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노의 손으로 그리스도의 머리카락을 움겨쥔 남자
  • 안니발레 카라치의 <그리스도를 조롱함>
  • 무능력해보이는 사랑으로 분노를 끌어안은
안니발레 카라치, <그리스도를 조롱함>, 1596
안니발레 카라치, <그리스도를 조롱함>, 1596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마음이 엉망진창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되면 누군가를 만나는 일도, 누군가의 눈을 응시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불편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두 인물이 서 있습니다. 서로의 눈을 마주하고 있지만 한 사람의 주먹은 꽉 쥐어져 있습니다.

안니발레 카라치의 <그리스도를 조롱함>입니다.  카라치는 클로우즈업 화면처럼 그 현장으로 우리를 쑥 당깁니다. 그리스도의 눈빛은 고통의 한계를 넘어선 듯 곧 꺼질듯한데. 겨우 버티는 그의 머리카락을 한 남자가 움켜쥐고 있습니다.

가시에 찍힌 이마에선 피가 흐르지만, 움켜 쥔 주먹은 상관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남자가 머리카락을 잡은 손을 흔들어도, 그래서 가시가 더 깊이 파고들어도, 손가락으로 모욕하며 그에게 침을 뱉어도 그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어찌할 수 없기로 선택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보호할 힘과,  자신을 변호할 말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무능력함으로 이 시간을 끌어안기로 결정했습니다.

안니발레 카라치는 대조적인 두 인물을 통해 십자가를 드러냈습니다. 캔버스에 십자가를 그리지 않고서도 십자가의 의미를 떠올리게 합니다. 무능력해 보이나 가장 강력한 사랑을.

"모욕하는 인간의 손과 무능력하게 묶인 그리스도의 손

분노하는 인간의 얼굴과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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