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출애굽기 33:15)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시내산에 올라가서 십계명을 받고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을 압박해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금송아지가 애굽에서 우리를 구원한 하나님이다”면서 우상을 숭배하고 춤추며 놀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이 백성들을 다 쓸어버리고 너와 다시 시작하겠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모세가 “하나님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도 계시고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이 있는데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가운데 구원을 얻게 됐죠.
모세가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했는데 하나님께서 금송아지를 섬긴 것이 서운하셨던지 33장 앞부분에 보면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너보다 앞서 내 사자를 보낼 것이다. 사자를 보내서 기을 인도하고 적들을 물리치면서 가나안 땅에 올라가도록 인도할 것이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랬는데 모세가 이 말을 합니다. “주님께서 친히 가지 않는다면 올려보내지 마십시오. 가지 않겠습니다.”고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사자를 앞서 보내신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모세는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약속의 땅입니다. 약속의 땅으로 당연히 가야하는 것입니다. 사자까지 앞서 보내신다면 “하나님 감사합니다.”하고 가야하는데 모세는 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가지 않는다면 저도 가지 않겠습니다.”
여기는 참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약속의 땅은 가야 됩니까, 말아야 됩니까? 가야 되죠. 하나님의 사자까지 앞서 보내시는 친절함을 베푸신다면 당연히 가야 되죠. 그런데 하나님이 가지 않는다면 모세는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모세의 목적은 가나안 땅이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러니까 광야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거기가 가나안인 것이고, 가나안 땅에 하나님이 안 가신다면 거기가 광야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광야, 가나안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 있겠다는 거죠.
모세의 목적은 어디 좋은 장소가 아니었고 하나님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이 가지 않는다면 가지 않겠습니다. 주의 영광을 보여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오직 하나님이 있는 곳이 가나안 땅이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앞길을 선택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곳이라 할지라도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느냐, 하나님이 계신 곳에 우리가 있어야 가장 안전한 곳이고 우리의 목적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가지 않는 곳에 간다고 한다면 아무리 약속의 땅이라 할지라도 가나안 땅이 될 수 없는 것이고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곳에 가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대학도, 아무리 좋은 직장도 우리에게 유익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세와 같은 믿음의 결단이 우리에게 있어서 남은 올해도 하나님이 있는 곳에 머물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글ㅣ순천동부교회 이정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