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로의 인간횃불(1876), Henryk Siemiradzki 작품. (폴란드 크라코프 국립박물관 소장) 네로는 기독교인들을 잔인한 처형 방식으로 죽이고 박해했다.
네로의 인간횃불(1876), Henryk Siemiradzki 작품. (폴란드 크라코프 국립박물관 소장) 네로는 기독교인들을 잔인한 처형 방식으로 죽이고 박해했다.

기독교의 근원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종교를 거슬러 올라가 유대교에 뿌리박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요 4:22)했고, 마태복음 2장 17절에서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기 위하여 오셨다"고 했다. 복음의 뿌리가 되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기독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다윗 왕에서 알렉산더 대왕까지 

이스라엘 왕국은 B.C. 1000년경에 다윗 왕에 의해 세워졌다. 다윗은 그 왕국과 왕의 직분이 메시야적 특징을 지닌 왕으로 이후 이스라엘 민족의 메시야 대망의 상징이 되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 아들 솔로몬 왕은 나이가 많아지자 후궁들을 따라서 우상숭배와 배교의 죄를 범하였다. 솔로몬 왕이 죽은 뒤에 왕국은 분열되었고 바벨론 포로생활이 시작되었다. 포로시대를 통하여 세 가지 면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신앙 의 훈련기간이 되었다. 

1) 유일신 사상의 재정립 

그들은 포로생활 중에 오히려 고국에 있을 때의 가나안 우상숭배 등의 배교를 회개하며 여호와께로 다시 돌아오는 영적 재무장의 체험을 쌓았다. 

2) 말씀중심의 예배가 시작됨 

성전은 히브리 백성들이 하나님을 뵈옵는 장소였는데 포로시대 그들에게는 성전이 없었다. 성전 대용의 집회장소가 바로 회당(Synagogue)이었다. 회당에서는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 대신 성경읽기와 강해를 통하여 말씀중심의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3) 헬레니즘 문화의 터전이 된 히브리인 

바벨론시대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자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바벨론 포로사건은 귀환자보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 히브리인 디아스포라들이 형성되었다.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은 히브리 디아스포라들을 이용하여 제국을 확장시켰고 종교적 자유도 허락하였다. 그는 애굽을 정복하고 새로운 수도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하였다. 그 도시에 유대인들을 정착시키는 배려도 아끼지 아니하였다. 

2. 마카비 독립운동 

알렉산더가 죽고 새로운 지배자들이 등장하자 히브리인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유대인들의 고유한 종교를 버리고 헬라적 종교를 신봉하도록 압력을 가하였다. 대표적인 박해자는 B.C. 175년에 즉위한 셀레우코스 왕가 출신인 안티오쿠스(Antiochus)였다. 이에 반기를 들어 히브리인들의 폭동이 일어났으나 무자비한 대량 학살로 진압이 되었다. 그 결과 유대교는 금지 당했고 헬라종교의식이 강행되었다. 가장 무례한 횡포는 율법책을 공중 앞에서 불사르게 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히브리인들의 분노는 폭발되었다. 신앙탄압과 헬라화 정책에 대한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B.C. 163년에 마타디아(Mattathia) 제사장과 그의 아들들이 주동이 되었다. 이들을 가리켜 마카비(The Maccabees)라고 하는데 가장 강렬한 주모자의 이름이 마카비 유다 (Maccabees Judas)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B.C. 141년에 유대인들은 완전한 승리를 쟁취하였다. 그러나 B.C. 63년에 일어난 내란은 로마 개입의 계기를 주었고 다시 로마의 속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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