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은 결코 잊혀질 수 없는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1907년 1월 6~15일에 개최된 평양 장대현교회의 겨울남자사경회의 절정은 1월 14일과 15일에 있었던 성령의 임재였습니다

이성훈 목사 (임마누엘성결교회)The University of Manchester (성서학, Ph.D. 영국) The University of St. Andrews (성서학, M.Litt. 영국) Jerusalem UniversityCollege (M.A. 히브리어 언어학, 이스라엘)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 B.A.)두란노 Q.T. ‘생명의 삶’ 저자국민일보 ‘삶의 향기’ 컬럼니스트우리말성경, 바른성경, 레노바레 성경번역위원현(現) KOSTA 강사현(現)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겸임교수현(現) 임마누엘성결교회 담임목사
이성훈 목사 (임마누엘성결교회)The University of Manchester (성서학, Ph.D. 영국) The University of St. Andrews (성서학, M.Litt. 영국) Jerusalem UniversityCollege (M.A. 히브리어 언어학, 이스라엘)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 B.A.)두란노 Q.T. ‘생명의 삶’ 저자국민일보 ‘삶의 향기’ 컬럼니스트우리말성경, 바른성경, 레노바레 성경번역위원현(現) KOSTA 강사현(現)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겸임교수현(現) 임마누엘성결교회 담임목사

한국 기독교의 부흥운동은 이 집회에서의 열기를 기폭제 삼아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가 얼마나 강했는지 그 당시 선교사가 미국 선교부에 보낸 선교 편지에서 당시의 광경을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사람들이 죄를 깨닫고 얼마나 아우성을 치는지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몸을 비틀고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 성령의 능력으로 마음이 배인 것처럼 회중이 떼굴떼굴 구르면서 회개하는데 지옥을 보는 것 같은 고통스러움이 터져 나오는 역사가 있었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장대현 교회 성령의 대부흥의 역사는 죄에 대한 깊은 회개와 함께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날 때 조성되는 영적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심령의 가난함’과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함’입니다. 1907년 평양의 장대현 교회에서 한국교회 대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때 한반도의 상황은 그야말로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한반도 반만년 역사의 최대 암흑기였습니다. 20세기 초 한반도는 1895년에 일어난 청일전쟁과 1904년에 일어난 러일전쟁과 같은 강대국들의 침략전쟁으로 온 천지가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로 바뀌었습니다. 평양 대부흥의 역사가 있기 2년 전인 1905년에는 을사보호조약이 있었고, 1910년에는 결국 한일합방이 이루어져 힘이 없는 나라의 풍전등화같은 운명은 차마 눈뜨고 지켜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심령이 가난하게 된 이 나라 백성들은 어쩔 수 없이 열린 하늘 문을 향해 눈을 들었고 하나님은 이 백성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은혜를 부어주셔서 기독교 부흥의 역사의 도화선에 불이 붙었던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800여년 전 이스라엘에 원수같은 나라가 있었습니다. 앗수르였습니다. 니느웨성읍은 앗수르의 수도로서 3일 길을 걸어야 할 만큼 큰 성읍이었습니다. 요나 선지자는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마지 못해 겨우 하룻 길을 걸으며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오드 아르바임 욤 베니느베 네파케트)고 외쳤을 뿐입니다. 그러자 니느웨 성읍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5절). 어떻게 이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일까요? 그 당시 앗수르는 비록 강대국이었습니다만, 북방의 신흥국가로 등장하는 우라르트의 위협과 침략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더더군다나 그 당시 무서운 전염병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설상가상으로 완전 일식으로 인해 사람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들에게 불어 닥친 자연적 재난과 현상은 왕과 백성들을 큰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마치 휘어져 추수할 때가 다 된 곡식처럼 그들의 심령은 낮아질 대로 낮아져 누가 건들기만 해도 회개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심령 밭이 가난하게 된 황에서 요나 선지자가 이 성이 40일 뒤에 멸망한다고 외치자 임금부터 짐승의 새끼까지 회개하는 역사가 강하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니느웨 백성도 사방팔방 막혀 있는 암울한 역사의 상황 가운데서 오직 하늘을 바라볼 때 요나로부터 말씀을 듣고 그 즉시 금식하고 베옷을 입고 회개했던 것입니다. 간절히 사모하는 심령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한국교회의 위기를 경고합니다. 성도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으며, 목회자로 부름을 받아도 임지가 없으며 교회를 개척해도 자립이 쉽지 않으며, 신학생은 줄어들고 신학교는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위기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모함이 없다는데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라고 하는 기본이 무너져 있다는데 더 큰 위기가 있습니다. 회개운동의 첫 출발은 말씀에서 시작하였고, 말씀이 사람들에게 들려졌듯이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말씀으로 돌아가고 근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지성·감성·의지가 모두 작동하는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지성으로 작동하는 회개’란 죄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죄에 대한 자각은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비추어 내가 누구인가를 살펴야 합니다. ‘감성이 작동하는 회개’란 깨달은 죄에 대해서 아파하고 슬퍼해야 합니다. 니느웨 백성이 죽을 때 입는 베옷을 입었다는 말은 그들은 자신들의 죄에 대해서 많이 슬퍼했다는 말입니다. 가장 슬플 때 입는 옷이 베옷이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한 고통 슬픔 탄식이 내면 깊숙한 곳에서 느껴져야 합니다. 회개를 하되 슬픔이 없는 회개는 산모가 산고 없이 애기를 낳는 것과 같습니다. 지성적으로 깨달은 것을 가지고 결코 ‘회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해서 탄식하고 아파하고 울어야 합니다. 그리고 끝으로 ‘의지의 회개’를 해야 하는데 그것은 죄에 대해서 돌이키는 일입니다. 니느웨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습니다(3:10).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자각하고 슬퍼하였으며 죄에서 돌이키자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려고 작정하셨던 재앙을 거두셨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자각하고 슬퍼하고 그 길에서 돌이킨 니느웨 성읍 백성들의 회개를 인정하고 멸망시키기로 했던 뜻을 돌이켜서 용서하고 살려 주시고 회복시켜 주심으로 진정한 부흥의 역사가 니느웨에 일어난 것입니다.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으로 돌아가고, 주님과의 첫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배의 감격을 회복하며 더욱 간절히 하나님을 사모하며 기도할 때 우리는 침체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와 진정한 부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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