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셉의 추락 2
창39:1~39:23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창39:17~18, 개역개정)
주인이 돌아오자, 그에게 이렇게 일러바쳤다. “당신이 데려다 놓은 저 히브리 사람이, 나를 농락하려고 나에게 달려들었어요. 내가 사람 살리라고 고함을 질렀더니, 옷을 내 앞에 버려두고, 바깥으로 뛰어나갔어요.”(창39:17~18, 새번역)
요셉은 멈춰 섰지만, 그녀는 멈추지 못했습니다. 그녀 또한 자기 욕망에 갇혀 사는 사람이었고, 욕망을 이루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일에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요셉이 설득되지 않자 강제로 관계를 맺으려 옷자락을 잡게 되는데요, 요셉은 아예 옷을 벗어두고 나와 버립니다. 상대와 몸싸움조차도 하지 않으려 했던 행동이었는데, 이것이 그녀의 자존심을 더욱 상하게 했나 봅니다. 요셉의 옷을 증거 삼아 되레 그를 고발합니다. 14절과 17절에서 반복적으로 요셉을 ‘히브리 종’이라고 부르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이 종이며 애굽 사람이 아니라는 두 가지 사실을 부각합니다. 종이니 동정할 필요가 없으며 이민족이니 우리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뜻이죠. 게다가 보디발이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았기 때문에 자신이 모욕을 당했다고 몰아갑니다. 상대 자존심에 상처를 입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려는 수법이죠. 이런 상황에서 보디발에게 선택권이 많을 리 없습니다. 자기 자존심도 살리고, 가족의 명예도 잃지 않는 선택이 필요했죠.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창39:20, 개역개정)
요셉의 주인은 요셉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다. 그 곳은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곳이었다…(창39:20, 새번역)
바로의 경호대장 정도 되면 자기 아내를 겁탈하려고 했던 히브리 종에게 자비를 베풀 필요가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죽여도 누구 하나 그를 탓하지 않았겠죠. 그럼에도 보디발은 요셉을 감옥에 가두는 정도로 일을 마무리 짓습니다. 당시 감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공간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죽음에 비하면 가벼운 형벌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간수장이 그를 선대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요셉을 괴롭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오히려 요셉을 살리기 위해 감옥에 가뒀다는 추리도 가능하죠.
보디발은 자기 아내 성향과 요셉의 됨됨이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실제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겠지만 적어도 요셉이 주인의 아내를 넘볼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었고, 자기 아내 행실에도 믿음이 가지 않았겠죠. 죽이지 않고 감옥에 가둠으로써 벌하는 것과 동시에 보호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 감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지만 경호대장이라는 특수한 직책 때문에 보디발의 집에 있었습니다. 설령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제거하고 싶어도 왕의 감옥에 갇힌 죄인을 마음대로 죽일 수는 없었겠죠. 요셉이 언제 진실을 밝힐지 몰라 전전긍긍했던 그녀의 손발이 요셉의 투옥으로 꽁꽁 묶인 셈이었습니다.
요셉은 옷과 묘한 인연이 많았습니다.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옷이 중요한 역할을 했죠. 어린 시절 아버지 사랑을 한몸에 받을 때는 채색옷을 입었습니다. 이 옷은 아버지 사랑과 동시에 형제들의 질투를 불러왔으며, 자신을 드러내고 싶었던 요셉의 욕망도 함께 보여줬죠. 형들이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이 옷을 벗기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편애가 더는 요셉을 보호하지 못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주었죠. 그리고는 그 옷에 숫염소 피를 묻혀 야곱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채색옷은 이제 죽음의 결정적 증거로 작용하게 되었고 야곱에게 자신의 결정 때문에 얼마나 심각한 비극이 벌어졌는지를 알려주는 도구가 되었죠.
노예로 살아가는 일에 적응하고 주인에게 인정받아 가정 총무로도 일하게 된 요셉이 죄인이 되어 옥에 갇히게 만든 결정적 증거도 그가 입었던 옷이었습니다. 결백의 증거로 옷을 벗어 던지고 달아났지만 보디발의 아내는 그 옷을 역이용해 증거로 사용했죠. 채색옷에서 노예복으로, 노예복에서 죄수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던 요셉이 다음에는 어떤 옷을 입게 될까요? 이것이 창세기 나머지 부분의 주된 관심사가 될 겁니다.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창39:20~21, 개역개정)
…요셉이 감옥에 갇혔으나,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면서 돌보아 주시고, 그를 한결같이 사랑하셔서, 간수장의 눈에 들게 하셨다.(창39:20~21, 새번역)
감옥에 갇힌 요셉의 삶은 갇히기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셨고, 주변 사람들이 은혜를 얻어 형통하게 되었죠. 차이가 있다면 요셉이 더욱 추락했다는 사실입니다. 노예일 때는 고단하긴 해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었는데, 감옥에 갇혀 죄수가 된 지금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신세가 되었죠. 하지만 요셉은 그럴수록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더 뚜렷하게 느꼈을 겁니다. 힘들긴 해도 자기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은총을 받는 일이 반복된다면 하나님께서 요셉을 향해 ‘내가 너와 함께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다름없었으니까요. 믿음이 있다면 현실 너머를 볼 수 있게 됩니다. 지금의 고단함이 하나님 섭리 자체를 부정하는 근거가 되어서도 안 되고요. 요셉은 형통에 대한 하나님과 사람 생각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창39:23, 개역개정)
간수장은 요셉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아무것도 간섭하지 않았다. 그렇게 된 것은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며, 주님께서 요셉을 돌보셔서,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이나 다 잘 되게 해주셨기 때문이다.(창39:23, 새번역)
요셉은 추락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형들을 만나러 세겜으로 떠난 이후 매일같이 어제보다 오늘이 더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고 마침내 죄인이 되어 감옥에 갇혔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살아 있는 한 살아서 감옥을 나올 희망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요셉은 창세기에 등장한 어떤 사람들보다 강했습니다. 자기 삶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음에도 내면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죠. 비록 지금은 빛이 들어오지 않는 감옥에 갇혀있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졌습니다. 그가 끝까지 자기 마음을 지켜낸다면, 그리고 하나님 때가 이를 때까지 흔들리지 않고 바로 서 있을 수 있다면, 컴컴한 구덩이로부터 끌어 올려질 겁니다. 그리고 세상 가장 높은 곳에 올라 해와 달과 별들보다 더 밝은 빛으로 빛나며 하나님 섭리와 형통이 무엇인지를 온 세상에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