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하 목사(부천 참빛교회 원로)의 작품 '우포의 석양과 뱃사공'
김윤하 목사(부천 참빛교회 원로)의 작품 '우포의 석양과 뱃사공'

다사다난했던 2021년을 보내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습니다. 작년 한 해를 돌아볼 때 나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평탄하고, 문제가 없었습니까?

모든 사람이 평탄하고 문제가 없는 인생을 기대하지만 사실 이 땅에서 문제가 없는 곳은 단 한 곳 밖에 없습니다. 바로 공동묘지입니다. 우리가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문제는 우리 가운데 있을 겁니다. 그것이 우리의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살아온 인생의 햇수만큼 상처로 뒤덮여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이런 상처에 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상처를 축복의 발판으로 삼습니다.

창세기 24장에 있는 엘리에셀로 추정되는 아브라함의 종이 그런 사람입니다. 창세기 24장은 총 67절로 구성된 아주 긴 장입니다. 그리고 이 긴 장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나오는 인물이 엘리에셀입니다. 그의 삶을 생각해볼 때 큰 도전이 됩니다.

엘리에셀은 그의 주인인 아브라함의 명령을 받고 무려 800km나 떨어져 있는 아브라함의 고향인 메소포타미아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가 갈 때 주인인 아브라함은 그냥 보내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24장 10절의 말씀을 보면,

이에 종이 그 주인의 낙타 중 열 필을 끌고 떠났는데 곧 그의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러 (창 24:10)

라고 합니다. 낙타 열 필에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갔습니다. 아브라함이 엘리에셀을 통해 보낸 이 귀한 물건은 보통 보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이삭의 아내가 될 신부의 집에 줄 지참금으로 가장 귀하고 값비싼 것들을 엄선하여 그것도 낙타 10마리에 실어 보낸 겁니다.

그렇게 해서 나홀의 성에 도착했습니다. 그 먼 거리를 왔다면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주인인 아브라함이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면 보통의 종이라면 먼저 가장 좋은 곳으로 가서 편하게 쉬려고 했을 겁니다. 그런데 엘리에셀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 일을 이루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 겁니다. 그의 기도의 첫 시작입니다.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창 24:12)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그리고 곧 이어지는 기도를 통해 그가 구한대로 이삭의 아내가 될 리브가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하고, 곧 이어 낙타 10필에게 물을 먹이는 모습을 유심히 보며 리브가가 바로 주인인 아브라함의 며느리,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이어갈 사람인 지를 확인한 겁니다.

그후에는 리브가의 집으로 가서 리브가의 아버지와 오빠인 라반에게 하나님이 그에게 행하신 일을 자세하게 말합니다. 하루를 자고 난 뒤 그 다음날에는 지체하지 않고 리브가를 데리고 그의 주인인 아브라함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는 800km나 되는 먼 길을 왔습니다. 리브가의 어머니와 오빠는 10일 정도만 함께 있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종으로서는 이런 말을 들을 때 10일 동안 좋은 대접을 받으며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엘리에셀은 이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이런 엘리에셀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엘리에셀의 충성스러운 모습이 멋지지 않습니까? 그리고 주인이 그에게 맡긴 그 값비싼 재물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 등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모습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근원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것이 뭘까요?

사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될 뻔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겠다는 자식이 생기지 않자 아브라함은 당시 문화에서 일반적인 형태였던 종을 상속자로 삼는 길을 선택하려고 했습니다. 조금 전 살펴본 엘리에셀의 충성스러운 모습을 볼 때 충분히 가능한 생각일 겁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되기에 전혀 어색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를 허락하지 않으셨던 겁니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창 15:3-4)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될 뻔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하나님이 ‘그는 아니다’고 해서 상속자가 되지 못했던 겁니다. 상처로 친다면 얼마나 컸겠습니까? 하나님의 거부로 상속자가 되지 못한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데도 엘리에셀은 그때나 65년이 지난 이 때나 동일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로부터 거부 당하고, 거절 당하게 될 때의 아픔은 너무나 큽니다. 혹시 누군가로부터 거절당해본 적이 있습니까? 그 상처가 너무나 크다는 것을 거절 당한 사람은 알 겁니다.

저도 누군가로부터 거부당하고 그래서 좌절했던 일이 많습니다. 그 중 한 장면만 나누겠습니다. 저는 목사 고시에 낙방한 사람입니다. 당연히 합격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떨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시험관들이 저를 낮추려고 하는 하나의 퍼포먼스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담임목사님과 성도님들 보기에 너무 부끄럽고, 죄송했습니다. 한참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젊은 때의 한 과정으로 웃어넘길 수 있지만, 그러나 당시에는 내가 거절당했다는 것으로 참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에셀은 이런 정도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거절을 당한 겁니다. 이것이 그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65년을 한결같이 주인인 아브라함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하나님으로 인해 모든 것을 결정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상처를 준 사건은 무엇입니까? 누가 여러분에게 상처를 주었습니까? 혹시 하나님이 나를 거절하신 듯한 일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엘리에셀을 기억하십시오. 나의 상처에 매이지 말고, 그 상처를 오히려 축복의 도구로 삼으십시오. 바로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처에 매이지 않고 상처를 축복으로 바꾸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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