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에 설립된 아주 특별한 ‘천천히교회’
화려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인격을 닮은 교회가 되길 소망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천천히, 바르게 걸어 나가길 원해   

지난 10월 17일, 서귀포에 아주 특별한 교회가 설립감사예배를 드렸다. 바로 ‘천천히교회(기성)’이다. 이날 예배에는 박덕희 목사의 아내 안수연 사모와 두 자녀 박나은, 조은 어린이가 특송 순서를 맡았다. 남편이자 아빠인 박덕희 목사와 함께하기 위해 가족 모두가 기쁨으로 찬양을 올려드리는 모습에서 ‘천천히교회’의 단란하지만 흔들림 없는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꾸준함과 성실함의 대명사인 거북이를 연상시키는 교회 로고처럼,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신 그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삶의 순간들을 즐거워하면서 느리지만, 자신만의 목회 사역을 펼쳐가고 있는 ‘천천히교회’ 박덕희 목사를 소개한다.

2021년 10월 17일, 제주 서귀포에서 설립감사예배를 드린 천천히교회.
2021년 10월 17일, 제주 서귀포에서 설립감사예배를 드린 천천히교회.

| 삶의 시선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걸어온 ‘평안’이라는 이름의 인생길
사랑스러운 아내와 두 번의 유산 뒤에 만난 특별한 두 딸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으로 관계 중심의 신앙생활 시작

Q. 나의 인생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 본다면?

‘온실’
정말 내 삶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아래 있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가정에 충실하시고 성실하게 일해오신 부모님, 지금까지도 형한테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많은 착한 동생. 같이 신앙생활을 한 친구들. 그리고 하나님께 헌신적인 아내와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자녀들.

감사하게도 인생을 뒤흔들만한 큰 어려움 없이 이 자리까지 왔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늘 편안함이 ‘장착’되어 있다. 나도 자신을 그렇게 느끼고, 다른 분들이 나를 봐주실 때도 그런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신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사역자로서 정말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목사로서 눈물 쏙 빼는 간증이나 흥미진진한 인생 이야기가 나에게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아주 조금은 있다.

박덕희 목사의 가족 - 사랑스러운 아내 안수연 사모와 두 자녀 박나은, 조은.  @출처=박덕희 목사
박덕희 목사의 가족 - 사랑스러운 아내 안수연 사모와 두 자녀 박나은, 조은. @출처=박덕희 목사

Q. 가족소개

아내와는 2006년 예수전도단 DTS 간사로 사역하며 만나게 되었다. 
처음 DTS에 갔을 때는 전부 형님, 누님들밖에 없어서 외로웠는데, 몇 개월 뒤 1살 어린 동생이 오게 돼서 특별히 아껴주고, 도와주면서 정이 들었다.

자녀는 초등학교 5학년, 1학년 딸 둘이 있다. 2번의 유산 뒤에 만나게 되어 특별히 더 소중한 자녀들이다. ‘하나님 제발 아들은 안 돼요! 반드시 딸이어야 합니다!’라는 간절한 기도의 응답이기도 하다. 부교역자 생활로 인한 잦은 이사에도 너무나 잘 적응해주는 고마운 친구들이다. 

Q. 가정에서 남편, 아빠로서 어떤 모습으로 지내는지? 

집에서는 ‘목사’라는 타이틀을 최대한 떼려고 애쓴다. 사역에 헌신한 것은 ‘박덕희’라는 사람이지 아내와 아이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남편으로는 여느 남편들과 마찬가지로 나 자신을 내려놓고, 아내의 말씀 잘 들으며 온전히 섬기기 위해 무척이나 애쓴다. 이제 결혼 15년이 되었는데 ‘나랑 왜 결혼했어?’라고 물어보면 ‘웃겨서’라고 대답할 정도로 개그 코드가 잘 맞는 부부다. 

자녀들에게도 다른 아빠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딸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도 열심히 노력한다. 엄마가 하지 못하게 하는 핸드폰, 게임과 유튜브 시청, 불량식품 사 먹기 등등을 몰래 허락해 주기도 한다. 내가 전자기기들을 좋아하는데, 덕분에 아이들이 최신문물들을 빠르게 접하고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아직까지는 덕분에 아빠랑 노는 게 제일 재미있다고들 한다. 

