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 뜨거운 성령 체험을 통해 만난 예수님
삶으로 보여주는 교회와 이웃사랑
은퇴 후에도 미자립교회 살리고자 섬김에 전력
이천 신갈감리교회 최영수 장로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의 시골 마을에 자리한 이천 신갈감리교회. 어린시절부터 교회의 중차대한 일을 맡아온 최영수 장로는 항상 교회를 먼저 생각하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왔다. 은퇴한 지금은 미자립교회와 목회자들을 섬기고 있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섬김의 삶'을 살고 있는 최영수 장로의 신앙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천 신갈감리교회에서 만난 최영수 장로
이천 신갈감리교회에서 만난 최영수 장로

| 삶의 시선

전국 기도집회를 돌아다니다 경험한 성령 체험
교회를 사랑해 성전까지 짓게 된 최영수 장로
말씀에 순종한 뒤 받은 물질의 축복

Q.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 계기는?

내가 고등학생 땐 성령 운동이 물결을 치던 시절이다. 함께 교회에 출석하던 친구들에게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으니 다 함께 성령 받는 데 중점적으로 기도하자”라고 도모했다. 그런데 친구들은 은혜를 받는 반면 나만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중단하고 오직 성령 받는 데만 목적을 두고 전국 곳곳의 집회를 찾아 다녔다. 그럼에도 도무지 나에겐 성령의 은사가 오지 않았다. 60일 정도 지난 어느 날 이천성결교회에서 집회를 하는데 교통수단이 없어서 교회 근처에서 하숙을 하며 집회에 참석했다. 새벽 일찍 강단 제일 앞쪽에 앉아서 불을 내려달라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큰 불기둥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처럼 보였다. 곧 이어 불기둥 네 개가 내 주변에 서있더니 그 불덩이가 소낙비처럼 나에게 쏟아졌다. 너무 뜨거워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애원했는데 정신을 차리자 기도시간이 다 끝나고 나 혼자 남아있었다. 그렇게 성령 체험을 한 다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환자들에게 기도하면 병이 낫고, 귀신 들린 사람들에게 기도하면 귀신이 나가는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불 세례를 받은 후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신 것이다. 그러한 불의 체험으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 은혜로 지금까지도 살아오고 있다.

고등부 시절 최영수 장로 (아래줄 왼쪽 첫번째) @출처=최영수 장로
고등부 시절 최영수 장로 (아래줄 왼쪽 첫번째) @출처=최영수 장로

Q. 가장 기억에 남는 간증이 있다면?

우리교회는 121년의 역사가 있는 교회이다. 1970년도 당시 흙 벽돌로 지어진 교회를 보며 멋있는 교회를 짓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교회에서 발언하는 시간에 앞으로 100년 동안 이어갈 수 있는 교회를 짓고 넓은 주차장도 필요하다고 건의했으나 한 사람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들어주는 건 고사하고 면박을 받기 일쑤였다. 그 당시엔 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교회 터엔 밭과 산, 주택이 몇 채 있었다. 먼저는 교회에서 허락도 나지 않았는데 집 세 채를 사서 철거를 시작했다. 하지만 돈 주고 할 순 없었다. 20대에 무슨 돈이 있겠나. 그들에겐 교회를 지을 테니 이사를 가달라고 부탁했다. 밭 주인에겐 교회를 지으려고 하니 밭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 주인은 “나는 예수를 안 믿지만 우리 애들이 앞으로 교회를 다닐 테니 교회에 밭을 팔겠다”고 했다. 그렇게 밭값을 정하고 교회를 지을 땅의 터를 다 사버렸다.

하지만 교회에선 내 일을 막기 위해 조직이 생겨났다. 교회 건축에 진전이 없었는데 하루는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펜과 연필을 준비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종이에 이름들을 쓰게 하시고 이름 옆에 금액을 쓰게 하셨다. 하나님 이게 뭡니까? 라고 물었더니 교회 건축헌금이라는 것이었다. 곧바로 이름이 적힌 한 목사님께 물었다. 목사님께서 교회 건축헌금을 한다고 하시는데 정말입니까? 물었더니 그렇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놀라웠다. 그렇게 하나, 둘 헌금이 모여 지금의 교회를 짓게 됐다.

