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온 남편을 따라 아내가 아들을 데리고 와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심방을 갔습니다. 귀엽게 생긴 다섯 살짜리 아들도 엄마 아빠와 함께 앉아서 심방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영특해보여서 감사기도를 시켰습니다. 놀랍게도 주저하지 않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기도가 끝이 나지 않습니다. 말했던 내용을 계속해서 반복합니다. 참다못해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주형아 기도가 너무 길다. 이제 그만하지. 아이가 대답합니다. 기도는 길게 해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 말을 하는 이유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 엄마는 남편을 유학 보내놓고 학교 교사로 일을 했습니다. 그동안 외할머니가 아이를 키웠습니다. 외할아버지는 목사님이었습니다. 아이는 두 분 아래서 기도를 배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목사인 제 마음이 가볍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내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 질문해보니 자신이 없었습니다.

며칠전 주일학교 교실 벽을 바라보는데 아이들의 기도문이 눈에 띄었습니다. 1학년부터 3학년 아이들의 기도입니다. 기도문 하나를 보는데 빼빼로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저게 무슨 말이지 싶어서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곤 빵 터졌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빼빼로처럼 빼빼하지 않게 해주세요.” 아이의 멋진 연상 표현에 하나님도 빵 터지셨을 것 같습니다. 그 앞에도 뭐라 적혀 있습니다. “제가 똑똑이 되게 해주세요.” 아이의 마음이 엿보입니다.

내친 김에 아이들의 기도를 전부 읽어보았습니다. 엄마 아빠를 위한 기도가 참 많습니다. 아빠 교통사고 나지 않게, 아빠 담배 끊게, 아빠 교회 나오게, 엄마 집안일하면서 피곤하지 않게, 엄마 말씀 잘 듣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에게 떼쓰지 않게 해주세요, 떼쓴 것 용서해주세요, 언니와 싸우지 않게 해주세요. 싸운 것 용서해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가족들 건강하게, 하나님 잘 섬기게, 싸움 일어나지 않게, 쉬는 날에 온 가족이 함께 놀러 가게 해달라는 기도도 있습니다. 기도마다 가정 분위기가 읽힙니다.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에 관계된 기도도 많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피곤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도 있습니다. 아침에 학교 가는 게 힘들었나 봅니다. 제발 숙제 없게 해주세요라는 기도에는 절로 미소가 나옵니다. 성경 많이 읽게 해달라는 기도도 참 많습니다. 그건 성경통독 수련회를 몇차례 했던 올해 교회 분위기와도 관계가 있어 보입니다. 성경을 빼먹지 말고 읽게 해주세요. 신약1독하게 해주세요. 하루 두장씩 읽게 해주세요. 심지어는 하루에 성경 다 읽게 해달라는 엉뚱한 기도도 있습니다. 전쟁이 없어지게 해달라는 기도, 시리아 내전이 그쳐서 고통 받고 학대 받는 아이들이 없어지게 해달라는 야무진 기도도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선교 가게 해달라는 기도, 엄마의 복직이 어느 학교로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도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기도에는 수식어가 없습니다. 단순하고 순수합니다. 아이들의 생각을 즉시 읽을 수 있습니다. 천국은 이런 기도를 하는 자의 것이겠죠. 아이들의 기도를 배워야겠습니다.

어느 카페에 갔더니 캐롤송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한 해 동안 쌓인 세속의 먼지를 털어버려야겠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맞이해야겠습니다. 깨끗한 어린아이의 기도를 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해야겠습니다. 마음속에 메아리처럼 울립니다.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아니하면..”

저작권자 © 투데이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