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1:8~9)

오래도록 행복한 가정을 소원하며 신앙 안에서 아름다운 삶을 이루던 부부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대학에서 종교학을 가르치는 교수였습니다. 그러나 이 부부에게는 10년 간 자녀가 없어 매일 기도하며 은혜의 때를 기다리던 중, 드디어 이들에게 자녀가 생기고 연이어 네 자녀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이 부부와 가족은 하나님의 축복과 주신 은혜에 대한 한량없는 감사로 나날을 보냈는데 다른 이들이 보아도 너무도 행복한 이 가정은 그야말로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 단란하고 행복한 가족이 모처럼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출발 전날, 그의 부인은 “여보 우리에게 이런 행복을 주신 하나님께 너무너무 감사해요”라는 대화를 나누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2살부터 8살까지 아직 어린 남매들과 자신의 어머니를 태우고 아이다호 근처 인디안 마을로 여행을 떠났던 가족은 이제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집 도착 불과 10여분을 앞두고 반대편 차선에서 한 대의 차가 쏜살같이 질주를 해오더니 이 단란하고 행복한 가족이 탄 차를 그만 정면충돌을 하고 말았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네 살짜리 딸아이를 그 자리에서 잃었습니다. 그토록 행복하고 단란했던 가족이 한 순간 비극의 희생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고 후 상대편 운전자는 그가 운전을했는지, 아니면 그 자리에서 죽은 함께 탄 그 사고운전자의 부인이 운전을 했는지 법원은 판단을 내리지 못해 결국은 가해 차량의 운전자는 무죄로 석방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내 인생에 이런 일이…”
한평생 살면서 이런 엄청난 불행을 겪은 그가 자신의 삶의 구렁텅이에서 경험한 것을 글로 써 책을 펴냈는데, 이 책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울다>라는 제목으로, “상실을 통해 우리의 영혼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라는 작은 부제목을 붙여 출간되었는데, 이 글의 저자가 바로 사고를 당한 <제럴드 싯처> 입니다.
그는 한 순간, 하루 저녁에 사랑하는 아내와 4살 난 딸,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를 한꺼번에 잃고 8살 된 딸과 두 아들(7살, 2살)과 함께 남겨지는 비극에 처해진 것입니다. 이 책에서 싯처는 자신이 당한 상실의 아픔을 3년간 어떻게 극복이 아닌, “겪어”왔는지를 진솔하게 아주 인간적으로 그러나 하나님의 시야를 놓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면서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사고 이전까지 내가 아이들에게 마음을 주었다면, 사고 이후부터 나는 아이들을 내 마음에 담아두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부모 ‘처럼 ‘살았다면, 이제 나는 온전한 부모가 되었다.” -제럴드 싯처-
우리는 고통을 당하며 비극적인 상실에서 회복하거나 잘 피해가는 방법과 요령에 관심을 갖습니다. 상처받고 상실함 이전으로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것을 흔히 ‘회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회복이 상실 이전의 삶과 감정으로 고스란히 되돌아 갈 수 있는 것일까? 상실을 경험한 후에 원래대로 ‘회복’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착각합니다. 정말, 자기 자신이 그 상실의 아픔과 고통에서 다 나았나?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여기, 이런 문제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살 소망조차 끊어질 정도로,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을 받은 것(8-9)은 결코 복음을 전하는 것에서 당하는 어려움이나 배고픔이나, 매 맞음이나, 목마름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이런 상실의 상황 속에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당하면 당할수록 고통과 아픔이 큰 것 만이 아니라, 위로와 은혜 베풀어 주심 또한 크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더 깊은 은혜는 바로, 고통받고 있는 다른 모든 사람을 위로하도록 이런 상황과 조건 속에 두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환란과 고통에 눌린 인생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압도하는 은혜와 위로 속에서 비로서 우리는 <성육신>, 곧 상실과 회복의 은총을 깨닫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을 받아들일 때, 비로서 다른 이들을 용서하는 법을 배웁니다. 상처가 깊고 클때 비로서 상처받고 아파하는 이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이들은 누가 하나님의 뜻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모른다”고 대답은 하지만 “내 삶에 하나님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계신다”라고 또한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상실과 회복 사이에서> 비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성령의 위로하심을 알고 깨닫게 됩니다. 때로, 상처를 입고 살아간다는 것, 그로 말미암아 상실감이 커질지라도, 또한 하나님의 회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고통과 상실이라는 ‘경험’은 우리가 최후로 경험하는 마지막, 곧 죽음처럼 피할 수 없는 부분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필연적으로 우리 삶을 주장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우리를 바꾸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글 ㅣ 권세광 목사 (대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