또 기억에 남는 간증은 목사님의 사택이 필요하게 됐다. 그러나 교회 건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빚이 남았기 때문에 동의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목사님께선 교회는 의결만 해주면 본인이 짓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돈이 없으니 공사는 진행이 되질 않았다. 당시 나를 비롯해 네 사람의 장로가 있었는데 그들을 불러 우리가 보증을 담보로 해서 주택을 짓자고 말하자 모두 동의를 했다. 그렇게 인감을 받으러 돌아다녔는데 어제까지 있던 인감도장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모든 장로가 입을 맞춘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하나님 사람의 방법으로는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방법으로 하게 하십시오” 그러더니 나보고 집을 지으라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농협에 사표를 내고 젖소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빚 밖에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집을 지으라고 하시니 결국 말씀에 순종했다. 돈이 될만한 팔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에 결국 다시 한번 빚을 내서 목사님 사택을 지어 봉헌했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은 신갈감리교회의 현재 모습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은 신갈감리교회의 현재 모습

Q. 빚을 내서 사택을 지었으면 생활이 어려우셨을 텐데?

갚을 생각도 못 하고 빚은 계속 쌓여만 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농협에서 젖소 열다섯 마리, 돼지 이백 마리가 있는 농장이 매물로 나왔다. ‘그 농장이 내 농장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형편이 되지 않아 주변인들에게 농장 매물을 추천하며 중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가 그 농장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났다. 그래서 농협과 수의 계약을 맺었다. 그 당시 3천만 원이나 되는 돈이었다. 농협과 계약 후 잔금까지 60일의 기한을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60일 동안 농장에 있는 소와 돼지도 나한테 팔았는데 그 안에 소나 돼지가 죽으면 나에게 변상을 해야 된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해 계약서는 이미 썼으니 농장을 먼저 넘겨달라고 제안했다. 그렇게 계약과 동시에 농장을 넘겨 맡았다. 그렇게 받은 젖소 15마리와 돼지 200마리를 시내에 나가서 하루 동안에 다 팔았다. 그 돈을 농협에 담보로 내놓고 이번엔 등기를 넘겨달라고 제안했다. 시일 안에 돈을 갚지 못하면 등기를 도로 가져가라는 조건이었다. 그들은 손해 볼 것 없으니 나에게 등기를 건네줬다. 당시엔 땅이 있어야 미국에서 소를 수입해 올 수 있었다. 그렇게 시청에 보고를 하고 젖소 15마리를 미국에서 수입해왔다. 그렇게 시작한 농장이 매년 수십억의 매출을 내며 번창해서 풍요로운 삶을 살도록 하나님께서 크게 축복해 주셨다.

Q. 장로님께서 행복했던 때를 기억한다면?

1976년도에 장로 취임식을 했는데 그날이 내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날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 교회에 장로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장로 취임을 한다니까 외부 손님이 많이 찾아왔다. 동네 사람들도 장로가 뭐 하는 거냐고 구경도 많이 왔다. 어마어마하게 사람들이 밀려들면서 축하를 해주니 그날은 무척 감격스러운 날로 기억한다.

1976년도 장로 취임식 당시 @출처=최영수 장로
1976년도 장로 취임식 당시 @출처=최영수 장로

| 사역의 시선

설교 연구원 통해 이천 미자립교회 지원에 앞장서
이웃을 위해 살아온 농업인 인생
말의 응답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

Q. 지금 하는 사역은?

설교학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설교 연구원을 5년째 하고 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교회에서 목사가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천에서 설교 연구원을 시작했다. 강사를 모시지만 때로 직접 강의를 하기도 한다. 참석하시는 목사님들께서 단합하고 배우려는 의욕을 가지고 교회가 성장하는 걸 보면 큰 기쁨이 있다. 또한 어려운 미자립교회들을 물질적으로 도우며 교회가 회복되도록 힘을 다해 섬기고 있다.