Q.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계기

모태신앙은 아니지만 내가 갓난아기 때 어머니가 할머니께 강제 전도를 당하셔서 아주 어릴 때부터 기독교 배경 안에 있었다. 주일에 교회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하나님이 진짜 있냐, 없냐를 고민해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의심스러울 때가 있었는데 ‘나는 진짜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 맞나?’였다. 누군가 와서 간증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님 만날 때 아주 극적이고 드라마틱하던데 내게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에게도 확인 도장과 같은 그런 극적인 경험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그런 사건적인 면에서 볼 때, 중학생 시절 기도 중에 너무나 큰 하나님이 사랑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 사랑이 너무 커서 ‘하나님 감사해요’ 하면서 엉엉 울었다.

그리고 정말 ‘인격적이다’라고 할 수 있는 만남은 22살 DTS훈련을 받는 기간 동안 사고와 관점의 많은 부분들이 바뀌면서라고 생각한다. 이전까지는 주입식 신앙과 일하는 사역이었다면 이때부터는 하나님과의 관계 중심의 신앙으로 형태가 바뀌었다고 생각된다. 

박덕희 목사의 부교역자 시절, 청소년들과 함께한 성지순례. @출처=박덕희 목사
박덕희 목사의 부교역자 시절, 청소년들과 함께한 성지순례. @출처=박덕희 목사

| 사역의 시선

부교역자 시절, 담임목사와 인격적인 친밀함으로 사역
바르고 꾸준히, 참 은혜를 누리게 될 ‘천천히교회’
교회가 결과에 얽매이지 않고, 본질과 역할을 다하길 소망 

Q.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

초중고 모두 교회 생활과 신앙생활이 정말 즐거웠다. 그래서 처음 진로를 고민했던 고1 때 미래를 선택했던 것이 초등학교 교사였다. 이유는 교사는 방학이 있으니까 여름, 겨울행사에 참여할 수 있겠다 싶어서였다. 

그런데 IMF가 터지고 교대의 커트라인이 저 위로 옮겨지고 나서 그다음 교회 생활 오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선택했던 게 신학대학교다. 그렇게 교회생활 열심히 한다고 학교생활은 대충하다가 남들보다 학교를 더 다니게 되어 버렸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목회자로서의 소질이 있긴 있었던 것 같다. 

그럼 부르심과 소명은 어디 있었냐고 물어본다면, 대답은 ‘늘 있었다’이다. 태몽은 할머니께서 담임목사님으로부터 어린아이를 받은 것이었고, 어릴 때부터 기도 좀 하신다는 분들이 기도해주시면 늘 목회자로 부르셨다고 했고, 알게 모르게 이루어진 어머니의 세뇌와 물밑작업이 이루어져 왔었다.

내가 하나님께 직접 묻고 확인한 것은 신학교 3학년 때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던 마음이 컸다. 열심히 기도해보고 덜컥 응답받아 버렸다. 

천천히교회는 유튜브와 홈페이지를 통한 사역도 펼쳐나가고 있다. @출처=박덕희 목사
천천히교회는 유튜브와 홈페이지를 통한 사역도 펼쳐나가고 있다. @출처=박덕희 목사

Q. 제주로 이주하게 된 계기

목사 안수를 받고 부교역자로 사역하게 된 교회가 제법 큰 사이즈의 교회였다. 당연히 사역이 많아 바쁘게 지내느라 가정을 돌볼 시간이 부족했다. 

2년쯤 지났을 때 아내의 건강에 이상이 온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그 당시에는 무척 심각하고 무섭게 받아들여졌다. 가정을 돌보기 위해 사역을 잠시 쉴 생각까지 하며 요양의 시간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아내가 예수전도단 DTS훈련을 받았던 곳이 제주였기에 이곳으로 마음이 더 쏠리게 되었다. 또 마침 감사하게도 같은 교단의 교회에서 부교역자 자리가 있어서 제주에 올 수 있었다. 

박덕희 목사의 부교역자 시절, 세미나 참가. @출처=박덕희 목사
박덕희 목사의 부교역자 시절, 세미나 참가. @출처=박덕희 목사

Q. 부교역자로 섬기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은혜가 있다면?

제가 부교역자로 섬기면서 가장 감사한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좋은 리더’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단순히 훌륭한 목사님이어서, 배울 게 많은 분이어서가 아니라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시고 친밀한 관계를 맺어주시는 분들을 겪어왔다. 정말 모든 목사님들이 그랬다. 성도로서 말고, 부교역자로서 좋은 담임목사님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로또 맞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Q. 개척교회를 결정하게 된 계기

사실 오래전부터 ‘개척’이라는 마음이 가슴 한편에 있었지만, 나 혼자라면 모를까 가족들이 있는데 내 마음대로 덜컥 결정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곱게 접어 넣었다. 그런데 잘 접어두었던 마음이 작년에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가족들 생각에 그 마음을 표현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 하루는 새벽예배를 인도하는데 빈혈이 오기 시작했다. 설교 준비를 미리 못하고 밤늦게까지 준비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잔 날이기도 했다. 갑자기 심각하게 픽 쓰러지듯이 온 빈혈이 아니었지만, 조금 있으면 그렇게 되겠다 싶어서 성도들께 양해를 구하고 오늘은 일찍 마치자고 하고 자리에 앉아 쉬었다.

