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9)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 즉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이 말씀 가운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평화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거나, 평화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 즉 화목하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복이 있고 이 사람은 영광스럽게도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누구나 평화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 평화를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내가 노력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화평함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희생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양보하거나 희생하지 않고 자기 생각과 자기 방식만을 고집해서는 결코 화평함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평화에 대해서 말하기는 쉬워도 그것을 이루는 사람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떤 헌법학자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진단하면서 아고라는 없고 아레나만 남아 있는 시대라고 말했습니다. 아고라는 일종의 광장 같은 곳으로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특히 아테네에서 최초의 직접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 민회가 열리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 아고라에는 연단이 있어서 아테네의 시민이라면 지위와 재산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거기서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말할 수 있었고 중요한 사안은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이 투표로 결정했습니다. 이처럼 아고라는 자유롭게 자기의 생각을 말하고 다른 사람의 주장을 들으며 그 과정에서 합의를 도출해 가는 장소였습니다.
반면에 아레나는 주로 맹수사냥을 재연하거나 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투기장이었습니다. 아레나는 우리말로 “모래”라는 뜻인데 검투사들이 싸우면서 흘리는 피를 흡수하기 좋도록 모래를 깔아놓는 데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아레나는 사람과 짐승이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목숨을 걸고 상대가 죽을 때까지 싸우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토론이나 타협 그리고 양보나 절충 같은 것은 있을 수 없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너를 죽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곳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시대가 화평을 이루기는커녕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합의해서 의견을 도출하는 아고라는 사라지고 서로 물고 뜯고 죽을 때까지 싸우는 아레나 같은 투기장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견해 차이로 인한 갈등, 빈부의 차이가 심해지는 양극화로 인한 갈등 그리고 세대간의 갈과 이전엔 잘 볼 수 없었던 젠더갈등이라는 성별에 따른 갈등도 어느 때보다도 심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누구도 양보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양보는커녕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조차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현상이 바로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24:10절과 12절을 보면 말세가 되면 “서로 미워하겠으며,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말씀고 있고, 디모데후서 3:3절을 보면 말세에는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어느 때보다도 화평케 하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주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원하시는 사람도 똑똑하고 재능있는 사람이 아니라 화평케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평화에 대해서 말하고, 평화에 대해서 생각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평화를 이루어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나 평화를 원하지만 평화를 이루는 데는 관심이 없는 이때 예수님처럼 섬기고 헌신함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평화를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원합니다.
글 | 박병권 목사 (성남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