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지역에 복음의 뿌리 내리며 125년의 역사를 간직
신앙과 삶의 일치로 지역을 섬겨온 교인들
어려움에도 놓지 않은 다음세대 교육
우여곡절 겪고 새성전 건축한 오천교회
세계선교에 앞장서며 이천지역 어머니교회 역할을 감당

서울 이남에 위치한 경기도 이천. 창립 125주년을 맞이한 오천교회는 이천 지역의 최초 예배 공동체의 정신을 이어오며 현재까지 지역 복음화의 뿌리를 내려오고 있다.

경기도 이천시에 위치한 오천교회 전경 @출처=오천교회
경기도 이천시에 위치한 오천교회 전경 @출처=오천교회

1896년 한국 땅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던 시기, 이천지역의 선교는 감리교 스웨어러 선교사(서원보)가 헌신하고 있었다. 스웨어러 선교사는 이천의 최초 교회로 불리는 덕들교회(덕평교회, 현재는 소실됨) 교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이를 통해 이천 지역 복음화에 불을 지폈다. 한편, 이천 마장면의 오천지역은 교통의 요지이자 큰 장이 열려 유동인구가 많았고 지역 일대의 가장 큰 고을이었다. 그래서 오천에 있던 교인들이 덕들교회에 출석했는데 교인 수가 많아지자 독립하여 오천교회를 창립하게 됐다.

1902년 오천교회를 건축 후 초기 오천교회를 이끌었던 지도자는 한규동, 한창섭 부자였다. 한창섭 전도사는 1대 교역자, 아버지 한규동은 4대 교역자로 활동으며, 다음 해엔 학교를 설립해 아이들에게도 복음전도의 기회로 삼으며 이천지역 선교에 앞장섰다. 구연영과 함께 의병운동을 했던 한창섭은 의병출신 사역자들이 주축이 돼 맹렬한 지역전도의 결과의 결과로 지역 부흥을 이뤘다.

오천교회 1대 교역자 한창섭 전도사 (좌), 3대 교역자 함동의 본처전도사 (우)  @출처=오천교회
오천교회 1대 교역자 한창섭 전도사 (좌), 3대 교역자 함동의 본처전도사 (우) @출처=오천교회

대부흥운동의 절정기였던 1907년. 이천지역은 일제의 침략에 맞서며 교회와 교인들이 핍박당했고 구연영 부자는 일본군에 맞서다 순교에 이르며 참혹한 일을 당했다. 이천지역은 의병운동을 하던 이들이 교회 지도자로 있다보니 민족 각성과 구국운동이 지역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제의 침략에 침체기를 맞던 오천교회는 1930년 농촌계몽운동과 야학 운영, 문맹 퇴치에 힘쓰며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 넣기 시작했다. 1950년 오천교회는 또 한번의 시련이 찾아왔다. 한국전쟁 당시 오천지역은 북한군이 주둔해 있어 미군의 집중포격을 받아 오천지역 대부분이 파괴됐으며 오천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교회가 무너졌으나 오천교회 교인들은 자발적으로 교회를 건축하며 다시한번 지역선교에 반향을 일으켰다.

오천교회 1939년 신축 예배당 @출처=오천교회
오천교회 1939년 신축 예배당 @출처=오천교회

그러나 농촌교회가 자립하기 위해선 농촌경제 활성화가 필요했다. 1961년 표낙형 목사가 부임했을 때 감리교는 농촌 소득증대를 위한 사업을 진행했다. 농촌계몽운동과 동시에 다음세대 교육도 놓치지 않았다. 전쟁 직후 교육이 열악한 농촌지역에 교회가 나서서 학교를 설립 ‘웨슬리구락부’라 명명하고 운영해 학생들을 교육했으며 오천교회도 이에 동참해 아이들 교육에도 매진했다.  

오천교회 24대 표낙형 원로목사(좌)와 오천교회 60주년 기념사진(우) @출처=오천교회
오천교회 24대 표낙형 원로목사(좌)와 오천교회 60주년 기념사진(우) @출처=오천교회

특별히 표낙형 목사는 지역사회 섬김이 선교의 지름길이라 생각해 교회가 직접 가내수공업을 경영하며 어려운 가정을 도왔고 오천교회는 지역에서 점차 부흥되어 갔다. 1970년엔 오천교회가 중심이 되어 신용협동조합 총회를 개최하며 농촌지역 시민들의 금융기관으로 자리잡아 이천시 전역으로 확대해 지역경제에 상당한 도움을 줬다. 오천교회만의 특별한 점은 교인 가정이 상을 당했을 때이다. 장례절차를 일체를 교회에서 담당. 상여도 청년회에서 직접 제작하며 유족의 아픔을 위로해온 것이다. 

교인의 장례절차를 담당하며 유족의 아픔을 위로해 온 오천교회 @출처=오천교회
교인의 장례절차를 담당하며 유족의 아픔을 위로해 온 오천교회 @출처=오천교회

오천교회 김정수 장로는 “지방교회지만 선교지향적이고 열정이 뛰어난 교인들이 모인 곳이 오천교회”라며, “열정으로 섬기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교인들이 삶으로 지역에 교회의 모습을 비췄기 때문에 오천교회가 125년 동안 왔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오천교회는 면 단위임에도 해외선교도 이뤄가고 있다. 필리핀에 두 교회를 봉헌하였고, 러시아엔 물질 후원을 하고 있다. 중국엔 현지인을 훈련시켜 지역선교를 하는 선교전략을 펼치고 있으며, 멕시코, 토고, 캄보디아, 베트남, 대만, 말레이시아 등 선교지가 해마다 확대되어 지방교회로서 묵묵히 세계선교에 힘쓰고 있다.

필리핀 웨이건교회 완공식 후 단체사진(좌), 멕시코 선교 현장 (우) @출처=오천교회
필리핀 웨이건교회 완공식 후 단체사진(좌), 멕시코 선교 현장 (우) @출처=오천교회

2006년부터 현재까지 오천교회를 섬기고 있는 이종목 목사는 균형을 중요시하며 5대 생명사역 선교(복음전도), 송영(예배), 성도의 교제, 성숙(교육, 훈련), 사역(봉사)의 과정을 통해 생명을 살리고 세우는 목회를 하고 있다.

이종목 목사는 “오천교회 이름과 같이 빛과 생명샘물이 흐르는 교회로 예수님을 드러내는 교회가 되길 바란다. 또한 지역과 다음세대를 섬기기 위해 지역의 문화플랫폼이 될 수 있도록 공간 활용을 연구 중에 있다”라며, “또한 서울과 대전 중간에 위치한 교회가 농촌과 도시를 어우르는 장이 되길 바란다”고 비전을 전했다.

5대 생명사역의 균형목회를 통해 현재 오천교회를 섬기고 있는 이종목 목사 @출처=오천교회 
5대 생명사역의 균형목회를 통해 현재 오천교회를 섬기고 있는 이종목 목사 @출처=오천교회 

또한 오천교회는 재정부족과 건축업체의 문제를 딛고 9년 9개월 만에 면적면적 7468㎡의 새 성전을 완공했다. 두 번에 걸쳐서 약 5년 간 성전 건축이 중단됐지만 이종목 목사는 “성도들이 흩어지지 않고 기도와 헌신으로 성전 건축에 함께 동참하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오천교회는 새성전을 건축 후 새로운 비전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출처=오천교회
오천교회는 새성전을 건축 후 새로운 비전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출처=오천교회

새 단장을 하며 새 시대를 향해 나아갈 준비를 마친 오천교회. 지역선교에 앞장서는 어머니교회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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