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뭉크가 그린 20세기의 십자가
  • 십자가 아래 있지만 십자가에 무관심한 현대인을 표현
에드바르다 뭉크, <골고다> , 1900년
에드바르다 뭉크, <골고다> , 1900년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죽음에 매달린 이가 있습니다. 피흘림보다 더 고통스러운 무관심 한가운데 세워진 십자가. 뭉크가 그린 십자가에는 슬픔의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군중들은 십자가를 등지고 서 있을 뿐입니다. 십자가 아래에 모인 이들은 뭉크의 마음을 지배했던 인물들 입니다. 뭉크와 불륜의 관계를 맺은 여인의 남편. (십자가 아래 노란색 수염의 남자) 그를 바라보는 우울한 옆 모습의 뭉크 자신.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린, 그를 키워준 이모. 뭉크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스승까지. 이들은 십자가도, 예수님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골고다> 작품 일부
<골고다> 작품 일부

"군중 각자는 예수에게 관심이 없다. 모두 자신만의
고통에 몰입되어 있을 뿐이다....
내 고통을 누가 구원해 준단 말인가.
위안도 구원의 희망도 귀찮을 뿐이다."

_김현화  <성서 미술을 만나다> 중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의 얼굴에는 고통보다 어리둥절한 표정이 그려져있습니다. 예수님이 흘린 핏방울조차 땅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그의 피는 그저 하늘을 붉게 물들일 뿐입니다. 뭉크는 20세기의 첫 작품으로 <골고다>를 그렸다고 합니다. 뭉크가 바라본 20세기는 구원과 위안이 사라진  그저 개인의 불안과 고독, 무관심만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20세기를 그림에 담은 뭉크는 왜 십자가 아래 모여든 군중을 그렸던 걸까요? 이들은 자극적인 이벤트를 보러 나온 구경꾼들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불안과 고독을 해결해 줄 구원이 혹시 여기있나 하는 마음이었을까요? 사순절, 뭉크의 십자가를 보며 생각해 봅니다. 골고다 언덕에 모였지만 여전히 각자의 불안과 고통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아닌지. 십자가 아래 있지만 십자가를 등지고 서 있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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