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나를 선교사로 택하셨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느껴지는 하나님의 사랑
필리핀에서 제자 양육과 복음 전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28년간 필리핀 선교사로 헌신해온 임창만 선교사.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임 선교사는 군 복무 중 처음 하나님을 만나 해군 함선 갑판 위에서 하나님의 일꾼이 되기로 고백한다. 이후 하나님께서 임 선교사를 필리핀 선교사로 사용하기 위해 걷게 하신 인생길과 필리핀 선교사역을 들어보자

임창만 선교사
임창만 선교사

ㅣ삶의 시선

"하나님은 나를 훈련시키셨다"
군대에서 성경공부를 통해 만난 하나님
임창만 선교사, 군대에서 절도 누명을 받다

Q. 지금까지 선교사님의 삶을 표현한다면?

‘하나님께서 만드신 삶’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사실 나는 단 한 번도 선교사가 되고 싶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웃음) 하지만 성경 말씀에 하나님이 모세를 택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한 것처럼 나도 하나님께 택함 받아 필리핀에서 사역하게 된 것 같다. 은퇴시기가 가까워지고 지난날을 돌아보니 하나님이 나를 선교사로 사용하기 위해 여러 가지 훈련으로 지금의 나를 만드셨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삶’이다.

Q. 어떤 계기로 선교사가 되셨나요?

창원남산교회에서 김은호 선교사님의 사역을 돕기 위해 처음으로 필리핀에 갔었다. 그때 쓰레기장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며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아이들이 영혼마저 구원받지 못한다면 너무 억울한 일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나는 필리핀에 남아 김은호 선교사님의 사역을 돕기로 했다. 그러다 김은호 선교사님은 나에게 신학공부를 권유했고 나는 필리핀과 미국에서 신학을 배우게 됐다. 아마 김은호 선교사님은 내가 하나님께 선교사로 사용될 것을 눈치채신 것 같다. 이후 나는 선교사의 삶을 살게 됐다.

창원남산교회 @출처=창원남산교회
창원남산교회 @출처=창원남산교회

Q. 삶의 굴곡 중에 가장 행복했을 때와 힘들었을 때는 어떤 순간인가요?

우리 가정은 할머니부터 시작된 믿음의 가정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부모님의 신앙생활을 보며 자라왔다. 아버지의 찬양과 어머니의 새벽기도를 통해 찬양과 기도의 힘을 깨닫게 됐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해 부모님께 배운 신앙생활을 실천으로 옮기진 못했다. 18살 때 어머니께서 소천하시고 어려웠던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중학교 졸업 후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19살 때 밥을 제공해 주고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는 해군 부사관에 입대하게 됐다. 삶의 안정을 가져다준 군대는 적성이 잘 맞았고 군 생활은 너무 즐거웠다.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많은 포상을 받았고 군 유학을 하기 위해 영어 공부도 틈틈이 준비했다. 하지만 나의 신앙생활은 방황기를 보내고 있었다. 동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싸우며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지 못했다.

어느 날 군의관이 나에게 네비게이토 성경 공부를 같이하자고 권유했다. 함께 성경 공부를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이사야 1장 18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됐다.

죄인인 내가 양털같이 희게 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됐고 홀로 배 갑판 위에 올라가 “하나님 내 모든 것을 드려 하나님께 헌신하겠습니다! 나를 사용해 주세요!”라고 하나님께 외쳤다. 어떻게 사용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기도하진 않았다. 하지만 은혜의 눈물을 흘리며 계속해 외쳤던 것 같다. 그 순간이 바로 내 인생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하나님을 만난 후 내 삶은 180도 변했다. 장병들과 후배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했다. 오죽하면 그때 내 별명이 ‘목사’였다. (웃음)

내 인생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군대에서 절도 누명을 받았던 일이다. 1980년 12월 휴가 중 장교의 요청으로 집에 방문해 전축을 고쳐드린 적이 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장교의 집에서 금품을 훔쳤다는 절도 누명을 받게 됐다. 그 금품은 장교의 아들이 해군 사관학교 졸업 전 해외 순항 훈련을 다녀오며 가지고 온 귀한 물건이라고 한다. 해군 헌병 수사과에 나의 결백을 이야기했으나 돌아온 것은 구타와 폭행이었다. 나는 1980년 12월 9일부터 23일까지 14박 15일간 고문을 받았다. 나는 3일간 강한 불빛 아래 물 한 모금 주지 않는 고문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 지금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고문들을 겪었다. 하지만 의지할 수 있는 분이 하나님 밖에 없어서 일까 그 시간이 하나님과 가장 긴밀하고 깊게 소통했던 시간이었다. 몸과 정신은 약해졌지만 영은 강해졌고 맑아졌다. 그러다 거짓말 탐지기를 통해 나의 결백이 인정받아 풀려나게 됐다. 24살 젊은 나이. 15일간 겪은 고문들은 내 몸을 망가트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신경통과 우울증, 정신적 트라우마들은 잘 적응하고 있던 나의 군 생활을 망치기 시작했다. 29살. 결국 난 군 생활을 그만두게 됐다.

