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약 3:2)

탈무드에는 혀에 관한 우화가 실려 있습니다.
어느 날 왕이 광대 두 명을 불렀습니다.
한 광대에게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을 찾아오라”라고 지시하고,
다른 광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을 가져오라”라고 명했습니다.
두 광대는 세상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몇 년 후 광대들이 왕 앞에 나타나 찾아온 것을 내놓았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제시한 것은 모두 ‘혀’였습니다.
흔히 말은 입 밖으로 나오면 허공으로 사라진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말의 진짜 생명은 그때부터 시작됩니다.
글이 종이에 쓰는 언어라면 말은 허공에 쓰는 언어입니다.
허공에 적은 말은 지울 수도, 찢을 수도 없습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자체의 생명력으로 공기를 타고 번식합니다.
말은 사람의 품격을 측정하는 잣대입니다.
품격의 품(品)은 입 구(口) 자 셋으로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입을 잘 놀리는 것이 사람의 품위를 가늠하는 척도라는 것입니다.
논어에서는 입을 다스리는 것을 군자의 최고 덕목으로 꼽았습니다.
군자의 군(君)을 보면, ‘다스릴 윤(尹)’ 아래에 ‘입 구(口)’가 있습니다.
‘입을 다스리는 것’이 군자라는 뜻입니다.
세 치 혀를 잘 간수하면 군자가 되지만, 잘못 놀리면 한순간에 소인으로 추락합니다.
수렵시대에는 화가 나면 돌을 던졌습니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몹시 화가 나면 칼을 들었습니다.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에는 총을 뽑았습니다.
현대에는 화가 나면 ‘말 폭탄’을 던집니다.
“화살은 심장을 관통하고, 매정한 말은 영혼을 관통한다.”라는 스페인 격언이 있습니다.
화살은 몸에 상처를 내지만 험한 말은 영혼에 상처를 남깁니다.
당연히 후자의 아픔이 더 크고 오래갈 수밖에 없습니다.
옛사람들이 ‘혀 아래 도끼 들었다’고 말조심을 당부한 이유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말은 덕의 차원에서 하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옳은 말도, 아무리 사실이라도 덕이 되지 않으면 하지 않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3장에서는 말에 대해서 길게 말씀합니다.
그만큼 말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살면서 가장 많이 쓰는 것이 혀입니다.
가장 많이 하는 것이 말입니다.
그래서 말의 영향력 큽니다.
여러분! 내가 쓰는 말이 곧 나입니다.
말은 내 생각, 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은 곧 나의 됨됨이를 보여줍니다.
아름다운 말로써 그리스도인의 고매한 향기를 발하기를 바랍니다.
글 | 김종민 목사(여수수정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