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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102

<창세기 1: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럽을 강타하던 때에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가 밀라노의 두오모 대성당 안과 밖에서 공연을 했다. 공연 제목은 ‘희망을 위한 음악(Music For Hope)’.

나도 이 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보았는데, 보첼리의 콘서트는 전 세계 340만 명 이상이 동시 시청했다. 보첼리는 이 날 공연에서 ‘생명의 양식’, ‘어메이징 그레이스‘ 등을 25분간 불렀다. 그리고 공연을 통한 성금도 많이 모아져서 코로나19 사태 최전선에 선 의료진을 돕는 데 사용되었다. 그런데 나는 그의 노래보다도 중간 중간 흑백화면으로 나오는 유럽 도시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대부분 내가 가 본 도시들이다. 밀라노, 베르가모, 베니스 그리고 파리와 런던 등등. 
국제 도시답게 전 세계 사람들이 다양한 언어를 쓰며 분주히 오가는 활기찬 도시들. 군함처럼 커다란 관광버스들이 쉴 틈 없이 오고가고, 길바닥은 무심히 버리는 각종 쓰레기들이 밟히는 도시, 박물관, 전시장, 왕궁과 성당들마다 줄지어 선 사람들. 거리와 뒷골목과 커피집 앞마다 현란한 솜씨를 자랑하는 버스킹 무리들. 유럽 특유의 노상 카페... 그리고 그 카페의 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기분은 경험한 사람들은 어떠한지 알 것이다. 획일화된 한국 사회에서의 사람들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자유분방하고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걸어가는 사람들. 그래서 사람구경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다고들 하는지!

그런데 보첼리의 공연에 등장하는 유럽의 대도시들 속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바이러스 공격이 가장 심할 때라 출입금지령이 내려진 탓인 듯 했다. 과장되게 말해 24시간 쉬지 않고 사랑의 세레나데가 불리던 이태리의 베니스에는 멈춰선 배들만이 바다 위에서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전 세계 예술가들과 연인들의 성지 같은 밀라노의 대성당 주변은 집시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뿐인가. 세상에 저들만 예술과 지성을 사랑하는 것처럼 콧대 높은 파리의 에펠탑, 개선문, 센 강, 그 어디에도 몇 대의 자동차 외에는 사람이 다니지 않았다.

예배가 아닌 왕족의 결혼식장으로 더 알려진 웨스트민스터대성당 앞도, 런던아이 대관람차 주변과 트라팔가광장에도 사람들은 다니지 않았다. 보첼리의 공연이 끝나갈 무렵 마지막으로 등장한 도시는 뉴욕이었다. 맘몬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돈, 주식, 경제, 물질, 성공...  이 모든 인간의 욕망 덩어리의 용광로 같은 뉴욕 거리에도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단지 화면 속의 흑백 장면인데도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러한 모습은 영화가 아니다. 조작된 영상도 아니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사람을 찾을 수 없다는 것. 

그것은 내 방 안에서 컴퓨터 앞에 안전하게 앉아 있는데도 충격과 두려움을 쏟아주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사람에게 명령하시고, 축복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즉, 번성하여 많아지고 땅을 채워서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세상을 마음껏 누리고 잘 관리하라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 모든 주권을 부여받은 사람이 사라졌다니!

모두들 선악과 먹은 아담 부부처럼 두려워서 자신들만의 나무 사이에 숨었는가?

사람들은 더 살려고 숨는다. 살아가려고 숨는다. 살 날을 기다리며 숨는다. 그동안 수 없이 선악과를 먹어도 징계치 않고, 죽이시지도 않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기를 두려워한다. 아니 아예 하나님에 대해서도, 죄에 대해서도 모른다. 그저 살려고 숨는다. 그러나 세상이 뭐라 하던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우리들에게 지금의 상황은 100% 우리의 죄 탓이다. 

하나님은 이번에도 한량없는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네가 어디 있느냐?”

우리는 아담처럼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 9~10)라고 대답할지언정 하나님 앞으로 나가자. 죄와 추위와 수치로 벌벌 떨더라도 나가자. 그 앞에 나가는 것만이 다시 생육하고, 번성할 회복의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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