을 낳아야 한다.”(창38:8, 새번역)
무슨 이유였는지 엘이 일찍 죽고 맙니다. 당시 규칙은 형이 자식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 자녀를 낳음으로써 형의 후손을 잇는 것이었는데요, 8절에서 유다가 엘의 동생 오난에게 형수 다말과 결혼하라고 지시한 이유가 이것이었죠. 그렇게 다말과 결혼한 오난마저 죽고 나니 하나 남은 막내아들 셀라가 큰 형수 다말과 결혼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유다는 셀라마저 죽을까 봐 아직 어리다는 핑계를 대며 다말과 결혼시키지 않았고 그 대신 다말을 친정으로 보내 셀라가 장성할 때까지 기다리게 했죠.
다말은 이것이 셀라와 결혼하지 못하게 하려는 거짓말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결혼해야 한다면 장성할 때까지 기다리게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다말도 이런 상황에 속이 탔을 겁니다. 전 남편 엘과 오난이 죽은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주변 시선들 때문에 힘든 상황이었을 테니까요. ‘남편이 두 명이나 거쳐 갔는데도 아이가 없는 걸 보면 신에게 저주받은 사람’이라고 속단하는 사회 인식도 무시할 수 없었고요. 남편의 죽음과 불임이 다말에게서 비롯된 문제가 아님이 분명했음에도(창38:7, 9) 자신이 원인 제공자로 지목되는 상황에서 셀라와의 결혼이 미뤄진다면 결백을 입증할 기회도 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내 이에 대한 항의를 격렬하게 표현하기로 결심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