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 4:7)

하나님은 이 구절을 통해 “보배가 질그릇에 담겨져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질그릇은 일반적으로 ‘진흙으로 만들어진 그릇’을 뜻합니다. 이 그릇은 깨지기 쉬운 아주 약한 그릇입니다.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진 귀한 그릇이 아닙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부서지는 그릇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급스럽지도,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비싼 것도 아닙니다. 그저 담을 수 있는 정도로만 만족해야 하는 그릇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 질그릇은 ‘인생의 연약함’을 상징합니다.

우리 모두는 질그릇처럼 깨지기 쉬운 인생입니다. 넘어지고 쓰러지는 인생, 실패하고 좌절하는 인생, 배신당하며 경멸받는 인생, 우울해하며 겁에 질려 사는 인생입니다. 죽음 앞에 벌벌 떨며, 영원하지도 않은 것을 영원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참으로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어디 한 곳이라도 나아보이는 곳이 없는 상처와 고통,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이러한 인생은 한 마디로 ‘질그릇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반전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이 볼품없는 질그릇, 튼튼하지도 고급스럽지도 않은 이 질그릇에 귀한 보배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이 보배를 담아 주셨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최고의 보물을 질그릇에 담아 주셨습니다. 비록 이 보배가 질그릇에 담겨 있어도, 그 가치는 떨어지지 않음을 성경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보배는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보배이신 예수님을 인간이라는 연약한 질그릇에 담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스러운 보배로 말미암아 가치 있는 삶이 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질그릇 자체가 가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매우 크고 아주 귀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존귀한 보배가 자신의 질그릇에 담겨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어떠한 환난과 고통 가운데 있어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버리지 않으심을 믿어야 합니다.

교부 크리소 스톰은 화형을 당할 때, “하나님은 당신을 버리셨으니 이제 하나님을 부인하면 살려 주겠다.”라고 말하던 집행관에게, “예수님께서 나를 단 한 번도 부인한 적이 없으신데, 어찌 내가 예수님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어서 화형을 시행하시게.”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은 결코 하나님께서 성도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이 모든 일이 가능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복음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 보배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연약한 질그릇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질그릇 안에 무엇이 담겨져 있는가? 이것이 더 소중한 내용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어떤 상황에 계십니까? 모든 것들이 우겨 쌈을 당하고 있습니까? 답답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박해 당하고 있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하고 있습니까? 그렇지만 그대로 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절대 포기하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 안에 담겨 있는 보배이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반드시 생명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사는 자들이, 바로 세상이 감당치 못할 자들임을 믿고, 인내하며 살아내시는 귀한 독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글 │ 하대중 목사(울산섬김의교회)

저작권자 © 투데이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