선교사로 파송 받는 임창만 선교사 @출처=임창만 선교사
선교사로 파송 받는 임창만 선교사 @출처=임창만 선교사

ㅣ사역의 시선

팔라완섬에서 선교 사역을 진행해 온 임창만 선교사
사역 중 지쳤을 때 하나님께 기도로 회복해
필리핀 현지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다

Q. 지금까지 해오신 사역과 인상깊은 에피소드를 이야기 해주신다면?

나는 인류의 문명이 닫지 않은 팔라완섬에서 사역했다. 팔라완섬은 과거 필리핀의 범죄자들을 보내던 섬이다. 현재는 무슬림과 반정부 단체가 모여있으며 말라리아, 식중독 등 각종 질병으로 가득한 섬이다. 많은 사람이 내가 팔라완섬으로 떠나는 것을 말렸다. 하지만 나는 고급스러운 사역지에서 사역을 할 생각이라면 선교사로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필리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그 영혼들을 구하기 위해 선교지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선교지에 들어온 나는 기독교 영화와 톱 연주로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제자 훈련을 통해 교회를 개척했다. "톱은 사용하는 사람의 목적에 따라 쓰임이 달라진다. 여러분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 귀하게 사용될 수 있다." 내가 톱 연주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자주 외쳤던 말이다. 또한 고등교육도 받지 못했던 제자들이 목회자가 되어 지식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때, 그 기쁨과 감동은 어떠한 문장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 또한 창원남산교회 의료선교팀과 함께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떠날 때도 있었다. 치안이 좋지 않던 팔라완섬이었기에 사역자들은 몽둥이를 들고 돌아가며 불침번을 섰던 기억도 있다.

사역하면서 어려운 점도 많았다. 말씀을 전하다 마을 주민이 들어와 칼을 들고 난동 부리기도 했고 기독교 영화 상영을 방해하기도 했었다. 또한 현지의 질병들은 나와 우리 가족들을 괴롭혔으며 구토와 고열 등 빈번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역을 멈추지 않았다.

임창만 선교사가 필리핀에서 기독교 영화 상영해주고 있다. @출처=임창만 선교사
임창만 선교사가 필리핀에서 기독교 영화 상영해주고 있다. @출처=임창만 선교사
임창만 선교사가 기독교 영화 상영을 준비하고 있다. @출처=임창만 선교사
임창만 선교사가 기독교 영화 상영을 준비하고 있다. @출처=임창만 선교사

Q. 사역에서 지쳤을 때 어떻게 다시 회복하는 지?

나도 피곤하고 지칠 때가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면 결국엔 스스로 일어나곤 한다. 또한 하나뿐인 나의 아내가 옆에서 많이 도와줬기에 금방 회복됐다. 무엇보다 사역에 지쳤을 때 하나님께 더 찰싹 달라붙게 되는 것 같다.

Q. 선교사님의 달란트를 소개한다면?

나는 맥가이버로 많이 불렸다. 말 그대로 나는 어떤 물건이든 잘 고치고 수리하는 달란트가 있다. 그래서 선교지로 출발할 때 맥가이버 칼을 꼭 챙겼다. 또한 언어를 빨리 습득하는 달란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필리핀에는 다양한 부족들이 살고 있기에 영어와 타갈로그어 등 다양한 언어가 필요했다. 감사하게도 나는 단기간에 필리핀에 필요한 언어들을 습득해 복음을 전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담대함이라는 달란트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이야기를 잘 나누는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님의 심부름으로 어두운 산길을 다녔던 경험이 나를 담대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이러한 나의 달란트들은 필리핀 사역에 큰 도움이 됐다.

Q. 선교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하나님이 당신을 선교사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면 당신은 언제든지 사용될 것이다. 많은 한국의 신학생들이 대학원을 졸업해 한국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고 선교지로 파송된다. 하지만 나는 그런 훈련과정 없이 바로 필리핀 현지로 떠났고 선교 현장에서 훈련을 받으며 선교사로 성장했다.

나는 선교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직접 선교지로 떠나 현지에서 훈련받길 권한다. 아브라함과 모세, 바울처럼 하나님은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도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용하신다. 만약 선교사로 파송됐을 때 온전히 기도에 매진하길 바란다. 어두운 영적인 환경 속에서 붙잡을 수 있는 분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기 때문이다.

