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청년이 전화로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내용이 이렇습니다. “목사님, 저 요즘 큰일 났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기만 하면 마음속에서 찬송가가 자꾸 나옵니다. 이거 무슨 병 아닌가요?” 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매, 그건 축복이야. 나는 그렇게 되게 해달라고 얼마나 오래 기도했는데.” 그 청년은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침마다 마음속에서 찬송이 우러나온다면 그만한 축복이 어디 있겠나 싶습니다. 

 경험상 그 방식은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자동입니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그냥 노래가 나오는 경우입니다. 몇 년이고 같은 찬양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I love you Lord and I lift my voice.... 제 속에서 계속 우러나오던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아침마다 저의 영혼을 정화시켰습니다. 정서를 건강하게 만들고 관점을 밝게 만들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수동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현재의 상황과 관계있는 찬송이라든지 평소에 즐겨 부르는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이 역시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루를 주와 함께 보내기 위한 효과 만점의 워밍업도 됩니다. 치료와 회복의 역사도 일으킵니다. 자동은 어느 순간 끝이 납니다. 수동을 익혀 놓는 게 좋습니다.

 다들 사는 것이 잠도 모자랄 정도입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는 정신도 채 차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아침의 소중함을 붙잡지 못합니다. 아침의 아침 됨을 누리지 못합니다. 아침뿐만 하루 종일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의 모든 부분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일에 파묻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실적도 남겼고 이룬 것도 많지만 가치는 별로 없는 나날을 보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대로 가면 의미도 별로 없는 인생이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어느 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의 가치와 흥미는 눈에 잘 띄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일의 그 엄청난 가치를 인식하며 그 일을 해나가는 것이다.” 날마다의 아침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해야 합니다. 아침의 엄청난 가치를 인식해야 합니다. 

 천국은 왠지 새벽의 나라도 한낮의 나라도 저녁의 나라도 밤의 나라도 어울리지 않게 들립니다. 천국은 아침의 나라가 가장 어울리게 들립니다. 그곳에서 부를 노래도 아침의 노래가 가장 어울리게 들립니다. 언젠가 지상에서의 호흡이 끝났을 때, 노래하면서 천상의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면 대성공일 겁니다. 아침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영원히 이어질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행위입니다. 

 어릴 때 제가 다니던 교회 선배님들은 저녁 예배 때 간증도 하고 특송도 했습니다. 몇 분이 나와서 특송을 했습니다. “천국에서 만나보자. 아침 해가 뜰 때에.. 만나보자. 만나보자. 아침 될 때 거기에서 만나자.” 그중 몇 분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분들은 아침 해가 뜰 때 그곳에서 만났을 겁니다. 그리고 터 잡고 세상 추억 이야기하고 계실 겁니다. 그 찬송 부를 때를 기억하실는지, 그 장면을 수십년동안 마음눈에 담고 있는 후배가 있다는 건 아실는지.. 

 믿음의 사람 다윗도 아침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시3:5).” 그 시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 그는 그의 인생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누워 자고 일어난 것이 여호와께서 붙드신 결과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진 듯 참담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아침 해가 떠오릅니다.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아서 목이 터져라 부르짖다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아침이 밝아옵니다. 그 아침은 하나님이 나를 보살펴주신 증거입니다. 그 증거를 붙잡고 노래하며 시작하는 하루는 그 자체로서 천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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