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체험과 기적으로 나타나신 하나님
'선한 농부 마을'운영하며 마을과 함께 성장한 후영교회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서 사업을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 되는 게 중요"

1992년 8월, 김경준 목사가 후영교회에 처음 부임했을 때 성도는 단 3명에 불과했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후영리에는 20여 가구, 주민 50여 명 밖에 살고 있지 않은 시골 마을이 있다. 김경준 목사가 후영교회에 부임한 뒤 마을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인터넷으로 판매하며 소득을 늘리고 교회도 함께 부흥해 온 후영교회. 마을 주민을 성도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뿌린 기도와 헌신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후영교회의 든든한 담임목사이자 선한 이웃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김경준 목사를 만나 지역사회와 상생하며 복음을 전하는 방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후영교회 김경준 목사
후영교회 김경준 목사

ㅣ삶의 시선

고등학교 1학년 때 금식기도 집회에서 만난 하나님
방언과 성령체험, 신비한 경험을 받은 첫 번째 은혜
어머니의 기도로 어린 시절 부터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길

Q1. 하나님과의 첫사랑 이야기가 궁금하다.

모태신앙으로 자연스럽게 교회에 다닐 수 있었다. 고1 겨울방학 때 강원도 원주에 있는 한 기도원에서 금식기도 집회에 참석했을 때 주님을 만났다. 금식기도 집회 마지막 날 밤에 집회를 끝내고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 약 5~10분 기도했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제 어깨를 툭툭 치면서 ‘그만 절제해라, 새벽예배 시간이다’라고 해서 깨어 보니 아침 6시가 거의 다 되었었다. 세수하러 밖에 나왔는데 온 세상에 흰 눈이 덮였는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온 세상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 기운 같은 것을 듣고 느꼈다. 난생처음이었다. 분명히 내가 어제까지 살던 세상이었는데 지금까지 살던 세상과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 방언 받고 성령을 체험하고 참 신비한 경험도 함께하게 된 첫 번째 은혜였다.

기도원에 갔다가 오는 길에 원주부터 청주까지 직행버스를 타고 와야 한나절에 올 수 있는데 돈이 조금밖에 없어서 완행버스를 타고 말았다. 버스가 이동하니까 산 정상에 서 있는 나무들 사이로 지는 해가 걸려서 옆으로 지나가는데 빛이 반짝거리는 게 너무 아름다워서 마음속으로 찬양하며 감사하는데 불현듯 누군가가 알려주었는지 그냥 알게 되어서 옆에 동생에게 말했다. “아빠가 오늘 2시에 시내버스에 취직되셨대.” “그걸 어떻게 알아?”“응 주님이 알려 주셨어.” 그러니까 동생이 그냥 웃더라.

그때는 1970년대라서 핸드폰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확인할 수도 없고 동생이 믿어주지도 않으니까 참 답답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집에 도착해서 저녁을 내오신 어머니가 “이제 너희 아빠 취직되셨어. 시내버스에 취직되셨어”라고 하셨다. 온 세상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아침에 보고 점심때 알려주셔서 저녁에 확인하는 정말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체험을 한 것이다.

그러자 기도할 때 보았던 환상까지 궁금해졌다. 주일 날 목사님을 만나서 여쭈었다. “목사님, 제가 기도하다가 환상처럼 보았는데요 작은 산 중턱에 아카시아, 밤나무, 미루나무 소나무가 빙 둘러선 중간에 교회가 있었어요. 숲이 우거졌는데 이런 산에 왜 교회를 세웠을까 하고 자세히 보니까 교회 앞에 선 미루나무가 얼마나 아름드리로 큰지 제일 높은데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까지 봤어요.” 그랬더니 목사님이 웃으면서 “성 집사님이(어머니) 너 목사 되라고 서원했다니까 너 나중에 목회하면 나무가 많은 것처럼 그렇게 성도가 많을 거란 뜻인가 보다”라고 하셨다. 내가 태중에 있을 때부터 어머님이 아들이 태어나면 목사로 서원하시고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이 준비하시는 길을 나도 모르게 걸어온 것 같다.