필리핀에서 제자 양육을 했던 임창만 선교사 @출처=임창만 선교사
필리핀에서 제자 양육을 했던 임창만 선교사 @출처=임창만 선교사

ㅣ생각의 시선

누구든 그리스도인만 된다면 걱정하지 않는다
어려운 길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길
마르지 않는 샘

Q. 선교사님께서 가지고 계신 나만의 철학은?

‘어떠한 사람이든 그리스도인만 된다면 더 이상 염려할 것이 없다’가 나만의 철학이다. 왜냐하면 사울이 하나님을 만나 위대한 바울이 된 것처럼 어떤 사람이든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책임져주시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이 택한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가 내 두 번째 철학이다. 이러한 나의 발언이 극단적인 예정론으로 들릴 순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 삶을 돌아봤을 때 아브라함과 모세처럼 하나님이 택한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 섭리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도 선교사가 된 배경도 내가 계획한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이다.

Q. 어떠한 일을 결정하거나 선택할 때 가장 기준으로 삼는 것은?

모든 일에는 쉬운 길과 어려운 길이 존재한다. 나는 항상 어려운 길을 택한다. 왜냐하면 어려운 길을 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또한 어려운 길을 가면 얻게 되는 것도 많다.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 과정 속에서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달란트를 얻게 되는 귀한 역사도 체험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쉬운 길을 택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보통 쉬운 길은 세상적인 길이다. 복음의 진수를 깨달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길을 걷는 것이 복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어려운 길을 택한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길은 가시밭길이었다. 하지만 그 가시밭길에는 향기로 가득했다.’ 내가 하는 이 말을 공감하시는 분들이 많길 바란다.

Q. 나에 대해 책을 쓴다면 머리말에 남길말은?

‘마르지 않는 샘’이라는 글자를 남기고 싶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 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 말씀처럼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삶을 살아가면 내적인 갈증을 느낄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내 인생과 함께 했고 마르지 않는 샘처럼 나를 사랑으로 채워주셨다. 그래서 군대에서 누명을 받아 많은 고문들을 받을 때도 내 영혼은 흡족했다. 그래서 내 일대기를 쓴다면 머리말에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적고 싶다.

기도를 받고 있는 임창만 선교사 @출처=임창만 선교사
기도를 받고 있는 임창만 선교사 @출처=임창만 선교사

세상의 시선

우리는 이제 마지막 때를 준비해야 한다
가정에 복음을 전하자
무엇이 진정한 복인지 생각해 보자

Q. 선교사님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마지막 때. 마지막 때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마지막 때에는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험난한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에 적힌 말씀처럼 이 세상은 소돔과 고모라를 닮아가고 있다. 죄악이 가득하고, 동성애가 들끓고, 거짓이 가득한 세상. 현재 전 세계가 타락하고 죄악으로 어두워지고 있다. 또한 세상이 죄악으로 어둠이 짙어지고 있는 속도 또한 빨라지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만 보더라도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평등법 등 동성애가 옳다는 법안이 올라오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미국에서도 일어났었던 일들이고 한국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동성애 합법화 반대 운동을 하며 움직이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세상은 죄악으로 더욱 어두워질 것이며 소돔과 고모라처럼 험난한 시대가 올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때를 준비하길 바란다. 예수님이 곧 이 땅에 오실 것이다.

Q. 코로나19 시대에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코로나19 시대에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며 이야기 나누는 것이 쉽지 않다. 요즘은 옆집에 복음을 증거하기도 어려운 것 같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가정 사역이다. 부모님들이 자기 자녀들에게 신앙을 잘 가르쳐 전수하고 믿음의 가정을 이어오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의 할머니는 충청남도 아산군에서 외국 선교사님의 복음을 받아들였고 할머니를 통해 믿음의 가정이 유지되었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기도 덕분에 나는 많은 복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 또한 믿음의 가정을 꾸렸고 내 자녀들도 잘 이행하고 있다. 다른 어떤 유산보다 복음의 유산보다 귀한 것은 없다. 나는 어렸을 적 아버지가 부르시던 찬송가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아버지의 찬송가는 나의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됐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찬송가를 많이 들려줘서 자연스럽게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라. 앞서 언급했지만 지금은 마지막 시대이다. 어두운 세상이 닥쳐 올 것이고 예수님이 오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전도 사역에 포기하지 말고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길 바란다.

임창만 선교사
임창만 선교사

Q. 독자에게 권면과 도전의 한마디를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받은 삶은 남들보다 성공하고 부자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을 만나 그분의 사랑 안에 함께하는 삶이 바로 복받은 삶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드라마 속에 살아간다. 무엇이 진정한 복인지 고민해 보길 바란다.

저작권자 © 투데이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