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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명월리 산골에 살 때였으니 약 35년 전 이야기입니다. 수요일이었는지 주일이었는지는 몰라도 어느 날 저녁 아버지께서 교회에 다녀오시더니 어떤 노래 한 곡을 계속해서 부르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저의 마음에 그 장면과 그 찬송이 각인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본 아버지의 가장 열정적이고 행복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더불어 그 곡이 음악적으로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에 그 노래를 매개 삼아 그 기억들이 흡착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기억은 완전히 까맣게 잊혀진 채로 근 20년 동안 세월의 먼지 속에 파묻혀 있다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피아노 앞에 앉아 새 찬송가를 처음부터 한 곡씩 쳐 보던 어느 날, 갑자기 생생한 기억으로 살아났습니다.

 

찬송가 316장을 펴고 첫 화음을 누르는 순간 지금의 제 나이 보다 젊으셨던 아버지의 목소리, 열정적인 몸짓, 심지어 무대가 되어 주었던 명월리 옛날 집의 공간마저 갑자기 살아났습니다. 아버지께서 그 날 부르셨던 그 노래가 새 찬송가에 실린 것이었습니다.

주여, 나의 생명 나의 정성 드립니다이 작은 나의 생명 나의 정성 다해주님만을 위하여서 살기 원하오니주여 잡아주소서 나를 잡으소서주님만을 위하여 살게 하소서아! 불 같은 성령으로 충만케 하옵소서환난이 와도 핍박이 와도주님만 위해 살게 하소서

이 찬송가는 가히 한국교회를 대표할 만 한 명곡입니다. 한국교회 신앙의 특징은 정성과 헌신 그리고 뜨거운 기도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찬송가에는 그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1절은 환난과 핍박이 와도 생명과 정성 다 바쳐 주님만 위해 살겠노라는 다짐이며, 2절과 3절은 가진 모든 것 뿐만 아니라 몸 바쳐서 주님 사랑에 보답하며 주님만 위해 살겠노라는 다짐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사도행전 2장에서와 같이 불같은 성령의 충만을 입었을 때 가능한 일들입니다.

이 찬송가는 1968년 김보훈 선생님이 작사 작곡을 했습니다. 김보훈 선생님은 ‘엘리야의 하나님’이라는 드라마틱한 합창곡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노래의 우리말을 살리고 우리의 영성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멜로디 또한 이미 식상해져 버린 6/8박자의 국악 선율이 아니라 정성어리고 성령으로 뜨겁고 헌신적인 한국교회만의 영성이 살아 있는 지극히 한국적인 좋은 선율입니다. 좋은 찬송가란 찬송시를 음악적으로 표현함에 있어서 막힘이 없어야하는데 이 찬송가를 부르노라면 마치 음악에 기도를 얹어 노래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가사와 선율과 리듬이 잘 들어맞습니다.

특히 각 절의 처음 시작 부분에 나오는 ‘주여’는 매우 독특한 표현입니다. 이 곡이 다듬어지기 전 초기 악보에는 이 두 음 사이를 ‘포르타멘토’로 노래하게 표기 되어 있습니다. 포르타멘토는 기악에서의 글리산도와 같이 한 음에서 다음 음으로 움직일 때 그 사이의 음들을 미끌어지듯 표현하는 기법입니다. 바로 한국교회에서 통성 기도를 시작할 때 외치는 ‘주여 삼창을’표현한 것입니다.   

 

누가 번역했는지는 몰라도 한영찬송가에 실린 영어 가사도 너무나 잘된 번역입니다. 한국의 뜨거운 영성과 하나님을 향한 정성어린 신앙을 대표하는 찬송으로 세계 교회에 소개해도 손색이 없을 좋은 찬송가입니다. 다른 나라 성도들에게 한국교회의 신앙을 대표하는 찬송가를 소개 할 일이 있게 된다면 지난번에 소개드린 ‘아리랑 찬송가’나 이 찬송가를 소개 해 주면 너무 좋을 것입니다.

여러분들께 이 찬송가를 기쁜 마음으로 소개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테너 김선일 선생님께서 부르신 영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 교수직을 은퇴하시고 당시 69세였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목소리로 선생님은 이 찬송가를 가장 이 찬송가답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작년 여름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신 김선생님은 이 노래의 가사처럼 뜨거운 신앙으로 삶의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시고 지금도 매일 저녁 두 딸들과 가족예배를 드리며 생명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역경의 삶과 그 삶 가운데 증거 된 그분의 신앙 때문에 제게는 이 찬양이 차라리 절절한 간증으로 느껴집니다.사실, 제가 이분에 대해서 이렇게 잘 아는 이유는 제 친한 친구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찬양은 ‘우리 아버지들의 노래’였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에는 어머니뿐만 아니라 우리 아버지의 역할도 컸습니다. 남자라서 마음껏 표현하지 못하셨을 뿐이고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할 가장이라서 표현할 여유가 없으셨을 뿐입니다. 아니면 한 사람으로서의 아버지의 신앙과 삶에 무심한 우리의 얄팍한 인식능력 때문이겠지요. 긍정적인 영향이건 부정적인 영향이건 간에 아버지의 노래, 아버지의 신앙, 아버지의 투쟁, 아버지의 삶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습니다.

친구 아버지의 노래와 제 아버지의 노래가 오버랩 됩니다. 브라보! 멋진 무대였습니다!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이 부른 신앙의 노래와 삶의 노래에 마음껏 박수를 쳐 드리고 싶습니다. 영상 속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한 성도님처럼 제 눈에도 눈물이 고입니다. 언제나처럼 똑 같고, 늘 어색하고, 짧은 대화 내용이겠지만 이 글 마치고 얼른 아버지께 전화 드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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