김경준 목사가 목회 초기 성도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김경준 목사가 목회 초기 성도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Q2.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지금까지의 목회의 여정에 대해

1992년에 첫 목회지이면서 지금까지 목회하고 있는 후영교회에 부임을 했다. 처음 온 곳은 교회가 오랫동안 비어 있어서 유리창은 다 깨지고 천정은 비에 젖어서 내려앉았고 장판도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흉가 같은 모습이었다. 우물이 없어서 물을 이집 저집 돌아가면서 부탁해 길어다가 사용했는데 꼬박 9년 동안 그렇게 우물이 없이 지냈다. 나중에 지하수를 파고 수도시설을 주방까지 끌어온 날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우선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불러 모았다. 이전 목회자가 있을 때 후영교회를 다녔었다는 아이들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교회에 모두 잘 나왔다. 하지만 몇몇은 아이 부모님들이 교회에 못 나가게 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등학교 교감 선생님을 찾아갔다. 그 당시에는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드물었는데 방과 후에 아이들에게 무료로 컴퓨터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했다. 그 해에 4, 5, 6학년 학생들이 전부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듬해에는 3학년까지 배우게 되었다. 컴퓨터를 배우는 아이들이 교회에 나왔고 교회 가는 것을 반대하던 부모들도 컴퓨터 교육 덕분에 반대하지 못했다. 그 교감 선생님은 방과 후에 컴퓨터 교육하는 것을 교육청에 연구과제로 올려서 그 후에 전국적으로 모든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이 공식화되었다며 도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아이들이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교회는 활력을 찾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른들은 교회와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1995년에 집마다 돌아보는 중에 마른 고추를 열 근에 4만5천 원에 판매하는 것을 보았다. 그때 나는 도시에서 고추 열 근이면 8만 원을 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마을 주민들의 고추를 직거래로 도시 큰 교회들과 자매결연을 하여서 팔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첫해와 두 번째 해에는 성과가 매우 좋았다. 그 소식을 듣고 한국농선회(가나안 농군학교)와 여의도 순복음 교회 농어촌 선교회가 도와주면서 삼 년째는 괴산군이 들썩거릴 정도의 성과를 올렸다. 어른들도 고추를 더 좋은 가격에 팔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는 분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교회는 그들을 중심으로 부농회를 조직해서 좀 더 체계적으로 사역을 하게 되었다.

ㅣ사역의 시선

1997년 '선한 농부 마을' 홈페이지 운영
지역 주민들의 농산물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할 수 있도록 도와
교회가 만드는 문화마을, 은퇴자와 연로자 공동생활 교회마을 꿈꾼다

야외예배에서 다음세대와 즐거운 놀이 중인 후영교회 성도들
야외예배에서 다음세대와 즐거운 놀이 중인 후영교회 성도들

Q3. ‘선한 농부 마을’사역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모교에서 중학교 때부터 지도교사로 가르치던 청년들이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매년 겨울방학 때마다 들어와서 2~3일에 걸쳐 연탄을 교회의 연탄창고까지 들여놔 주는 도움을 주었다. 94년에 연탄을 들여놓은 저녁에 청년들이 하는 말이“앞으로는 인터넷이 공급되고 그러면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가상공간에서 물품을 사고팔 수 있다고 하더라”는 말을 했다. 목회도 바쁜데 고추를 팔기 위해 직접 도회지로 나가는 일이 매우 힘겨웠던 때라 그 말이 솔깃했다. 그래서 방법을 찾아보고 몇 가지 책을 사서 배웠는데 곧바로 우체국에서 제공한 하이텔이라는 인터넷이 등장하고 96년부터는 네띠앙 같은 그림 방식의 인터넷이 위성을 통해서 시골에도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지식재산권에 대한 의식도 희박했던 때라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무료로 돌아다녔는데 그중에 나에게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쇼핑카트 프로그램을 다운받아서 조잡하지만,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나중에 농림부에서 이야기하기를 우리 홈페이지가 전국의 중소기업 홈페이지 중에 16번째로 만들어진 홈페이지라고 했다.