그런데 이 일이 “박덕희 목사가 새벽예배 인도하다가 쓰러졌다”로 소문이 나면서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아내가 심각하게 이 일을 받아들였다. 혼자 많이 고민 했는지 나중에는 “지금은 부교역자니까 맞춰주지만, 당신의 본래 스타일이 기존 교회에 잘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고, 지금 건강도 안 좋아지는 것 같으니까 당신의 사역을 해보는 것은 어때?”라고 먼저 제안을 하는 것이다. 

나는 ‘오! 이게 하나님의 응답인가요?’ 하며 덥석 붙잡았다. 그렇게 시작할 수 있었다. 

2021년 10월 17일, 제주 서귀포에서 설립감사예배를 드린 천천히교회.  @출처=박덕희 목사
2021년 10월 17일, 제주 서귀포에서 설립감사예배를 드린 천천히교회. @출처=박덕희 목사

Q. ‘서귀포’로 개척 지역을 정한 이유가 있다면?

지금 특별히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한국 교회가 겪는 어려움, 잘못들을 보면서 무슨 특별한 사명감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다양한 모양으로 창조하셨는데, 기존교회의 모양으로 하는 사역을 할 자신이 내게 없었고, 하나님께서 나를 이런 스타일로 만드셨다면 나를 만드신 대로 가장 나답게 사역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가장 알맞게 부합되는 일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 컸다. 

지역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인천과 지금 거주하고 있는 제주를 놓고 고민했는데, 결정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인천보다 제주에 교회가 훨씬 적으니까 더 필요하겠지’라는 생각이었다. 

아내 안수연 사모와 두 자녀 박나은, 조은 어린이가 설립예배의 특송순서를 맡았다. @출처=박덕희 목사
아내 안수연 사모와 두 자녀 박나은, 조은 어린이가 설립예배의 특송순서를 맡았다. @출처=박덕희 목사

Q. ‘천천히교회’라고 이름을 어떻게 정하게 되었는지?

사람들은 이름을 듣고 두 가지 반응이 있었다. 

나를 잘 모르는 분들은 ‘왜 이름을 그렇게?’라고 물어보신다. 좀 걱정해주시는 분들은 ‘그 이름으로 괜찮겠냐?’고도 물어보신다. 나도 특이함이 좀 지나쳤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나를 잘 아는 분들은 ‘잘 어울리네!’라고 말씀해주신다. 

앞에도 언급했지만, 무엇인가 엄청난 미션을 받았거나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개척교회를 시작한 것이 아니다. 성격상 거창하고 대단한 것을 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냥 교회가 본질과 역할에 맞는 제 기능을 하는 정도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교회의 모델을 그려가면서 내 능력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는데, 그것은 ‘천천히’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생각했다. 

1. 바르게 꾸준하게
부흥, 영혼 구원, 성장, 성공도 좋지만(성공하기 싫다는 말이 아니다),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교회의 제 기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이 훨씬 크다. 바른 것을 추구하려면 더디더라도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야 하고, 하염없이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고 또 아니다 싶으면 그 자리에 멈춰있기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반짝하고 마는 것은 인정받을 수 없다. 꾸준히 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절대로 빨리할 수 없고 천천히 해야 가능하다는 생각에 ‘천천히교회’가 되었다. 

2. 은혜를 누림
교회 홈페이지에 이런 글이 있다. 
“교회 생활 말고 신앙생활을 같이 해봐요”
나도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해봐서 알지만, 마땅히 누려야 하는 누림이나 채움을 얻지 못하고 진을 다 빼고 집에 들어올 때가 많다. 열심과 수고가 너무나 귀하지만 일주일 동안의 일상에서 얻지 못한 위로와 평안과 은혜를 이곳에서는 꼭 누리게 하고 싶다. 