Q. 일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농업인을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 양돈협회 회장 때는 시청과 협의해 양돈협회 건물을 짓고 정부기관도 많이 들락날락하며 농업인들을 위한 정책을 많이 요구했다. 그렇게 정부 기관, 청와대 같은 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사람들이 내가 타는 차를 좋지 않게 봤다. 그래서 차를 사주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나보다 농업인들이 생각났다. 축협에 트럭이 필요하니 8t 트럭 두 대를 사달라고 해서 트럭을 받아냈다. 환경부 장관을 만났을 땐 트럭 50대를 얻어 전국 축협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요구했다. 한 번은 환경부에 이천 환경시설 설치를 위해 300억을 요구했다. 환경부 1년 예산이 700억인데 반을 달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흥정해서 265억 원을 받아 이천에 배수 시설을 설치했다. 내가 뭐라고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볼 때 나를 위한 것이 아닌 공동체를 위해서 일할 때마다 일이 성사됨에 감사하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권세를 보게 하신 것이라고 믿는다.

Q. 교회에선 어떤 봉사를 해오셨는지?

젊을 때부터 교회 건축에 힘을 쏟다 보니 교회의 이곳저곳에 손이 안 간 곳이 없다. 교육관, 식당, 리모델링 등 앞장서서 해왔다. 그럴 때마다 다른 성도들과 어려움도 많았지만 결국엔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들을 해냈다. 또한 이 교회가 국내에만 일곱 교회에 분리 개척을 했다. 한 교회는 직접 교회학교를 창설하기도 했었다. 그 교회학교가 부흥을 이뤄 개척교회가 성장하게 된 사례도 있다. 해외에도 아프리카 토고 등 개척을 몇 개씩 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들을 해왔다고 본다.

최영수 장로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교회를 개척하며 복음 사역에 힘써왔다. (좌 이천 도리교회 성전봉헌예배 / 우 아프리카 토고 신갈교회 봉헌식) @출처=최영수 장로
최영수 장로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교회를 개척하며 복음 사역에 힘써왔다. (좌 이천 도리교회 성전봉헌예배 / 우 아프리카 토고 신갈교회 봉헌식) @출처=최영수 장로

Q. 은퇴하시고도 여러 사역을 하시고 계신데 지치지는 않으신지?

지친다는 건 없는 거 같다. 세 번이나 백수가 됐을 때도 낙심하지 않았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면 된다. 힘으로도 지치고 경제적으로도 지쳐도 굴복하지 않고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잠언 16장 1절에 보면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말씀을 암송하며 살 때 미래가 현실로 다 바뀌는 일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 생각의 시선

코로나로 무너진 예배
성령 운동 통해 회복 이뤄져야
수없이 밟혀도 일어나는 것이 그리스도인

Q. 기도제목이 있다면?

한국 교회가 지금 잠들어 있다. 교회가 잠드니까 사탄이 방학 중이다. 희한한 소리인 것 같지만 우리나라가 50년 후반부터 70년대까지 성령운동이 일어나며 급성장을 했다. 그때 사탄이 얼마나 난리를 쳤는지 모른다. 당시엔 동네 사람만 와서 기도 받은 게 아니라 서대문, 흑석동 등 이곳저곳에서 기도 받으러 오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람이 없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 청년들을 교회가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 현재 교회가 사회를 이끌고 나갈 수 있는 리더십이 있나. 이번 코로나로 교회가 직격탄을 맞아도 말하는 사람이 없다. 대한민국이 깜깜하다. 그래서 이것을 살리는 길은 목사들이 불을 받아야 된다. 목사들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의 하나님이신데 6, 70%가 미자립이다. 복주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왜 미자립으로 가야 되는가. 기도를 안 했기 때문이다. 기도하고 교회를 다시금 소생시키는 것이 내 기도 제목이다.