선한농부마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부농회, 선교단체 등등의 모든 구제, 봉사와 여타의 사업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복음전파의 도구라는 점이다. 전도에 도움이 되고 교회의 부흥을 위해 필요하니까 하는 것이다. 오직 예수, 오직 복음이 목회의 중심이다.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과 영생을 주실 것을 우리는 성경 그대로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구주되심을 믿고 전하는 사람들입니다”가 후영교회의 가치다. 그리고 사랑이 가득해지는 교회, 행복이 가득해지는 가정을 통해 많은 사람을 전인 구원하기를 목표하고 교회적인 사역이 모든 재직과 성도들이 결집하여 있다.

후영교회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섬김사역 뿐만 아니라 필리핀 해외 선교사를 초청하는 등 선교사역에 힘쓰고 있다.
후영교회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섬김사역 뿐만 아니라 필리핀 해외 선교사를 초청하는 등 선교사역에 힘쓰고 있다.

Q4. 사역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1998년쯤부터는 여기 저기 도회지의 큰 교회에서 초빙이 들어왔다. 장로님, 안수집사님들이 직접 찾아와서 자기들의 교회로 와 주십사 하셨다. 한 번은 정말 개인적으로 큰 욕심이 나는 교회에서 초빙한다고 찾아오셨다. 바로 가겠다고 대답을 하고 싶었을 만큼 마음에 들었지만 그래도 일주일만 기도해 볼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교회 뒷산에 올라가서 매일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주님께 여쭈었다. 마지막 날이 되었는데도 하나님은 응답이 없으셨다. 약속했던 마지막 날에 장로님들과 안수집사님 몇 분이 교회에 오셨는데 나는 아직 응답받지 못해서 산에 그냥 있었다. 아래에서 집사람이 손님들이 오셨다고 큰 소리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 응답이 없다면 가도 된다는 뜻이겠구나 생각하고 급하게 뛰어 내려왔다. 뒷산은 작은 동산이라 오르는데도 10여 분 내려오는데도 5분이면 충분했다.

이제 가겠다고 마음먹고 뛰어 내려오다가 교회 바로 뒤에 있는 묵은 밭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여름 장마에 골이 파인 곳을 풀이 덮고 있어서 보지 못하고 헛디뎌서 접질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신음도 내지 못하고 식은땀만 흘리고 있는데 가을 찬바람이 정신을 퍼뜩 들게 했다. 넘어져서 하늘을 보는데 바로 교회 앞에 있는 커다란 미루나무가 보였다. 그리고 점점 더 미루나무가 자세히 보이더니 나뭇잎이 잔바람에 서서히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 모습을 언제 보았던가 하면 고1 겨울 방학 때 기도원에서 마지막 날 본 환상 중에 그 이파리의 흔들리는 모습을 똑같이 보았다. 아파서 울었던 게 아니라 서러워서 울었다. 큰 교회로 가기로 하고 가겠다고 대답하기 위해 뛰어 내려오는 중이었는데 그 이파리의 흔들림은 아직 이 교회에 있으라는 싸인으로 보였다. 이제 고생 끝나는구나 하고 들떠 있는 설렘이 무너지면서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절뚝거리며 내려와서 커피 한 잔 대접해 드리면서“갈 수 없어요”라고 말하기까지 정말 힘들었다. 그 후로도 며칠을 후회하고 ‘갈걸, 간다고 그냥 해 버릴걸…'하고 얼마나 허전해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곳에서 남겨진 사역이 있어서 그렇게 하신 것 같아 그저 감사하다.

후영교회 35주년 임직식에서 5명의 장로가 임직했다.
후영교회 35주년 임직식에서 5명의 장로가 임직했다.

Q5. 앞으로 어떤 사역을 꿈꾸고 있는지?

인구감소는 시골에도 영향이 많다. 귀농, 귀촌하신다지만 여전히 인구는 감소하고 있다. 교회가 생존하고 유지되려면 반드시 마을이 있어야 하고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가 마을을 만들자, 교회가 마을이 되자]는 생각을 하고 약 10년 전부터 교회가 주축이 되어 문화마을 형태의 은퇴자, 연로자 공동생활 마을교회를 꿈꾸고 있다. 아직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은 없지만 일정 수준의 사람들이 공동생활을 하게 되면 그 마을 안에 의사가 상주하는 병원과 교회에서 제공하는 공동의 문화공간을 설치하는 것도 가능하고 또 공동 쇼핑, 공동 여행이 교회 차량 운행으로 제공된다면 연로하신 분들이 귀촌했다가 다시 병원이 가까운 도시로 되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교회마을이 될 것을 꿈꾸고 있다.

