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Pixabay의 smokefish님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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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신 가장 큰 진리는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들에게 영원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으로 이 세상에 보냄을 받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들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깝지 않게 여기기고 내어 놓으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을 죽음을 이긴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 사랑이 아니었다면 목숨을 내어 놓으실 것도 없으셨다. 이 사랑은 바로 끊임없는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관심인 것이다. 그러므로 분명한 것은 관심이 없이는 사랑도 없는 것이다. 관심이 없으면 대화도 없는 것이다. 대화가 없으면 관계의 형성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관계의 형성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은 혼자요 외톨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정말 무서운 형벌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다.

2005년 죽은 중국배우였던 돈 많은 장국영이 유서에다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너무나 외로워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 사랑받고 싶은데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다.” 라고 하였다. 가수 겸 영화배우인 장국영에겐 팬은 많았겠지만 아마도 그를 진실로 사랑해 주는 사람은 없었나보다. 군중 속에서의 소외, 무관심이란 죽음으로까지 내 모는 가장 무서운 형벌인 것이다. 아무리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아도 그 사람 주위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는 것 같아도 진정한 사랑의 표시인 진심어린 관심인 대화를 통한 관계의 형성이 아니면 언제나 외로운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풍성한 중에 외로움이요 고독이며 무관심의 최고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인 일들 중에 부모가 되어서 자식을 폭행하여서 죽게 하는 행위와 자신만 살겠다고 그 자식이 혼자이면 분명히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혼자 버려두고 떠나는 부모나 이 모든 것은 어려서부터 부모의 진정한 관심인 사랑의 부재와 그로인해 나타나는 대화의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어느 권사님의 가정을 심방한 기억이 난다. 그 가정에는 강아지를 기르고 있었다. 집에 들어가니 얼마나 짖는지 과연 예배가 진행 될 수 있을까? 생각이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함께한 집사람이 강아지를 안고는 등을 쓰다듬어 주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히 있는 것이다. 그것도 20분이 넘게 그냥 있는 것이다. 권사님 부부도 안절부절 못하다가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을 보았다. 말 못하는 짐승도 자신이 지금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안정 된 모습으로 짖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 경험을 통해서 사랑은 말로 하지 않아도 이미 보여 지는 행동으로 관심이 이루어진 것이며, 강아지도 조용하게 만든 것이다.

지금 새로운 페러다임의 경영이 이루어지고 있는 데 그것은 바로 관심과 소통의 경영이다. 관심을 통한 소통이 이루어져야 회사가 지금 하고자 하는 미래의 비전과 그리고 지금 하려고 하는 일들일 모든 사원들이 알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사불란하게 상명하복의 리더십은 당장은 무엇을 이루는데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사람을 금방 지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서로 관심을 통한 사랑의 소통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미래의 경쟁은 경영경쟁이 될 것이다. 경쟁의 초점은 각 조직 내부 구성원과 외부 조직 간의 효율적인 소통에 있다. 의사소통은 경영예술의 정점이다’고 말하였다.

2010년의 중학교 입학을 앞에 둔 어린 소녀를 성 폭행하고 처참하게 죽게 한 김00의 사건을 보더라도 그렇다. 그를 취재한 기자의 말을 빌리면 “주변 사람들이 기억하는 김00는 철저한 외톨이였다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그는 부산의 덕포동 옥탑방에 틀어박혀 지냈다고 한다. 옥상 난간에 기대 담배 피우는 모습만 가끔 눈에 띄였을 뿐이라고 하였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그의 마음을 알아주는 진정한 사랑의 대화가 없었던 것이 문제인 것이다.

사람이 성숙해 가면서 느껴오는 고독감과 고립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 이야기를 진정으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을 때 느끼는 그 외로움은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누구는 외로움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 있어?라고 반문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살아온 과정이나 성장할 때 만나게 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것은 다 다른 것이다. 그런 것에서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렇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진정한 사랑의 관심의 대화는 없어지고 건성의 대화만 오 갈 뿐이다. 그런 사이에서는 진정한 관심으로 인한 사랑이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다.

친구는 누구이고 타인은 누구인가? “믿음”이라는 징검다리를 놓으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친구”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그 거리를 멀게 하여 “무관심”이란 비포장도로를 놓으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타인” 이라는 이름이 붙여지는 것이다. 친구가 되어야 온전한 소통이 되고 그 소통위에 우리들은 진정한 관심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제 우리들은 이 시대를 통해서 소통이 되고 사랑으로 인한 관심이 많아지는 그래서 누구나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이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고 우리들이 속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깨달음의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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