Q. 요즘 많이 하는 생각은?

기도 제목과 같은 맥락이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 교회도 한동안 예배 못 드렸다. 위드 코로나 이후 새벽 특별 집회를 했는데도 사람들이 안 나온다. 이제는 괜찮으니 나오라고 해도 오지 않는 것이다. 2년 동안 완전히 습성이 바뀌었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다시금 성령 운동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Q. 삶의 기준으로 삼는 인물이 있다면?

가장 작은 곳에서 목회하면서 열심히 기도하는 목사님들.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보려고 목사님들이 가장 존경스럽다. 큰일을 많이 하신 목사님들도 대단하시지만 나중에 물질 때문에 넘어지고 많은 잘못된 것들을 보고 참 안타까운 심정을 갖고 있다.

Q.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은?

요한3서 1장 2절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인간의 모든 게 영혼만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건강해지고 복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Q. 인생을 되돌아보는 책을 쓴다면 제목은?

‘잡초 인생’ 내가 파란만장한 길을 다 걸어 봤다. 잡초는 밟혀도 또 일어나고 아무리 씨를 지우려고 해도 씨가 지지 않는다. 인생에서 수없이 밟혀 보고 일어났기 때문에.

낙심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말씀에 순종할 때 현실로 바뀐다고 고백하는 최영수 장로
낙심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말씀에 순종할 때 현실로 바뀐다고 고백하는 최영수 장로

| 세상의 시선

종말의 시대에 기도를 통해 거듭나야
교회와 이웃을 위해 섬기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Q. 장로님께서 바라보는 세상은?

기후 변화로 인해서 세계가 다 몸살을 앓고 있는데 전에는 아무것도 몰랐었다. 근데 성경에는 말세라고 한 지가 오래됐다. 우리는 지금 종말의 시대를 살고 있다. 말세의 내용이 처음에는 나라가 나라를 치고 민족이 민족을 친다. 우리나라의 남북전쟁, 동독과 서독, 베트남과 월남 등 민족끼리 싸움이 시작된 지 벌써 70년이나 지나왔다. 그런데도 종말을 못 느끼고 살았는데 기후가 야기되고 있다. 더운 곳에서 눈이 오고 폭우와 지진, 기근이 계속되고 있다. 아프리카엔 오존이 뚫려 농사가 안되고 대한민국 농사도 병든 작물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사람에게만 아니라 작물에도 코로나가 온 거 같다. 지금 사람이나 동물이나 초목이나 다 죽어가고 있다. 그 종말에 사는 우리들이 이제는 기도하고 거듭나야 할 때이다.

Q. 세상에 교회가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까?

독립운동 때도 절반 이상이 기독교인들이었다. 지금 국회의원 중에도 교인이 많이 있는데 교인 냄새가 나질 않는다. 장로가 두 사람이나 대통령을 했는데 장로의 모습이 없었다. 정치인들이 흙탕물을 튀기고 세상은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개혁이 필요할 때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시대에 마지막 사명자로 나서야 한다.  

Q. 끝으로 독자들한테 권면과 도전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누구나 한 번밖에 안 사는 인생이다. 많은 사람이 어디에서 왔다 어디로 가는 줄 모른다. 요새 교인들이 잘 못하고 많은 목사도 구원론에 대해서 설교하는 목사가 별로 없다. 왜 못했나. 영적 설교를 하는 사람은 영감을 알아야 설교하지 이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목사님들이 영감이 둔해졌다. 구원론에 대해서 정확하게 가르쳐주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단에 빠지고 있다. 이단은 그 사람들 나름대로 구원론을 확실하게 가르치니까 성도들이 재산을 아끼지 않고 갖다 바치는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먼저 우리 후대에 가르쳐 줄 것은 사람은 온 데가 있고 가는 데가 있다는 천국을 확실히 가르쳐야 한다. 둘째로 이 땅에서 살 때 나를 위해서 살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 모두를 위해서 노력하면 나는 더불어서 잘 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내 위주로 생각하지 남을 잘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를 위해 더불어서 하면 나도 복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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