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Unsplash에 Priscilla Du Preez의 사진
@출처= Unsplash에 Priscilla Du Preez의 사진

요사이 우리나라에는 불통의 나라로 분위기를 이끌려고 하고 있는 것을 본다. 누가 불통을 원하고 있는가? 그런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누구도 소통은 무시한 대로 자신들은 불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언제나 자신을 살펴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면 진정 남의 말을 들을 수가 없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어서 높은 자리에 오르면 더더욱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면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려면 두 가지를 잘 실천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는 ‘겸손’이다. 사람이 겸손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과 소통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만이 옳고 자기만이 배운 지식이 많고 자기만이 온전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누구와도 대화를 할 수 없으며 그 사람과 원만한 소통이 이루어 질 수가 없는 것이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그리고 남의 입장에서 상대를 높여주는 것이 ‘겸손’ 인 것이다. ‘겸손’ 할 때는 남의 말도 잘 듣는 경청하는 사람이 된다. 성경의 구약에 보면 사울 왕이 나온다. 그는 결국 소통을 하지 못해서 왕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가 왕이 되어 권좌에 앉기 전에 그는 ‘겸손’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집에서 부리는 사환의 말도 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왕이 되어서 위에 앉아 있으니 결국 교만하게 되었고 자신에게 주어진 권좌를 놓지 못하고 영원한 왕이 될 것 같이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못함으로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것이다. 성자 어거스틴은 신앙의 미덕중에 가중 귀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그리고 셋째도 ‘겸손’ 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둘째가 ‘이해’ 이다. ‘겸손’한 사람은 상대를 잘 이해한다. 이해는 사랑의 가장 결정체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해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플레시먼 힐러드라는 커뮤니케이션 컨설팅회사이며, 세계 광고 대행회사가 있다. 그 회사는 83개국의 지사를 두고 있으며, 고객만족도 평판조사에서 12년 동안 세계1위를 차지한 회사이다. 그 회사를 이끄는 시네이 회장은 커뮤니케이션의 제 1원칙은 ‘이해해야 한다.’ 고 말했다. 그는 소리를 낸다고, 말을 한다고, 글을 쓴다고 다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그것을 ‘정보습득지문'(media consumption fingerprint)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60억의 인구가 다 서로 다른 손가락의 지문을 가지고 있듯이 ’정보 습득법‘도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이같은 말을 통해서 볼 때 자신만의 생각이 옳다고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할 때 그 듣는 자의 자세가 이해의 자세로 바꾸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이 속해 있는 이해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남과 이야기를 한다면 그 이야기의 끝은 보나마나 이미 끝난 것이다. 결국 자신의 이해집단을 변호하고 그 이야기들을 관철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지 말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다 듣고 그것에 대한 ’이해‘를 한 다음에 자신의 이야기를 해도 늦지는 않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소통은 원활하게 이루어 질 것이다. 자기를 사랑한다면 남도 사랑의 눈으로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사랑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거꾸로 사는데 많이 길들여져 있다. 예를 든다면 결혼만도 그렇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이란 말인가? 오늘의 젊은이를 보면 결혼을 하기 전에는 정말 세상을 전부 얻은 것과 같이 자신의 전부를 걸고 연애를 하면서 결혼을 하고 나서는 서로의 책임을 전가하면서 서로가 짐이나 되는 것처럼 살고 있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른다. 정말 진정한 사랑을 할 때는 결혼을 하고 나서가 아닌가? 책임을 지고 서로를 아끼면서 살 때는 결혼을 하고 나서가 아닌가? 결혼을 하고 나서야 자신이 무엇을 하여야 하고 그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 이해하면서 타인으로 만나서 한 가정과 한 몸으로 이루어진 결혼 생활을 온전히 이루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제 너는 나의 사람이 되었으니 내가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식으로 상대를 대한다면 지금까지 지 자신이 그렇게도 정성껏 상대의 마음을 얻고자 했던 행동들은 무엇이라는 말인가? 그러니 진정으로 사랑해서 상대를 이해하고 내가 기대고 내가 맡기며 살만한 사람이라고 믿었다면 이제부터는 서로가 책임을 지면서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면서 전진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되고 있다. 얻을 때까지는 뭐든 다 해주고 얻고 난 후에는 나 몰라라 하는 것을 볼 때 얼마나 안타까운지 그렇게 되니 소통이 잘 될 리가 없다. 진정한 소통은 내가가 아니라 네가 있음에 일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소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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