ㅣ생각의 시선

교회가 귀촌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는 교회마을
신앙과 의료, 노인복지를 위한 생활공간을 제공하고 싶다
구제와 봉사로 힘을 모아 신앙생활을 회복해야 할 때

2021년 정기총회를 통해 괴산군기독교연합회 회장으로 선출된 김경준 목사
2021년 정기총회를 통해 괴산군기독교연합회 회장으로 선출된 김경준 목사

Q6. 최근 작은 시골 마을에서 지역과 상생하는 사역을 펼치는 교회를 두고 ‘마을교회’라는 이름을 붙인다. 교회가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며 올바른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 역량이 미치지 못해서 계획하고 기도만 하고 있지만 교회가 마을이 된다면 마을도 없어지지 않고 교회도 생존과 복음의 사명을 다하는 교회 마을이 되리라 생각한다. 후영교회가 성도들이 귀촌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고 갖추어 주고 개별적인 주거생활이 가능하면서도 공동의 신앙과 의료 노인복지를 위한 생활공간을 갖추어 주고 싶다. 교회가 마을을 만들어간다면 인구감소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양로원이나 노인시설의 삭막한 생활을 하지 않고 복되고 평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공동체가 될 것이다. 이것이 후영교회가 꿈꾸고 있는 교회 마을의 모습이다.

Q7. 요즘 목사님께서 집중하시는, 사역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생각은?

연합과 회복이다. 코로나로 인해 16%의 교회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교회 간의 연합이 엉망이 되었고 교회 내에서도 남선교회, 여선교회 등등의 모든 단체의 회원 간의 연합이 와해한 지경이다. 교제가 없고 교회 안과 밖에서 할 일들이 없어지고 나니까 뿔뿔이 흩어진 형국이다. 연합과 회복을 위해 다시 모이기를 힘쓰고 교육과 헌신, 그리고 밖으로는 구제와 봉사를 함으로써 힘을 모아 신앙생활을 회복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밖으로는 괴산 기독교 연합회의 활성과 교회 안으로는 각 단체와 조직들을 북돋는 사역을 하고자 한다.

김경준 목사는 교회가 교회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김경준 목사는 교회가 교회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ㅣ세상의 시선

교회는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수호하는 믿음의 공동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서 사업을 하는 것보다 교회가 교회 되는 게 중요

주님은 기적이나 이적, 하늘에서 불을 내리지 않아도 주님

Q8. 세상 속에서 후영교회는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

교회가 교회의 참 역할을 하는 데는 엄청난 일들이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수호하고 믿음의 공동체를 지키는 사역을 위하여 존재한다. 시골교회로서 이 지역을 복음화하고 마을을 지키는 교회라면 충분히 사명을 잘 감당한 교회라고 생각한다.

Q9. 투데이N 독자들에게 권면과 도전의 말씀 부탁드린다.

누가복음11장 29절에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신다.

교회는 복음이면 충분하다. 예수님이면 충분한 것이다. 그 외에 다른 것들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이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도 후영교회처럼 이런 일들을 해야 하는데, 교회가 복지도 하고 사회참여도 하고 이것저것 해야 교회가 부흥되는데’ 그러나 그렇지 않다. 카페를 하고 사회사업을 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서 사업을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 되는 게 중요하다. 그 외의 다른 것들은 교회와 복음을 위한 지엽적 도구일 뿐이다. 몇몇 분들은 복음의 중심을 잃고 교회가 하는 외적인 사업들에만 큰 비중을 두시는 분들이 계십니다만 주님이 많은 기적이나 이적, 하늘에서 불이 내리게 하지 않아도 주님은 주님이다.

교회는 순수 복음, 오직 예수 복음으로 구원 사역과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전도 사업이면 충분하다. 그러므로 남의 교회에서 무얼 하나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교회가 교회 되고 본질인 전도와 구원에 집중함으로 이 시대에 크게 쓰임 받는 모든 교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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