그래서 열심히 하려는 분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요. 천천히 합시다. 안되면 그냥 없이 합니다. 그래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제주 서귀포시에 위치한 천천히교회.
제주 서귀포시에 위치한 천천히교회.

| 생각의 시선

성도와 교회가 진짜 한 몸 이뤄, 있으나 마나 한 목사가 되길 꿈꿔
선택의 순간 가장 확실하고 단순한 기준, 하나님 말씀대로!
삶의 목표와 방향은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Q. 어떤 목회자 혹은 어떤 목자가 되고 싶은지?

아내가 똑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잠시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있으나 마나 한 목사”

아내가 어이없어하며 그게 뭐냐고 나무랐다.

나는 또 말했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니?”

목사가 교회에서 있으나 없으나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교회가 건강하게 기능한다는 것이고, 성도들이 교회의 소비자가 아니라 진짜 한 몸, 각 지체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목사의 수고와 노력은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쓰여야 한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기존교회의 목사로서 가지고 있던 권한들을 일명 평신도들에게 최대한 양도하고 싶다. 

평신도 사역에서 오로지 사역만 있고 그 사역만큼의 권한이 없다면 ‘이 교회가 내 교회다, 나는 이 몸의 지체다’라는 마음이 생길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박덕희 목사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출처=박덕희 목사
박덕희 목사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출처=박덕희 목사

Q. 선택의 순간에 결정하는 기준이 있다면?

선택의 순간이 정말 많다. 엄청난 고민과 갈등을 겪어야 하는 경우도 많고.
그럴 때 내 기준은 ‘제일 단순한 방법을 선택 한다’이다. 직진 스트레이트, 경험상 그게 제일 빠르고 확실하다. 이 단순한 방법은 대부분 정직과 진실이다.

목사답게 은혜롭게 풀어서 설명하자면. 결국 하나님 말씀이다.
사느냐 죽느냐의 선택이 진짜 살아지고 죽어지고 하는 단순한 결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대부분 잘 안다. 무슨 선택을 하든 결국 하나님과 동행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야 할 텐데.

동행과 인도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은 결국 ‘말씀대로’인 것 같다. 말씀대로 해야 “하나님, 책임지셔야죠!”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나중에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당당하게 변명할 수 있다.

Q. 가장 좋아하는 말씀 구절

다니엘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삶의 목표와 방향을 ‘무엇을 이루기’가 아닌 ‘이런 사람이 되기’로 바꿔준 말씀이다. 

| 세상의 시선

교회가 세상에게 ‘결과’보다 ‘방법과 과정’을 보여 줄 수 있어야
건강하고 아름답게 목회 사역을 마무리하길 기대해

설립예배 중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는 박덕희 목사.  @출처=박덕희 목사
설립예배 중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는 박덕희 목사. @출처=박덕희 목사

Q. 세상에서 <천천히교회>가 어떤 역할을 했으면 좋겠는지? 

‘이런 교회도 있더라’ 정도의 이야기를 들으면 충분하다 생각된다. 

- 요즘 교회들 왜 이래?

- 그래도 요즘 같은 때, ‘천천히교회’ 같은 곳이 있더라.

- 그렇게 교회하면 운영 안 될 텐데?
- 맞아. 그래도 교회니까 그렇게 해야지.

- 그렇지. 교회니까.

이 정도의 평가를 바란다. 결과나 성과를 가지고 평가를 받는 것은 이른바 세상의 방식이다(거듭 말하지만 나도 결과가 좋기를 바란다). 교회는 결과보다 방법과 과정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천천히교회의 설립을 축하하며 함께 예배드린 이들.  @출처=박덕희 목사
천천히교회의 설립을 축하하며 함께 예배드린 이들. @출처=박덕희 목사

Q. 앞으로의 꿈, 비전, 소망

일단 이제 막 개척을 했으니까 천천히교회에서 이루고 싶은 소망은 정말 건강한 공동체(소그룹)가 만들어져서 그들과 알콩달콩 지지고 볶고 하며 신앙생활 하는 것이다. 나중에 나와 그 사람들이 어디를 가든, 그때가 제일 좋았지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떻게 은퇴를 할 것인가에 대해 남들에게 자주 이야기한다. 아주 심플하다. 60세에 깔끔하게 은퇴해 목회 사역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는 것은 나도 마음 바뀌지 않고 신실하고 성실하게 사역했다는 뜻이고 함께 하고 있는 공동체가 정말 건강하게 세워져 있는 모습일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의 아쉬움도 없을 것 같다. 그러고 나서는 조금이라도 젊을 때 아내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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