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과 연초 사이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독서 하면서 이런 문구를 발견하였다. ‘살아있는 것은 물결을 타고 흘러가지 않고 물결을 거슬러 올라간다네. 하늘을 나는 새들을 보게나, 바람 방향으로 가는지 역풍을 타고 가는지, 죽은 물고기는 배 내밀고 떠 밀려가지만 살아있는 물고기는 작은 송사리라도 위로 올라간다네. 잉어가 용문 협곡으로 거슬러 올라가 용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지. 그게 등용문이라고 하지.’

우리에게 2022년이라는 새해가 밝았다. 오늘의 시대가 모든 분야에서 많은 발전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왜 사회는 더 어두워져가고 사람의 이성 가지고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발전을 하고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나 세상의 일들은 살아온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범주에는 기본이 있어야 한다. 그 기본이 흔들리면 아무리 무엇을 한다고 해도 바른길로 인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 어려워가고 더 꼬여만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려울 때는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우리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살아있으려면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의 기독교가 바로 깨달아야 할 것이 바로 이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기본은 말씀이다. 시대를 분별하며 시대를 잘 살아갈 수 있는 힘은 바로 말씀이다. 지금의 시대는 매우 혼란의 시대다. 이 혼란은 이미 1970년 전의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난 일들과 거의 동일하다. 그렇다. 진정 교회가 교회 되지 못하고 성도가 성도 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말씀에서 떠났기 때문이다. 이 시대가 믿음의 우리에게 외치고 있다. 다시 복음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말씀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파되고 있는데 지금의 현실은 말씀과 동떨어진 모습만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신앙인들이 바라보고 가야 할 분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우리의 믿음의 본이시다. 예수님은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시다. 그래서 신·구약의 말씀은 다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교회도, 그리스도인들도 다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말씀에는 능력이 있다. 이 능력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이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 믿음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바른 생각과 뜻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잘 못 되었을 때는 책망을 해서 바른 길을 찾게 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이 현실화 되려연 믿음과 순종이 함께해야 한다. 그러면 능력을 체험하게 되며,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여 놀라운 능력과 변화의 역사가 개인에게, 나라와 문화에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기록한 책이 바로 성경이다.

그리고 새해를 맞이하면 또 다른 기다림의 기대를 가지게 한다. 그 기대가 만족하게 나타나든 만족하게 나타나지 않든 기대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기다린다는 것은 아름답고 슬픈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부조리이다. 희망과 절망 권태와 기대… 설레는 희망이 있는가 하면 어둡고 답답하고 환멸이 있다. 서로 모순되는 생의 기도 속에서 기다림의 꽃이 피는 것이다.

'윌리엄 그레이 목사'는 알프스의 한 빙하 동굴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동굴은 단단한 얼음을 뚫어 만든 통로를 통해서 가도록 되어 있다. 목사님께서 그 으스스한 터널을 따라서 점점 더 깊이 내려가자 가늘게 들어오던 햇빛도 차차 희미해져 갔다. 목사님께서 그 터널 끝의 좁은 방에 들어갔을 때는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깜깜했다. 그때 안내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리세요. 5분쯤 지나면 앞을 똑똑히 볼 수 있게 돌아올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가만히 선 채로 기다렸다. 과연 그 안내인의 말대로였다. 5분쯤 지나니까 눈앞이 환해진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우리의 눈이 새로운 환경에 길 드려졌기 때문이다. 우리 눈이 밝아지자 동굴 벽과 천장이 반투명의 초록색으로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신선하고 부드러운 빛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고 안내 책자를 읽을 수도 있었다.

기다림은 우리의 눈을 열어 우리 주위에 있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것들을 보게 해준다. 그러나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눈들만이 그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갑작스러운 변화 때문에 좌절하고 당황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어둡다. 하지만 그들이 벽을 더듬던 초조한 손길을 멈추고 하나님 안에서 조용히 기다릴 때 빛이 들어오고 그들은 하나님의 친절하심과 사랑을 보게 될 것이다. 기다림은 힘들고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기다리는 자는 결국 좋은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기다림은 소망이기 때문이다.

2022년 새해는 우리들을 가두었던 모든 것 그리고 눈을 바로 뜨지 못한 것들에게서 벗어나는 축복이 임하기를 기도한다. 마치 철장에 갇혔던 호랑이가 그 철장을 뚫고 나오는 것 같이 우리의 기다림이 복으로 다가오기를 기다려 본다. 새해에는 나라, 사회, 교회, 가정, 모든 기업도 모두 이런 복을 누리면서 새로운 희망의 시대를 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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