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내었음이라 하였더라”(출애굽기 2장 9~10절)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믿음으로 모험하는 인생에 대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출애굽은 야곱의 가족 70여 명이 가나안의 대흉년을 피해서 애굽으로 이주하면서 시작된 사건입니다. 흉년이 끝나면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4백 년의 시간이 흘러버렸습니다. 4백 년을 애굽에 머문 것은 이방의 객이 되어 이방 민족을 섬기게 될 거라는 하나님의 섭리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애굽땅이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 땅보다 비옥했고 풍요로웠으며 또 요셉을 신뢰하고 존중하는 애굽의 통치자들이 있어서 안전하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물질적인 풍요와 육체적 안락이 얼마나 영적으로 위험한지 알 수 있습니다. 애굽에서 걱정 없이 편안하고 풍요롭게 지내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받은 비전과 사명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신약의 말씀으로 풀면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돼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풍요와 안전을 버리고, 하나님이 부르신 곳으로 나아갔습니다. 편안하고 풍요롭게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사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후손들은 그 믿음을 계승하지 않고 하나님의 비전을 버리고 풍요와 안전을 택했습니다. 여러분도 편안하고 안락한 삶에 사명을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모세가 태어납니다. 출생 때는 히브리 산파들이 살리고, 이어 모세의 부모가 석 달 동안 살리고, 마지막엔 바로의 공주가 데리고 가서 아들로 삼아 결국 모세는 생존하게 됩니다. 우연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고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특히 이해관계가 하나도 없는 히브리 산파나 바로의 공주가 모세를 살린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오늘 이 사건을 보며 “믿음은 알 수 없는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는 모험”이라고 정의 내려 볼 수 있습니다. 알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를 다 담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모든 것을 이해해야 믿을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다 알아야 순종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과연 그럴까요?
만일 인간의 머리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다 알고, 모두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닐 것입니다. 다 알아야 하고 다 알 수 있다는 생각은 인간의 무지함과 교만에서 비롯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고 순종하면서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멈추어 되돌아보면 하나님이 여전히 나를 붙잡고 인도하고 계신 것을 깨닫고 여전히 모르고 이해할 수 없지만 말씀에 순종하며 그 길을 가는 것이 믿음이며 신앙생활입니다.
믿음으로 항해하는 삶이란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란 것만 알고 나머지는 다 몰라도 기쁘게 순종으로 가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미래가 불확실하지만 확실한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음의 모험을 하는 성도의 삶입니다. 오늘도 믿음의 발걸음을 떼어 믿음의 모험을 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글 l 이기원 목사(서귀포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