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두산리

이 동네에 이사를 온지 12년이 넘었습니다. 아주 추운 겨울 어느날 처음 이사를 했습니다. 겨울 풍경도 아름다운 이 동네는 스무 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 작은 시골 마을입니다. 그리고 본래 살던 주민과 이사를 들어온 주민이 비슷합니다. 별로 텃세도 심하지 않고 사건 사고도 일어나지 않는 조용한 마을입니다. 처음 이사를 하고 나서 주변을 살펴보면서 속으로 산책로도 덤으로 주셨더라면 하는 생각이 살짝 스쳐 지나갔지만, 그 생각을 입밖으로 내밷지 아니했습니다.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욥은 입술로 죄짓지 않았습니다.”(욥 2:10)라는 선배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수 17:18) 는 말씀을 떠올린 것은 아니지만 톱과 괭이, 낫을 들고 산책로를 한동안 가다듬었습니다. 사실 길을 새로 만드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옛날 사람들이 다니던 일을 다시 찾아내는 일이었습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땔감을 비롯해서 많은 것을 산에서 얻었기에, 사람들이 다니던 길이 살아 있었지만, 요즈음은 세상이 달라져서 그 길이 더 이상 뚜렷이 보이지 않았고, 또 어떤 구간은 덤불이 우거져서 낫이나 톱이 필요하기도 했고, 때론 곡갱이를 사용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4, 50분 코스를 하나 만들어서 애용했는데, 조금씩 주변 환경과 익숙해지니, 우리 동네만큼 산책로가 동서남북으로 많이 나있는 곳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50분, 1시간, 1시간 반, 2 시간, 3시간 코스까지  다양하게 있으니, 그때마다 형편에 따라서 선택하면 됩니다. 여름에는 아침 일찍 걷지만 요즈음 같이 날씨가 추운 때는 한낮이 걷기에 가장 좋은 시간인 것 같습니다. 집을 나서서 5분이면 소나무 숲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아마도 10년에서 50년은 되어 보이는 소나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숲입니다. 요즘 같은 계절에는 발밑에 밟히는 감촉이 카펫처럼 부드럽고 포근할뿐 아니라 향기롭기조차합니다. 늦가을에 떨어진 소나무낙엽 (갈비)으로 새로운 카펫으로 해마다 교체해 주시니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 매우 깊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시 92:5)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두산리

소나무 숲길을 걷다보면 소나무제선충해로 인한 죽은 소나무를 잘라서 한데 모은 다음 약품 처리를 해서 덮개를 씌운 무더기가 가끔씩 보입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보고 ‘소나무 무덤’이라고 부르더군요. 해마다 소나무 무덤이 많아지니 참으로 마음이 아픈 현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산책길에 버려진 죽은 가지들을 치우는 일입니다. 특히 큰 바람이 불고나면 수월찮은 일거리들입니다. 행여 뒤에 걷는 이들이 있다면, 내가 지나갔기에 조금 더 더 나은 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손에 있는 지팡이로 이리저리 치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나를 신기하게 바라봅니다. 집뜰에도 손길이 필요한 일들이 항상 있지만, 스스로 손을 보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바깥일은 눈에 들어오지만 집안일은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아내로부터 선물받은 제 별명이 “바깥양반”입니다.

저작권자 © 투데이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