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창40:8, 개역개정)
…요셉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해몽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나에게 말씀하여 보시기 바랍니다.”(창40:8, 새번역)
꿈 해석이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요셉의 말에는 어딘지 모르게 자신감이 엿보입니다. 요셉이 이 상황을 기회로 여기고 있음이 확실해 보이네요. 애굽 최고 권력자의 측근이라면 요셉을 구명할 충분한 힘이 있을 테니 기대가 클 수밖에요. 두 관원으로부터 꿈 내용을 설명받은 요셉은 거침없이 해몽했습니다. 술 관원은 사흘 안으로 복직되고 떡 관원은 사흘 안으로 목숨을 잃는다는 해석이었죠. 이런 해몽을 대놓고 솔직하게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나쁜 미래가 예언된 떡 관원에게는 상당히 무례한 언사로 비칠 수 있었죠. 요셉은 꿈 해석에 있어서 예나 지금이나 직설적입니다. 아버지와 형들 앞에서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할 때도 하나부터 열까지 있는 그대로 말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받을 불이익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이런 모습이 경우 없어 보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무례해서라기보다 그만큼 다급했기 때문에 나온 행동이었습니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창40:14~15, 개역개정)
시종장께서 잘 되시는 날에, 나를 기억하여 주시고, 나를 따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로에게 나의 사정을 말씀드려서, 나도 이 감옥에서 풀려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 사는 땅에서 강제로 끌려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내가 이런 구덩이 감옥에 들어올 만한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창40:14~15, 새번역)
지금이 아니면 바로의 측근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요셉은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의 환심을 사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구명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야 했습니다. 14절과 15절에는 요셉의 간절함이 드러납니다. 두 관원이 이상한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부터 요셉은 결백을 입증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작심한 듯한 해몽에 이어 자신의 구명까지 부탁하게 되었죠. 해몽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이루어졌지만 요셉이 바라던 대로 일이 풀리지는 않았습니다. 세상사가 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네요.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창40:23, 개역개정)
그러나 술잔을 올리는 시종장은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였다. 그는 요셉을 잊고 있었다.(창40:23, 새번역)
꿈꾼 날로부터 사흘 뒤, 바로의 생일을 맞아 성대한 잔치가 베풀어지고 관원들이 호출되었습니다. 감옥에 갇혔던 두 관원도 바로 곁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해몽 그대로 떡 관원은 처형되고 술 관원은 복직되었죠. 술 관원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요셉이 꿈을 해석해 주긴 했지만, 해몽이 자신을 살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해몽 때문이 아니라 바로가 은혜를 베푼 까닭이었고 근본적으로는 자신에게 잘못이 없었기 때문이었죠. 그러니 복직 후 요셉의 존재를 잊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애초에 떡 관원의 삶에 요셉이라는 젊은이를 위한 자리는 없었으니까요.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요셉을 구명해 줄 진짜 은인이 등장하게 됩니다.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창41:8, 개역개정)
아침에 그는 마음이 뒤숭숭하여, 사람을 보내어서 이집트의 마술사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들이고, 그가 꾼 꿈 이야기를 그들에게 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그 꿈을 해몽하여 주는 사람이 없었다.(창41:8, 새번역)
이번에는 바로가 꿈을 꾸고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해 고민에 빠졌습니다. 왕이고 신하고 꿈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당시 애굽 사람들에게 꿈을 통한 계시가 꽤 중요했던 모양입니다. 마침 그 자리에 요셉에게 도움을 받았던 술 관원이 있었죠. 술 관원 덕택에 요셉이 바로의 부름을 받았음을 생각하면, 술 관원이 그간 요셉을 잊고 있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술 관원이 출소하자마자 요셉을 구명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죄인의 멍에는 벗었을지 몰라도 여전히 노예 생활을 해야하고, 어쩌면 술 관원의 노예가 되어 평생을 살아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더 오랜 시간을 인내함으로써 바로의 꿈을 해몽할 수 있게 되었고 기적 같은 인생역전도 가능하게 되었죠. 하나님은 요셉 인생을 위한 가장 좋은 계획과 시기를 이미 예비하고 계셨습니다. 술 관원이 요셉을 잊었던 일도 이를 위한 섭리의 일부였고요.
우수영목사님의 깊은 묵상의 글과 아름다운 사진 감사합니다.
요셉을 다시 보게 되네요.
다시 볼 수 있음에 감사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